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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사 김인우울릉도 파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89
한자 按撫使金麟雨鬱陵島派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416년(태종 16)연표보기 - 김인우 울릉도 1차 파견
전개 시기/일시 1417년(태종 17)연표보기 - 김인우 울릉도 2차 파견
전개 시기/일시 1425년(세종 7)연표보기 - 김인우 울릉도 3차 파견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김인우

[정의]

조선시대 안무사 김인우(金麟雨)울릉도에 파견한 일.

[개설]

김인우는 본관이 삼척으로 삼척 사람이다. 그는 처음 고려 말에 삼척군 지군사(知郡事) 남은(南誾)[1354~1398] 휘하의 군사였다가 군공을 세워 안인포(安仁浦) 만호와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가 되었다. 그 후 조선태종·세종대에 안무사로서 울릉도에 갔다 왔다. 허목(許穆)[1595~1682]은 『척주지』에서 김인우의 자손들은 이족(吏族)[군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되는 명예직]이 되었으며, 당시 부중(府中)에 많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역사적 배경]

조선 태종은 왜구의 약탈을 방지하고 세금이나 군역을 피하여 도망간 자들을 추쇄할 목적으로 울릉도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기로 하였다. 이후에도 조선전기 정부는 울릉도를 관리·수호하기 위하여 간간히 관리를 파견해서 거주민을 쇄환하고 나아가 일본에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식시켰다.

[1차 파견]

태종은 1416년(태종 16) 9월 울릉도 거주민을 쇄환(刷還)[조선시대에 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돌아오던 일]하고, 나아가 울릉도를 좀 더 효율 관리 및 수호할 목적으로 김인우를 무릉등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하여 울릉도에 파견하였다. 당시 태종은 역시 삼척 사람으로 일찍이 울릉도에 갔다 온 경험이 있는 이만(李萬)을 김인우의 반인(伴人)[수행인]으로 임명하였다. 이와 함께 태종은 병선 2척과 초공(抄工) 2명·인해(引海) 2명·화통(火㷁)·화약(火藥)·양식 등을 지급하였다. 또 김인우와 이만에게는 옷과 삿갓·가죽신 등을 하사하였다.

명을 받은 김인우울릉도에 갔다가 돌아와 1417년(태종 17) 2월 5일 울릉도 토산물인 대죽·수우피·생저·면자·검박목 등을 바쳤다. 또 김인우울릉도 거주민 세 명을 데리고 왔다. 김인우는 당시 울릉도에는 15호에 86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2차 파견]

김인우는 다시 울릉도에 가야만 했다. 그가 울릉도 1차 파견에서 돌아와 특산물을 바치고 난 사흘 후인 1417년 2월 8일 태종은 우산·무릉도 거주민의 쇄출(刷出) 여부에 대한 신하들의 논의를 지켜보고는 거주민 쇄출을 최종 결정하였다. 태종은 김인우를 계속 안무사로 삼아 다시 우산·무릉도에 들어가 거주민을 육지로 데리고 나오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와 함께 태종은 김인우에게 옷과 갓·목화(木靴)를 하사하였다. 또 태종은 강원도 도관찰사에게 분부하여 병선 2척을 지급하도록 하고, 도내의 수군 만호(萬戶)와 천호(千戶) 가운데에서 유능한 자를 뽑아 김인우와 함께 갈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김인우울릉도에 갔다가 돌아와 보고한 기록이 없어 1417년 2월의 울릉도 파견이 실제 이루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3차 파견]

김인우는 1425년(세종 7) 8월에 또다시 울릉도에 파견되었다. 1425년 5월에 울릉도로 도망가 살고 있던 김을지(金乙之) 등 7명이 자신들의 고향인 평해군 구미포에 몰래 왔다가 발각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울릉도에 주민이 거주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정부에서는 쇄환하기로 하였다.

이에 다시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안무사(于山武陵等處按撫使)로 삼아 군사 50명과 함께 울릉도에 파견하였다. 당시 김인우울릉도 거주민 20명을 데리고 돌아와 10월 20일에 울릉도 순찰 결과를 보고하였다.

[결과]

태종은 김인우울릉도에 갔다 온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이후의 울릉도 관리 정책이 되는 공도[쇄환]정책을 수립하였다. 이와 함께 삼척 지역은 김인우의 파견 이후 조선시대 울릉도 관리·수호에서 전초 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태종 때 김인우울릉도 파견은 울릉도 공도[쇄환]정책 수립의 계기가 되었고, 이후 삼척 지역은 울릉도 관리와 수호에서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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