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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28
한자 獻花歌-海歌詞-
영어공식명칭 Site of Heonhwaga·Haegasa
이칭/별칭 수로부인공원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대
집필자 이한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해가사 터 - 강원도 삼척시 수로부인길 401 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헌화가」「해가사」 배경으로 추정되는 지역.

[개설]

『삼국유사』에는 향가 「헌화가」「해가사」가 전해진다. 이 두 편은 삼척 지역과 관련이 있다. 「헌화가」「해가사」의 터는 두 곳으로 추정된다. ‘헌화가의 터’로 삼척시에서 추정하는 곳은 임원용화 사이인데, 오늘날 이곳 임원항 뒤편 남화산 정상에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또한 ‘해가사의 터’로 추정하는 곳은 증산마을 근처이다. 현재 증산마을 근처에는 수로부인공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수로부인공원을 달리 ‘해가사의 터’라고도 부른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배경 설화]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헌화가」「해가사」를 보면, 두 편 모두 가사와 더불어 배경설화가 있다.

성덕왕 대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며,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는 마치 병풍처럼 둘러 쳐진 석장(石嶂)이 있었는데, 높이가 1000장(약 1만 척)에 이르렀고 그 위에는 척촉화(躑躅花)가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이 있는가?” 하고 물으니, 시종이 말하길 “사람이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척촉화를 꺾고 바치며 가사도 지었다. 하지만 그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 노래가 바로 「헌화가」이다.

자포암호변희(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윗가에]

집음호수모우방교견(執音乎手母牛放敎遣) [암소 잡은 손을 놓게 하시고]

오힐불유참힐이사등(吾肸不喩慚肸伊賜等)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또한 그로부터 이틀 후에는 바다의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납치했다. 순정공이 땅에 쓰러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한 노인이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수로부인을 찾을 수 있으리라.”라고 말했다. 이에 순정공이 「해가」를 지어 부르고, 백성들이 언덕을 치자 과연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주었다.

이때 지어 부른 노래가 「해가사」이다.

구호구호출수로(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약인부녀죄하극(掠人婦女罪何極)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 얼마나 크더냐]

여약패역불출헌(汝若悖逆不出獻)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입망포략번지끽(入網捕掠燔之喫)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배경 지역 위치 비정]

「헌화가」「해가사」에서 말하는 지역이 어디인가를 두고 삼척시와 강릉시의 여러 학자들 간에 주장이 엇갈린다.

세명대학교 이창식 교수는 「헌화가」「해가사」가 가리키는 곳을 삼척시 맹방증산 일원으로 추측했다. 수로부인 이야기 자체에 무속적 산신제의와 해신제의가 구조적으로 병립되어 있다고 보았다. 수로부인이 체험한 두 사건은 심산대택(深山大澤)에 존재하는 신물의 현현(顯現)에 따라 일어난 것이니 신이담(神異譚)이라 말할 수 있고, 여기에서 신물은 상대 제의에 있어서 신앙 관념의 대상으로서 신격이라 해석했다.

반면 강릉원주대장정룡 교수는 화비령과 안인진 근처로 추정했다. 「헌화가」는 산간지방의 꽃노래 형태 민요가 산신신앙과 결합되면서 제의가요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4구체 향가로 정착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그 배경으로 강릉대관령 줄기인 화비령 일대를 추정했다. 그리고 「해가」수로부인 설화에 깔린 불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수다사(水多寺)의 연기설화와 용신신앙의 민간의례인 해신제와 결합하여 기존의 「구지가」를 원용한 제의가요로 파악하며, 그 배경 장소로 안인진을 꼽았다.

그런데 김태수삼척문화예술센터 소장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맹방에서 증산까지는 약 6㎞에 불과하고, 강릉 쪽에서 주장하는 화비령과 안인진 역시 그 정도 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거리라면 한두 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는 「헌화가」를 지은 다음 「해가사」를 짓기까지 2일이 걸렸다고 했다. 더구나 통일신라시대 동해안의 주요 교통로는 뱃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위의 두 교수가 주장하는 위치는 개연성을 얻기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김태수 소장은 증산 일대를 해가사의 터로 상정한 다음 이곳에서부터 뱃길로 2일 거리에 걸리는 동해안의 지역을 찾아보았다.

통일신라시대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동해안으로 나오자면 감포의 항구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여기에서 출발해 영덕·울진·임원·증산 등의 항·포구에서 숙박을 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그 결과 김태수는 임원용화 사이의 지역을 주목했다. 마침 이곳의 지형은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어서 삼국유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지역의 형세와 비슷했다. 더구나 임원항 회센터 남서쪽에 있는 산 이름도 수리봉[혹은 수로봉]이라 했다. 그리고 해가사의 터증산 일원으로 추측했다. 그 증거로 여러 가지를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1. 『척주지』의 기록을 보면, 해룡에게 잡혀간 수로부인을 위해 계책을 알려주던 노인을 연상케 하는 신우의 수레바퀴 자국이 증산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2. 추암 인근에 용묘의 전설이 전해진다. 바닷속에 용이 다니던 길이 있다고도 한다.

3. 막대기로 땅을 치던 것과 비슷한 놀이인 떼불놀이가 정라진 일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전승되고 있었다.

4. 거북의 등딱지를 문 위에 걸어두고 액을 막는 민속이 전승되고 있다.

[수로부인공원]

삼척시에서는 2003년 12월 추암 촛대바위를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교동 증산마을 해안에 수로부인공원을 만들었다. 공원에는 해가사의 터 비와 해가사에 등장하는 임해정이란 정자를 세웠다. 수로부인공원은 ‘해가사의 터’라고도 불린다. 통일신라시대 임해정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삼척해수욕장의 북쪽 와우산 끝자락 정도로 추정된다.

2006년 4월 6일 수로부인공원 내에 구형 조형물 사랑의 여의주를 설치했다. 직경 1.3m, 높이 1.67m, 무게 5t의 오석으로 만든 이 사랑의 여의주는 구면에 그림을 각인해 놓았다. 점묘화 기법으로 흑색바탕의 색채에서 명암의 효과에 따라 가능한 모든 그림의 원리를 적용하여 나타나게 했다. 그림의 내용은 헌화가와 해가사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형의 구슬이지만 어린이가 밀어도 돌아갈 수 있게끔 만들었다. 사랑의 여의주를 돌려 용을 타고 있는 수로부인의 모습이 여의주를 돌린 사람 앞에 멈추면 소망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헌화가」의 배경그림이 돌린 사람 앞에 멈추면 연인들의 사랑이 변치 않고 영원할 것이며, 「해가사」의 배경그림이 멈추면 마음 깊이 묻어둔 사랑과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돌려보곤 하는 명물이 됐다.

수로부인공원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지자 삼척시에서는 해상경관전망대와 산책로를 설치했다. 또 민간자본을 유치해 대명콘도가 증산 일원에 삼척쏠비치를 건설했다. 한편 강릉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금진에서 심곡에 이르는 바닷가 도로를 개통하고 헌화로라 이름지었다.

[수로부인 헌화공원]

수로부인 헌화공원은 임원항 뒤편 남화산 정상에 있다.

수로부인은 신라성덕왕 때의 인물 순정공의 부인이다. 남편이 강릉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 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철쭉꽃을 꺾어 바치고, 가사를 지어 바친 것이 4구체 향가인 「헌화가」이다. 「헌화가」 설화를 활용하여 수로부인 헌화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조성돼 있다. 이와 함께 산책로, 데크로드, 전망대, 쉼터 등이 갖춰져 있어 탁 트인 동해의 비경을 감상하면서 걷기에 좋다. 공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수로부인상은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중량 500t에 달하는 데다 천연 돌로 조성돼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천연 오색 대리석 조각상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바다풍경이 장관이다.

[실직국 철쭉놀이]

삼척시에서는 1992년 제10회 강원도민속예술공연대회에 「헌화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실직국 철쭉놀이」라는 민속예술을 만들어 참가한 적이 있다. 김영기[당시 강원일보 논설위원]가 고증하고, 김영준[당시 삼척문화원장]과 김시덕[당시 삼척고교 교사]가 지도했고 117명이 동원됐다.

4개의 과장으로 구성됐는데, 제1과장은 통일신라시대의 태수행렬이다. 철저한 고증 아래 길군악에 맞춰 행진을 한다. 제2과장은 철쭉꽃이 만발한 곳에서 점심잔치를 벌이는 풍경이다. 활쏘기, 창던지기, 줄다리기, 씨름 등의 여흥을 보여주었다. 제3과장은 수로부인이 철쭉꽃을 꺾어 달라고 말하고 견우노옹이 나타나 철쭉꽃을 꺾어다 주는 향가 속의 대목을 연행했다. 제4과장은 마무리 과장으로 모두가 흥겹게 잔치를 하는 풍경을 연행했다.

「실직국 철쭉놀이」를 위해 홍낙훈은 「헌화가」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1절) 참으로 아름답네-정말로 곱구나- 철쭉꽃 반기는 길- 나도야 즐겁다네 /

저 꽃 꺾어 주오 나를 사랑한다면 철쭉꽃 꺾어 주오 나를 사랑한다면

2절) 검붉은 바닷가에- 자줏빛 바위 위에- 고삐를 놓게 하여- 암소를 풀러놓고- /

나를 부끄러워 아-니-한다면 나-를 부끄러워 아-니-한다면

3절) 한아름 철쭉 안고- 춤추며 노래하세- 꽃 같은 수로부인- 꽃인가 선녀인가- /

꽃은 다시 피어 우리 기쁨 된다면 철쭉꽃 다시 피어 우리 기쁨 된다면

[후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사실 「실직국 철쭉놀이」가 만들어진 데는 연유가 있다. 1991년 2월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이 삼척시죽서루 경내에 제막된 ‘송강 정철 가사의 터 비’ 제막식에 참석해 관내 각 기관단체장들과 오찬을 하면서 삼척시는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헌화가」「해가사」의 고장이니 이를 홍보함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이에 삼척시에서는 철쭉을 시화로 하고, 「실직국 철쭉놀이」를 만들어 헌화가해가사의 터를 홍보하기에 이르렀다.

[수로부인 길]

강원도의 대표적 옛길은 관동대로이다. 한양에서부터 시작해 원주시, 강릉시, 삼척시로 이어지는 920리[약 361㎞] 길이다. 이 중 삼척시의 60리[약 24㎞] 길이 수로부인 길이다. 어느 곳에서나 산과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푸른 동해가 함께하는 수로부인 길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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