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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23
한자 男根崇拜-豊魚-祈願-,薪南海神堂
이칭/별칭 해신당공원,남근조각공원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삼척 해신당 공원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삼척로 1852-6 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남근 숭배를 통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해신당.

[개설]

성(性)은 만물의 근원이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성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성의 본질은 숭고한 것이다. 그러나 성은 이중성을 띠고 있다. 가장 숭고하면서도 가장 추악하게 소모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성이 합당하게 사용될 때 성은 가장 아름다운 창조 행위이지만 성이 비합당하게 이용될 때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서 성 문화 표현 방법도 열린 공간에서의 표현 방법과 닫힌 공간에서의 표현 방법이 다르게 나타난다. 열린 공간에서 성 문화는 성을 숭배하는 것이다. 반면에 닫힌 공간에서 성 문화는 성을 향유하는 것이다.

인간은 성 숭배를 통하여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을 기원하였다. 인간은 성(性)을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성스러운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서 성 행위나 성기를 신성시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성을 숭배하게 되었다. 성 숭배는 민간 신앙 형태, 줄다리기 등과 같은 놀이 형태, 탈춤과 같은 민속 연희 형태, 풍수지리와 같은 사상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삼척의 성숭배]

삼척 지역에서도 성(性)을 다양한 형태로 숭배하고 있다. 동해 바닷가에서부터 두타산 산속에 이르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성 숭배가 행해지고 있다. 두타산의 성 숭배는 쉰움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쉰움산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꼭대기에 50개의 움이 있다. 움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그 맞은편에 남근(男根) 바위가 있어서 남녀 성기의 결합을 통하여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다.

동해안의 어촌 마을에는 대개 2개의 서낭당이 있다. 마을의 산 위에 있으면서 마을 수호 기능을 하는 남서낭당[할아버지 서낭당]과 바닷가에 있으면서 풍어와 어민들의 무사안녕을 담당하는 여서낭당[할머니 서낭당]이 그것이다. 특히 여서낭당의 당제에서는 황소의 우랑이나 나무로 만든 남근을 봉헌하였다. 이는 음양 화합을 통하여 풍어와 어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남근석이나 여근석 같은 성기 조형물을 중심으로 동제(洞祭)의 한 전통을 만들어 냈다. 또 그 과정을 통하여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였듯 마을 공동체 의례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놀이에서도 성(性)은 커다란 역할을 해 왔다. 삼척 기줄다리기는 공동체 문화의 전형을 보여 주는 행사이다. 줄은 암줄과 숫줄 두가닥으로 나누고, 서로의 줄머리를 올가미처럼 둥글게 틀어서 ‘도래’라고 불리는 고리 모양으로 만든다. 널찍하게 만든 둥근 암줄의 도래에 머리가 좁은 숫줄의 그것을 끼우고 비녀목으로 고정하게 된다. 좁고 넓은 각각의 도래 형태는 남녀의 성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줄을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은 성행위를 암시한다.

[민간신앙으로서 해신당]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신남에 있는 해신당은 우리나라 성 숭배 신앙을 대표하는 곳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과 음력 시월 오일(午日)에 마을 사람들이 남근을 깎아 놓고 제사를 지낸다. 동해안에는 이처럼 서낭당에서 남근을 숭배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현재까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은 삼척시 근덕면 신남에 있는 해신당이다.

동해안 마을 신앙의 특징은 남신(男神)과 여신(女神)을 구분하여 따로 모시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여신과 남신을 한 건물에 모시는 것과 비교된다. 여신은 바다 - 여성 - 풍어로 이어지며, 남신은 산 - 남성 - 풍년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서 어업을 주 소득원으로 하는 동해안에서는 남신보다 여신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신을 모시는 해신당에 남신을 상징하는 남근을 바침으로써 남녀 합일을 통하여 풍요를 기원하였다.

신남은 어촌 전형 마을로, 산기슭에 ‘큰당’이라 불리는 서낭당이 있다. 마을 앞쪽 바닷가 언덕 위에는 ‘작은당’이라고 부르는 해신당이 있다. 큰당인 서낭당에는 남신을 모시고 있으며, 작은당인 해신당에는 여신을 모시고 있다. 큰당인 서낭당은 마을에 들어오는 입구 산기슭 소나무 숲속에 있다. 마을 어귀에 교회가 있고, 서낭당은 교회 뒤쪽에 있다. 교회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디디고 서면 위에 용틀임을 하는 향나무가 있어서 그곳이 서낭당이 있는 곳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서면 교회가 있고, 정작 서낭당은 산 속으로 더 올라가야 한다. 교회 바로 뒤쪽에 사람이 별로 다닌 흔적이 없는 산죽이 도열하고 있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면 금줄이 나오고, 잘 생긴 소나무 아래 서낭당이 있다. 2000년에 동해안 산불로 소실된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다. 서낭당 앞에 서면 바로 건너편에 해신당이 보인다. 남신을 모신 큰당인 서낭당은 여신을 모신 작은당인 해신당과 서로 마주보고 있다.

해신당은 마을에서 바다쪽으로 뻗어 있는 언덕 위에 있다. 해신당은 1986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고, 원래 작은당은 벼랑 끝에 있는 향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제사를 지냈다. 수백 년 동안 갯마을 어민들의 애환을 지켜보던 향나무에는 ‘해신당(海神堂)’이라는 글자를 새긴 판자 하나가 걸려 있어서 그곳이 해신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향나무에는 오색의 천조각과 함께 굴비 꿰듯 새끼줄로 엮인 남근목(男根木)이 걸려 있었다. 삼단으로 쌓은 제단에는 세월이 흘러 남근목을 엮은 새끼가 썩으면서 떨어져 쌓인 남근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근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해신당에 바쳐진 ‘나무고추’ 사내아이를 낳는데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모두 주워 갔기 때문이다. 향나무 앞에 새로 지은 해신당에는 분홍치마와 노랑저고리를 입은 여인의 화상이 모셔져 있다. 바다에 빠져 죽은 마을 처녀를 신으로 모시고, 향나무로 남근목을 깎아 바쳤다. 이를 통하여 풍어와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신남 해신당 전설]

신남 해신당에서 남근을 숭배하게 된 유래와 관련하여 슬픈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신남마을에는 결혼을 약속한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처녀는 총각이 태워 주는 배를 타고 해초를 뜯기 위하여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바위에 내리고, 총각은 다시 태우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폭풍우와 파도가 몰려와 처녀는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끝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렇게 처녀가 애를 쓰다 죽었다고 하여 그 바위를 ‘애바위’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렇게 처녀가 죽은 이후 이상하게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애를 쓰다 죽은 처녀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기가 잡히지 않아 시름에 빠진 어부가 술을 먹고 지금의 해신당 자리에 오줌을 누었더니 그 후 만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실물 모양의 남근을 나무로 깎아 제사를 지내 왔다. 신기하게도 그 후 고기가 많이 잡혔다. 이후 풍어를 기원하며 나무로 깎아 만든 남근을 사당에 걸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신남 해신당 제례]

해신당에 제사를 지내는 날은 음력 정월 대보름 자정과 시월 오일(午日) 자정이다. 제사를 오일에 모시는 이유는 처녀의 기가 세기 때문에 기가 가장 센 날인 말날[오일(午日)]로 잡은 것이라고 한다. 제물(祭物)은 밥, 떡, 술, 과일, 나물, 고기, 쇠머리와 간 등을 차린다. 제관(祭官)은 마을 사람 가운데 생기복덕을 가려 정결한 사람 다섯 명을 뽑는다. 그 가운데 세 사람은 제물을 준비하는 당주이고 두 명은 제관이다. 제를 지내기 사흘 전에 당을 깨끗이 청소하고 금줄을 쳐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제일(祭日)이 되면 당주집에서 장만한 제물로 먼저 큰 당에 가서 제를 지낸 후 작은 당인 해신당으로 간다.

해신당제에는 당일 낮에 만들어 놓은 남근 3개 또는 5개씩을 짚으로 엮어 제를 올린다. 남근에는 붉은 황토를 칠해서 실물과 같은 피부색을 만들기도 한다. 3년마다 한 차례 당굿을 할 때는 유교식 제의를 치른 다음 큰 당의 서낭신과 작은 당의 익사한 처녀신을 마을 중앙 모래사장에 모셔 놓고 무당이 당굿을 하기도 한다.

남근은 당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깎는다. 향나무를 재료로 하여 낫이나 자귀로 남근을 깎는다. 그런데 매년 남근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 이유는 남근은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깎는 가운데 항상 자기 것을 모델로 해서 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러 해 동안 깎은 남근들을 보면 함께 목욕탕에 가지 않아도 마을 남자들의 남근 모양을 모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남근깎기 축제]

남근은 삼척의 명물로 자리하였다. 1999년 죽서문화제의 한 행사로 남근깎기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것이어서 당시 세계 언론에 토픽뉴스로 소개될 정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서 의견 조정을 위하여 2년 동안 행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2002년 동굴축제를 하면서 남근깎기 대회는 다시 부활되었다. 행사 규모도 국내에서 국제 행사로 확대되었다.

남근깎기 대회에서 깎아진 남근상은 해신당 주변과 해신당 위 언덕 남근 조각공원에 전시하고 있다. 첫해에 깎아진 남근상은 해신당 주변에 자리하고 있으며, 두 번째 남근 깎기대회의 남근상은 남근 조각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첫해 참가자는 국내에서 장승을 깎던 사람이 주로 참가하였고, 두 번째 대회에는 국내외 조각가들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작품 수준에 차이가 났다. 남근 조각공원에 있는 작품명들을 보면 음양 조화, 한마음, 힘의 원천, 성·행복, 우주의 근원 등과 같은 좀 더 근원에 가까운 제목에서부터 기다림, 수줍음, 애랑낭자의 삶, 망부와 같은 해신당 전설과 연관된 것도 있었다. 또 미녀와 난봉꾼, 덕배도령과 같은 장난끼 있는 것도 있었다. 다양한 남근 모습만큼이나 남근 숲을 지나가는 관람객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작품이 작가를 떠나면 이후의 몫은 감상하는 사람의 것이기에 다양한 반응이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촌민속전시관 성민속실]

어촌민속전시관 안에는 성민속실이 있다. 성민속실은 우리나라와 세계 각 지역의 중요한 성 민속을 모형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삼척의 성 민속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성 민속이 전실에 있다. 이어서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이집트와 중동지역, 남태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성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이 좁아서 전시품이 제한됐을 뿐만 아니라 전시하고 있는 모형이 실제 크기와 달라서 아쉬움이 있지만 세계 성 민속 이해에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성민속실 입구는 삼척 기줄다리기암줄과 숫줄이 연결된 모습으로 만들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정면 벽에 울주 반구대 암각화 모형을 만난다. 울주 암각화는 우리나라 암각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성 민속을 보여 주는 가장 오래 된 것이기도 하다. 왼쪽 진열실에는 신라시대 토우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신라 토우는 토기에 부착되어 있는 토우(土偶)와 독립된 토용(土俑)으로 구분된다. 토기에 부착되어 있는 토우는 다양한 모습의 인물상이 나타내고 있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남녀상과 남녀 성교상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의 새끼줄에 감겨진 돌기둥 위에 한 마리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은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돌솟대이다. 남근 모양의 불상이 새겨진 것은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벽나리 민불(民佛)이며, 고려시대 청동거울과 조선시대 엽전에는 다양한 체위의 성교상이 새겨져 있다.

세계 성민속실은 중국 고대의 암각화와 성 숭배물, 남근과 여근을 숭배하는 일본의 신사(神社)가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에서 성 숭배 신앙이 번창하였다. 특히 시바신을 상징하는 링가는 남근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여성의 성을 상징하는 것은 요니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도 성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다. 유럽에서 성 숭배의 시작을 알려주는 가장 오래된 유물은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여체 조각상이다. 그리스 성 숭배 문화와 로마의 폼페이 벽화 등이 소개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