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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27
한자 三陟正月大-祭-三陟-
영어공식명칭 Samcheok Jeongwol Daeboreum Festival and Samcheok Gijuldarigi
이칭/별칭 게줄달리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1년 - 삼척기줄다리기 강원도 시도무형문화재 제2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삼척 정월대보름제 개최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개최되는 전통 민속 축제와 놀이.

[개설]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가장 크게 여기는 세시(歲時) 가운데 하나가 정월대보름이고, 이날 치르는 행사가 삼척정월대보름제이다. 삼척정월대보름제는 조선 후기 문신 허목이 쓴 『척주지』에 삼척 지역에서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으로 전해지는 ‘마을별 농악, 삼대 세우기, 마을별 동제(洞祭)’를 비롯한 각종 풍속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조선시대에도 광범위하게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전통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이때 행해진 대표 놀이가 기줄다리기이다. 삼척읍 내 사대광장에서 암줄과 숫줄을 제작하여 부내말곡으로 나뉘어 줄을 당긴 것이 삼척 기줄다리기의 기원이다. 삼척 기줄다리기는 1936년 일제에 의해 중단된 이후 1973년 삼척번영회가 주관한 정월대보름제에서 주축 놀이로 삼척읍사대광장에서의 기줄다리기 재연과 함께 본격 시작되었다.

명칭은 정월대보름제, 죽서문화제로 하였지만 2007년 삼척문화원에 삼척정월대보름제위원회가 구성된 뒤 삼척정월대보름제라 정하고 기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산신제, 사직제, 천신제, 해신제와 함께 술비놀이 및 각종 민속 행사가 축제 행사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척정월대보름제의 변천]

삼척 지역에서는 매년 정월 초에 마을 단위로 속닥기줄, 줄기줄 놀이를 하면서 술비통을 이용하여 마을줄을 만든 뒤 정월대보름이 되면 마을 주민들이 농악대를 앞세운 채 이 줄을 어깨에 메고 삼척읍사대광장에 모이면 전문 역군(役軍)들이 마을줄을 이용하여 기줄을 제작하였다. 삼척 기줄다리기는 암줄과 숫줄을 만들어서 이를 비녀목으로 결합한 뒤 부내말곡으로 나누고 이 줄을 당겨서 자기 진영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쪽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는 현재 매년 열리는 삼척정월대보름제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척 지역의 기줄다리기는 1936년 일제에 의해 중단된 이후 1973년 삼척번영회가 주관한 정월대보름제에 기줄다리기 주축으로 삼척읍사대광장에서 삼척기줄다리기 재연과 함께 삼척정월대보름제가 본격 시작되었다. 정월대보름제는 이듬해인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삼척민속놀이위원회 주관 아래 사대광장 또는 삼척읍사무소 앞에서 진행되었다. 1978년부터는 명칭이 ‘죽서문화제’로 바뀌고 행사 주체 또한 ‘죽서문화제위원회’로 바뀌어 2006년까지 사대광장, 농민회관 앞, 공설운동장, 성남둔치, 죽서루 등 행사 장소를 필요에 따라 달리하며 매년 열렸다. 이때 행사 기간도 정월대보름 전후, 3월, 4월, 5월, 6월 등 여건에 따라 달리하여 개최되었다.

행사 기간이 현재와 같이 정월대보름 전후로 고정된 것은 2007년 삼척문화원에 삼척정월대보름제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회에서 그 명칭을 삼척정월대보름제라 정한 때부터이다. 이후 삼척정월대보름제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엑스포 광장을 주 행사장으로 하여 매년 개최되고 있다.

[삼척정월대보름제 운영 양상]

삼척정월대보름제는 매년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삼척 지역의 정월대보름 민속을 대표하는 기줄다리기 중심으로 열린다. 2017년에 실시된 주요 행사를 기준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댓재 산신각에서 삼척동해태백산림조합이 주관하는 두타산신을 삼척읍치성황사[현재 성북동 서낭당]에 모시는 것으로 삼척정월대보름제는 시작된다. 정월대보름제 전날 밤에는 전야제를 치른다. 정월대보름제 이튿날에는 삼척정월대보름제위원회가 주관하여 토지신과 곡식신을 모시는 사직제를 사직단에서 지낸다. 천신제는 엑스포광장 특설무대에서 지내고, 바다에서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해신제는 정라동 해안가에 위치한 소망의 탑에서 지낸다.

문화제(文化祭) 행사에서는 12개 읍·면·동에서 참가하는 전통기줄다리기와 기줄다리기보존회가 연행하는 술비놀이가 열린다. 민속놀이 행사로는 별도의 굿당을 만들어서 두타산신을 모시고 삼척정월대보름제가 열리는 동안 별신굿을 연행한다. 이와 함께 다듬이질경연대회, 민속장기대회, 팔씨름대회, 윷놀이대회, 닭싸움대회, 떼불놀이, 달집태우기, 망월놀이를 한다. 경축 행사로는 삼척시 체육회가 주관하는 정월대보름 맞이 삼척기줄다리기 대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삼척지회가 주관하는 남근조각경연대회와 삼척정월대보름 가요제가 엑스포 광장에서 진행된다.

[삼척기줄다리기의 유래]

삼척기줄다리기의 유래는 네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 제방 축조, 이사(里社)[땅 신을 위할 목적으로 설치된 마을 사당] 설치 후 ‘제사→풍년 기원 축제’ 등과 관련된 것이다. 마을의 오래된 노인들은 조선현종 때 삼척 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이 지역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기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으로 믿고 있다. 허목이 남긴 『척주지(陟州誌)』에서 관련 내용은 ‘북평제언기 현종 2년 7월 대홍수 + 현종 3년 대풍우 ⇒ 유실된 전토나 제방 복구 사업 진행, 각 동리에 향약문 고유(鄕約文告諭)’를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 정월대보름제에서 행해지는 그해 풍흉(豊凶)과 관련된 점풍(占風)[점을 치는 일과 운수 보는 일] 행사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부내(府內)[해안 지역을 일컬으면서 동시에 여성을 상징]와 말곡(末谷)[산곡 지역을 일컬으면서 동시에 남성을 상징]이 힘자랑을 겨루면서 부내가 이기면 그해 어업이 잘되고 말곡이 이기면 농사가 풍년이 들 것이라고 믿는다. 이 때문에 어업 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여성을 상징하는 부내가 이기길 기대한다. 부내는 삼척부사의 부인이 응원하고 말곡은 삼척부사가 응원한다. 셋째 마을에 부과된 부역을 전가시키기 위하여 연행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부역은 삼척읍성과 포진성 수리, 만년제 및 방수제 등의 축조가 주조를 이루었다. 넷째 귀신을 쫒기 위해 연행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기줄은 게 모양을 하고 있는 줄이고, 연행되는 마당인 사대광장에는 잡귀가 많은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게는 벽사 의미가 있어 잡귀가 쫒아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잡귀가 많은 이유는 영동 지역 9개 군의 죄인을 이곳 삼척포진관(三陟浦鎭管)에서 처형하였기 때문이다.

삼척기줄다리기는 이로부터 전승되다가 1936년 일제에 의해 중단된 후 1973년 삼척민속놀이위원회가 구성되어 정월대보름에 ‘기줄다리기’를 주축으로 삼척읍사대광장에서 삼척민속대제전이 거행되면서 재연되었다. 그 후 1976년 6월 5일 강원도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되고 2015년 12월 2일 유네스코 제10차 무형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서 연행되는 줄다리기 5건[당진기지시줄다리기, 창녕영산줄다리기, 남해선구줄끗기, 밀양감내게줄당기기, 의령큰줄댕기기]이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줄다리기 종목 등과 함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척기줄다리기 구성과 내용]

삼척 기줄다리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된다.

1. 입춘일 선농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를 지낸 뒤 농악을 앞세워 시내를 돈다.

2. 삼척 기줄다리기 이전의 줄다리기는 정월 2, 3일부터 솔닥기줄이라 하여 동·리 단위로 새끼줄을 꼬아서 아이들끼리 한다. 하룻밤에 서너 차례를 5, 6일까지 하였다. 이 줄다리기에는 어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 정월 7, 8일경에는 중기줄이 행하여진다. 청소년들이 주동이 되며, 규모는 솔닥기줄보다 크다. 하룻밤에 1, 2회 겨룬다. 정월 10일경에 일시 중단해서 대보름 기줄다리기 준비를 한다.

3. 삼척 기줄다리기본행사 준비에 들어가면 임원을 구성한다. 임원은 대표 파장(派將) 1인, 부파장(副派將) 1인, 보통파장(普通派將) 3~4인, 각리 파장(各里 派將) 1인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기본 임무 이외에도 원근 각 지역을 순방하여 세배를 드리고, 공식 초청 절차를 밟아서 원군을 초청한다. 기줄다리기를 하는 정월대보름에는 읍 소재지 동(洞)에서 술, 오곡밥, 약밥을 지어 행사가 있는 당일 기줄다리기에 나가는 자기 편 참가자들을 접대한다.

기줄은 동·리마다 준비한다. 크기는 한뼘 이상이다. 길이는 50발 이상이며, 기줄을 틀 때는 술비통을 이용한다. 술비통을 이용하여 기줄을 만들 때는 새끼줄, 칡줄을 구멍을 통하여 세 가닥을 하나로 모아서 길이 5㎝의 기줄이 되게 한다. 이 기줄을 다시 세 가닥을 한데 모아 틀어서 한 줄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기줄을 틀 때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작업을 한다. 이를 술비통 노래라 한다.

정월대보름 당일 본부에서는 말을 탄 대표 파장이 참모들과 함께 격식에 맞도록 의관을 가지런히 입은 모습으로 아침부터 오후 5시경까지 각 지역에서 오는 자기 편 기줄다리기 참가자들을 맞는다. 이때 각 동·리 참가자들은 자기들 동·리의 파장을 마두(馬頭)에 올려 세운 뒤 앞에다 부락기와 영기를 세우고 나서 농악대 - 가장 행렬 - 남녀노소 순서로 줄을 어깨 위에 메고 뒤를 따른다. 동·리별 참가자들의 집결 장소는 말곡면의 경우 성내리[백호기, 세로기, 농기, 영기, 부락기]이다. 부내면은 성저리[성 밖]에 집결[청룡기, 가로기, 농기, 영기, 부락기]한다. 집결 후에는 시가 행진을 한다. 이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기줄다리기에 사용되는 기줄을 최종 준비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각 동·리에서 가져온 기줄을 사대광장에 모아 놓고 편별로 전문 역군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작업을 한다. 이때 다른 장정들은 자기 소속을 표시하는 기를 앞세워서 불을 밝히고, 맨 앞에 농악대를 내세워서 밤 11시까지 시가지를 누비며 다닌다. 기줄은 길이를 조절하여 마두와 본체 줄을 만든다. 양편의 기줄을 맞대고 타래를 지운다. 이 과정은 30~40분 걸린다.

4. 삼척 기줄다리기 본행사가 진행되면 달빛과 광솔불 아래에서 징을 신호로 하여 남녀 불문하고 인원 제한없이 기줄을 당긴다. 지휘 체계는 마두에 파장, 중간에 부파장, 그 뒤에 보통 파장이 각각 배치되어 총파장의 신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기줄을 당긴다. 이때의 지휘 신호는 기를 눕히면 기줄을 바닥에 까는 것이고, 좌우로 흔들면 당기지 않고 힘만 주라는 의미이며, 동서로 흔들면 기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면서 기줄을 당기라는 의미이다. 서편은 말곡이고, 동편은 부내가 된다. 양편은 모래를 발로 파기도 하고 여자들은 치마에 돌을 담기도 하는 등 무게를 늘려서 기줄다리기에 나선다. 술을 마시면서 기줄을 당기기도 한다. 기줄다리기는 3, 4시간이 흘러 새벽 4, 5시경이 되어서야 끝날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가 매우 어려웠음을 알린다.

[삼척기줄다리기의 기줄 제작]

삼척기줄다리기에서 기줄은 게의 전체 형태를 따 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용줄[몸줄]에 매달린 줄을 ‘기줄[게줄]’이라 하고, 이 기줄을 당길 때 사람들의 발 동작이 게의 다리 모양처럼 옆으로 향하게 되어 이런 자세로 앞뒤로 이동하기 때문에 ‘기줄을 당기며 노는 놀이’라는 뜻에서 ‘기줄다리기’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1. 기줄 제작을 위한 기본 전제

① 삼척 지역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삼척도호부 소속의 모든 리 또는 면 단위로 줄다리기에 참가하였다. 이때 마을마다 자체 제작한 줄을 1~2개 가져와서 이를 모아 큰 줄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복원되는 기줄은 용줄[몸줄]에 쪽당 12개의 기줄[조선 후기인 영조대를 기준으로 삼척도호부에 소속된 12개 면이 모두 참가하였음을 상징하고, 이들 면에서 2개의 마을 줄을 가져왔음을 고려하여]을 매달아서 당기는 형태로 제작한다.

② 대체로 1000명 이상이 당겼다고 하기 때문에 기줄을 당기는 인원 1000명을 기준으로 제작한다.

③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마을 줄을 기본 줄로 하여 이를 모아서 만드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서

- 용줄[몸줄]은 직경 30㎝ 정도의 줄을 여러 가닥 준비하여 이를 용두와 용줄로 일단 제작하고

- 직경 8~10㎝ 정도의 기줄을 만들어서 이를 몸줄과 기줄로 이어지게 만든다. 즉 용줄의 한쪽에 늘어지게 나온 기줄이 용두와 용줄을 돌아 반대편 기줄로 나와서 이 기줄을 사람들이 당길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한다.

- 이와 같이 제작하면 용두를 구성하는 줄의 굵기는 직경 1m 정도 되고, 암수를 비녀목으로 물린 용두를 세웠을 때 높이가 3m 정도를 유지할 수 있다.

④ 꼬리줄은 기줄다리기를 할 때 기줄[게줄]을 당기기에 일직선을 유지하며 줄다리기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줄이 일정하게 직선을 유지한 채 줄다리기를 하기 위하여 방향타 역할을 하는 꼬리줄을 만들 필요가 생긴다.

2. 삼척 기줄 제작

가) 구성 : 용두[마두], 용줄[몸줄], 기줄[게줄], 꼬리줄, 옹이[비녀목]

나) 용두[마두], 용줄[몸줄], 꼬리줄 구성

① 술비통을 이용하여 직경 30㎝, 길이 100m 정도 되는 마을 줄을 14가닥[암줄과 숫줄 제작용 각 7가닥] 제작한다.

② 마두와 몸줄은 마을 줄 7줄을 묶은 형태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기줄 12가닥을 그 주위에 둘러서 만든다.[용두[마두]와 용두에서 용줄 10m까지는 새끼줄을 촘촘하게 감아서 마무리한다.]

③ 꼬리줄은 용줄의 뒷부분에 이어지도록 만든다.

- 꼬리줄의 총 길이는 30m 정도 되도록 한다.

- 용줄 끝에서 점차 직경이 줄어들면서 꼬리줄 10m 정도에 이르러 직경 10㎝ 정도까지 줄어들게 제작한다.

- 꼬리줄 끝 부분 길이 20m는 직경 8~10㎝ 정도로 제작하여 이 부분을 20명 정도의 인원이 당길 수 있도록 제작한다.

- 꼬리줄을 위한 줄은 술비통을 이용하여 직경 8~10㎝, 길이 130m 정도의 줄 2가닥[암줄과 숫줄 제작용으로 1가닥씩]으로 제작한다.

다) 기줄

① 기줄이 용두를 돌아서 반대편으로도 이어져 나오는 형태이다.

② 1줄에 20여 명 기준으로 한쪽 기줄 길이는 20m이고, 용줄에서 기줄과 기줄 간격은 5m이다.

③ 기줄[게줄]을 제작할 때는 술비통을 이용하여 직경 8~10㎝, 길이 130m 정도인 기줄을 24개를 제작한다.[암줄과 숫줄 제작용은 12줄씩 배치한다.]

라) 용두[마두], 용줄[몸줄], 기줄[게줄], 꼬리줄에 새끼줄을 기본으로 하여 칡줄을 삽입하는 형태로 제작한다.[제작 단계에서부터 새끼줄과 칡줄을 함께 사용하여 줄을 만든다.]

마) 옹이[비녀목]는 직경 35㎝, 길이 3m가 넘는 향나무나 박달나무 또는 소나무로 만든다.

[삼척기줄다리기의 성격]

삼척에서는 ‘게’를 ‘기’라 하고, 줄다리기를 할 때 줄을 당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 ‘게’를 닮고 ‘게’가 벽사(辟邪)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기줄다리기’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전승 집단 규모 측면에서 보면 삼척 기줄다리기부내말곡으로 나누어 연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근의 미로, 북평, 근덕 등지에 있는 주민들도 참여하였기 때문에 ‘열린 고을형’으로 볼 수 있다. 또 ‘큰줄다리기’로 볼 수 있다. 다만 정월대보름 이전에 마을별로 속닥기줄, 중기줄다리기가 있었다. 이는 마을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닫힌 마을형’이면서 ‘골목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승 형태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에서 큰 것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그 규모가 연속성을 띠는 확대형으로 볼 수 있다.

시기 측면에서 보면 정월 초 마을별로 속닥기줄, 중기줄을 하다가 정월대보름 밤에 기줄다리기를 한다. 연행 공간은 삼척읍오십천사대광장에서 행해졌다. 이곳은 모래도 일부 있고 자갈밭인 곳도 있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연행되었다. 1973년 기줄다리기가 복원된 이후 사대광장에서 연행하다가 사대광장이 매립된 이후 중앙통 주 도로나 오십천 둔치에서 현재까지 연행되고 있다.

줄의 형태 면에서 삼척기줄다리기는 암줄과 숫줄로 나뉜 쌍줄 형태를 하고 있다. 자세하게는 몸줄에 곁줄, 즉 기줄을 매어 이를 당기는 형태이다. 물론 동네에서 행하는 속닥기줄이나 중기줄은 외줄인 것으로 보인다.

편은 지역별로 편을 갈라 구성된다. 오십천[또는 삼척 읍성]을 기준으로 부내말곡으로 나뉘어 연행된다. 점풍과 관련하여 부내는 해안 지역과 여성을 상징하고, 말곡은 산곡 지역과 남성을 상징한다. 부내가 이기면 해사(海事)가 풍년이고, 말곡이 이기면 농사가 풍년이라고 믿고 있다. 줄의 처리 방식은 서낭당에 1년 동안 모셨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1년 보존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인다.

줄의 재료는 짚을 주재료로 하여 몸줄을 만들 때 끊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라진(汀羅津)에서 만드는 몸줄은 칡을 사용하여 속줄을 만든 다음 겉에 새끼줄로 감싸는 형태였다.

줄다리기에 앞서 행해지는 앞놀이는 경상남도 창녕의 골목 줄다리기와 같이 정월 초에 마을별로 속닥기줄과 중기줄다리기가 행해졌다.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편싸움이 아니지만 줄다리기 줄을 만드는 술비놀이가 행해졌다. 그리고 기줄다리기 당일 마을별로 줄을 만들어서 삼척 시가지를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악을 울리며 다녔으며, 농악 가운데 조비(鳥飛) 농악이 유명하였다. 삼척에서의 뒷놀이는 줄다리기 후 패한 패는 조용히 사라지고 승리한 패는 풍악을 울리며 한바탕 즐겁게 논다.

공동체 신에게 올리는 제사와의 관계에서 삼척기줄다리기는 고을형 쌍줄로, 주로 선제사 후놀이형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기원의 하나가 선농제를 지낸 뒤 마을 사람들끼리 즐기는 가운데 줄다리기가 행해졌다는 주장이 있고 줄다리기에 참여하기 전에 마을 서낭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기줄다리기에 참여하는 마을도 있기 때문이다.

[삼척기줄다리기의 특징]

삼척기줄다리기는 기줄다리기만을 위한 놀이가 아니라 연행 과정에서 술비놀이, 조비농악과 같이 다른 놀이 문화가 함께하는 종합 놀이이다. 줄다리기가 주로 벼농사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가운데 삼척기줄다리기는 대규모로 행해지는 줄다리기의 상한선이라 볼 수 있다. 또 경상남도 밀양의 게줄과 같이 양쪽에 여덟 가닥이 있고 원줄에 칡줄을 넣는다는 점은 나름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극소에서 극대로 발전하는 놀이이다. 즉 귀천·빈부의 차별 없이 남녀가 혼연일체로 참여해서 새해맞이를 하는 놀이라는 점에서 지역민 전체의 단합과 풍년·풍어를 기원하는 확대 지향의 정월대보름 놀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지역과 달리 논이 아닌 자갈밭에서 거행한다는 점과 동부를 여성, 서부를 남성으로 각각 상징하면서 어느 쪽이 이기든 풍년·풍어가 되기 때문에 대립 관념이 없다는 것이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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