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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집중랑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51
한자 安集中郎將
영어공식명칭 Anjipjungrangj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관직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 시기/일시 1373년(공민왕 22) - 안집중랑장 파견
폐지 시기/일시 1377년(우왕 3) - 안집중랑장 파견 중단
성격 관직
품계 5품

[정의]

고려 후기 공민왕대에 삼척 지역으로 파견된 지방관.

[개설]

안집중랑장은 고려 후기의 공민왕대인 1372년 또는 1373년부터 우왕대인 1377년까지 삼척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삼척현(三陟縣)에 안집중랑장(安執中郎將)이 파견된 것은 공민왕대에 지방관으로 안집별감(安集別監)을 파견한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은 왜구 침입과 토지제도 문란 등으로 유망한 백성을 안착시키고 낮은 직급의 지방관 임명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1359년(공민왕 8)에 현령(縣令)·감무(監務) 대신 5·6품의 안집별감을 지방관으로 파견하도록 하였다.

특히 공민왕은 1373년(공민왕 22) 1월에 바닷가 지역 여러 군의 수령들이 백성을 잘 돌보지 못한다고 하여 안집별감을 파견하도록 다시 지시하였다. 이를 보면 삼척현에 안집중랑장이 파견된 시기는 1373년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안집별감이 아닌 안집중랑장을 파견한 것은 삼척 지역이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하는 길목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문관인 안집별감 대신 무관으로 5품인 안집중랑장을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척주지』를 비롯한 각종 삼척 지역 읍지에는 고려공민왕대인 1373년에 삼척현의 지방관으로 현령 대신 안집중랑장이 파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척주선생안』에는 당시 안집중랑장이라는 직함으로 삼척현에 부임한 세 명의 지방관 이름과 재임 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최초로 삼척현에 파견된 안집중랑장은 이을부이다. 이을부는 1372년(공민왕 21) 1월 삼척현에 부임하였다가 이듬해인 1373년 2월에 떠났다.

두 번째로 삼척현에 임명된 안집중랑장은 최복룡이다. 최복룡은 1373년 2월 삼척현에 왔다가 1375년(우왕 원년) 3월에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척현에 온 안집중랑장은 이후이다. 이후는 1375년 4월에 왔다가 1377년(우왕 3) 10월에 삼척현을 떠났다.

이에 따라서 삼척현에는 1372년 1월부터 1377년 10월까지 약 6년 동안 세 명의 안집중랑장이 재임한 셈이다. 그러나 삼척현에 최초로 안집중랑장이 파견된 시기에 관해서는 읍지와 『척주선생안』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척주지』를 비롯한 읍지에는 1373년에 처음으로 안집중랑장이 파견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척주선생안』에는 1372년 1월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공민왕은 1373년 1월에 바닷가 지역 여러 군의 수령들이 백성을 잘 돌보지 못한다고 하여 안집별감을 파견하도록 다시 지시하였다. 이를 보면 삼척현에 안집중랑장이 파견된 시기는 1373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삼척에 안집별감이 아닌 안집중랑장을 파견한 것은 삼척 지역이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하는 길목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문관인 안집별감 대신 무관으로 5품인 안집중랑장을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변천]

『척주선생안』에 따르면 안집중랑장 파견은 1375년 4월에 왔다가 1377년 10월에 삼척을 떠난 이후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집중랑장은 삼척 지역이 홍건적과 왜구가 침입하는 길목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는 동시에 바닷가 지역에 있는 백성들을 위무하고 돌보기 위하여 문관 대신 무관 신분의 파견을 필요로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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