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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 고분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22
한자 史直洞古墳群
영어공식명칭 Sajikdong Ancient Tombs
이칭/별칭 삼척 사직동 신라고분군(三陟 史直洞 新羅古墳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강원도 삼척시 사직동 산213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 가톨릭관동대 박물관에 의해 3기의 고분 확인
소재지 사직동 고분군 - 강원도 삼척시 사직동 산213 지도보기
성격 고분
양식 앞트기식돌방무덤
크기(높이,지름) 1호묘: 길이 4.60m 너비 1.90m 깊이 1.65m

[정의]

강원도 삼척시 사직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고분군.

[개설]

삼척 사직동 고분군은 삼척시내를 관통하여 동해 바다로 유입하는 중심 하천인 오십천(五十川) 유역 남쪽의 야트막한 구릉성 산지에 입지하고 있으며, 오십천을 사이에 두고 성북동 갈야산고분군과는 직선 거리로 약 2㎞ 떨어져서 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직동 고분군은 태백산맥 지맥 가운데 동쪽으로 뻗어 내린 다소 낮은 구릉성 야산[해발 30m 안팎]의 능선상과 경사면 하단부에 분포하고 있다. 주변에는 이른바 사직릉이라 불리는 실직군왕비 밀양박씨묘가 자리 잡고 있다. 1994년에 이 고분군의 지표 조사가 가톨릭관동대 박물관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되어 모두 3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유구 내부까지 완전히 도굴되어 방치된 1호묘, 천장석 일부가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2호묘, 이들 고분과 동시대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3호묘로 명명한 사직릉의 현상 파악과 문헌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이들 무덤 가운데 1호묘는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상의 중단부인 해발 25m 지점의, 경사가 다소 완만한 지대에 등고선 방향과 일치하게 축조하여 거대한 봉분과 평천장을 갖춘 평면 사각형[장방형(長方形)]의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橫口式石室墓)]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서 이 지역에 축조된 고분들의 주묘제는 앞트기식돌방무덤 가능성이 짙다.

[위치]

사직동 고분군강원도 삼척시 사직동 산213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1호묘는 거대한 천장석이 노출될 정도로 중심부의 봉토가 거의 유실되었지만 가장자리 부분은 윤곽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봉분 형태는 거의 원형에 가깝고, 수평판축상의 다짐으로 축조되었다. 직경은 약 12m에 이른다. 고분 상부의 천장석에서 바깥쪽으로 약 2.8m 떨어져서 높이 20㎝, 폭 40㎝ 정도의 2단 석렬이 원형으로 돌아가고 있어 둘레돌[호석(護石)]을 갖춘 것으로 확인되었다. 돌방[석실(石室)]은 풍화석회암층을 ‘L’자형으로 굴착한 후 주로 석회암 깬돌[할석(割石)]을 이용하여 네 벽을 12단 높이로 쌓았다. 3단석부터는 점차 안으로 기울게[내경(內頃)] 쌓았으며, 각 측벽의 모서리 부분은 서로 맞물리도록 각을 죽여 쌓았다. 남북 양 장벽의 최상부에는 거대한 석회암 판석 3장(길이 235~295㎝, 너비 134~180㎝, 두께 37~45㎝)이 덮고 있다. 내부 바닥은 교란되어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지만 많은 냇돌[천석(川石)]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작은 냇돌을 두텁게 깔아서 바닥을 시설한 것으로 보인다. 서쪽 단벽은 바닥면에 2~3단 정도의 단석(段石)들이 양측 장벽의 바닥에 잇대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단석 외부로는 교란되지 않은 벽석들이 계단식으로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서쪽 단벽 상에 단을 두어 그 상부 전체를 입구[횡구부(橫口部)]로 사용하고 최후 피장자를 매장한 후 폐쇄한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 4.60m, 너비 1.90m, 깊이 1.65m의 이 고분은 지금까지 삼척 지역에서 발견된 고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한편 1호묘 및 3호묘와 관련하여 크게 주목할 만한 조선시대 문헌 기록이 남아 있다. 즉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은 1662년에 편찬한 『척주지(陟州誌)』부내조(府內條)에서 “사직고실직씨지국신라파사왕이십삼년강신라지증왕육년초치실직주이금이사부위군주실직국혹왈실직곡국금사직남유상하이총기상붕훼기중삭석위석장용수십인고장인여(史直古悉直氏之國新羅婆娑王二十三年降新羅智證王六年初置悉直州以金異斯夫爲軍主悉直國或曰悉直谷國今史直南有上下二塚其上崩毁其中削石爲石葬容數十人高丈仞餘)”라 하였다. 김종언(金宗彦)은 1884년 이후에 편찬한 『척주지(陟州誌)』고적사직고총조(古蹟史直古塚條)에서 “신라지증왕육년초치실직주이금이사부위군주혹왈실직국미상금사직남유상하이총기상붕훼기중삭석위석장용수십인고장여갈야산유여차고총황지산유여차총과동평릉유여차총혜부가고고총개연(新羅智證王六年初置悉直州以金異斯夫爲軍主或曰悉直國未詳今史直南有上下二塚其上崩毁其中削石爲石葬容數十人高丈餘葛夜山有如此古塚黃池山有如此塚科洞平陵有如此塚兮不可考古塚皆然)”이라고 하였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사직동(史直洞) 고분갈야산(葛夜山) 고분은 17세기와 19세기 당시 이미 고총들로 인식되어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이에 따라서 사직동 고분 가운데 이미 도굴이 된 1호묘는 사직고총 2기 가운데 상총(上塚), 현 실직군왕비 밀양박씨묘(悉直郡王妃密陽朴氏墓)로서 일명 사직릉(史直陵)인 3묘는 하총(下塚)으로 각각 파악된다. 또 갈야산 고총갈야릉(葛夜陵)[현 실직군왕릉]으로 보인다. 1959년 갈야산 파괴 고분 조사 때 조사 보고자는 갈야릉을 삼국시대 신라계 실명고분(失名古墳)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동해시 추암동 과동 마을에 있던 삼척박씨 시조묘인 용묘(龍墓)는 과동고총으로 전해져 오다가 1992년 발굴 조사를 통하여 신라계 봉토돌방무덤[추암동 가-29호분]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이들 기록상에 나타나는 고총들은 모두 신라계 봉토돌방무덤 가능성이 매우 짙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고총 고분이 후대에 와서 정확한 근거 없이 각 문중에 의하여 시조묘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관리되어지고 있다는 점은 특이할 만하다.

[의의와 평가]

삼척 사직동 고분군은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이 거의 없어 정확한 조성 연대와 축조 집단 등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호묘의 구조와 규모, 출토된 토기편 등을 감안할 때 대체로 5~6세기 무렵 이 지역의 정치 집단 가운데 최상위 지배 계층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이와 더불어 사직동 고분군갈야산 고분군과 함께 삼척 지역에 현존하는 고신라기 대표 고분군이다. 특히 지역성과 역사 변동 상황 파악에 매우 중요한 고분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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