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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02
한자 三陟-, 五十川
영어공식명칭 Oship-Stream, Lifeline of Samcheok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김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오십천 - 강원도 삼척시 일원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삼척시와 태백시에 걸쳐 있는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

[개설]

오십천은 강원도 태백시 동북부의 통동과 연화동에 걸쳐 솟아 있는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의 도계읍·신기면·미로면을 지나고, 삼척시 남부를 동류하여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영동 지방에서는 가장 길며, 예부터 삼척시를 대표하는 하천이다. 하류에는 관동팔경의 제1경인 죽서루가 있으며, 하구에는 척주동해비가 있다. 삼척 시민들의 삶과 문화가 농축되어 있어 삼척시의 젖줄이라 할 수 있다.

[오십천의 특성]

오십천은 백병산[1259m] 북서 사면의 백산골에서 발원하며, 영동 지방에서는 가장 긴 하천이다. 오십천의 길이는 1918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지지자료』에 52㎞,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48.8㎞, 『두산백과』에 40.06㎞, 『표준국어대사전』에 55.76㎞, 『한국의 산하』에 59.5㎞ 등 이견이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삼척부」 산천조에서 하천은 유일하게 오십천만 기록되어 있으며, “성 남쪽 150리[약 59㎞]에 있다. 물의 근원은 우보현(牛甫峴)에서 나온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662년(현종 3)에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이 편찬한 『척주지』에도 발원지를 “우보산유현이라고도 하며, 부에서 90리[약 35㎞] 떨어져 있고, 태백산 동쪽 기슭에서 갈라진 별도의 산이다. 오십천이 이 산에서 발원하며, 그 발원지를 구사흘(九沙屹)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언급된 구사흘(九沙屹)은 한자는 다르지만 도계읍 구사리(九士里)를 일컫는다. 이곳은 통리협곡을 사이에 두고 우보산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 위치 설명에서 오류를 보인다. 현재 오십천의 발원지는 구사리 백산 마을에서 백병산 북서 사면에 있는, 태백시 통동의 원통골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괴비덕재 아래에 위치한 ‘큰덕샘’으로 알려져 있다. 큰덕샘에는 ‘오십천 발원지‘라고 새겨진 작은 비석이 있다. 큰덕샘에서 발원한 물은 동류하다가 백산 마을에서 삼척시가곡천과의 분수령 근처에서 곡류하여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흐르다가 미인폭포를 이룬다. 『척주지』에도 “발원지인 구사흘 아래는 수십 장(丈)의 폭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미인폭포오십천 최상류에 위치하며, 경관이 매우 뛰어나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2009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포함되었다.

미인폭포를 통과한 오십천은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지질 구조선을 따라 전반에 걸쳐 직선상의 하곡 형태를 띤 채 도계읍 구사리 고개 북쪽 사면에서 북서 방향으로 정거리골을 지나 여러 탄광 지대를 거쳐 도계초등학교 부근에서 계류를 합류시킨다. 그리고 도계읍 무건리이끼폭포가 있는 용소골에서 발원하여 성황골을 거쳐 북서 방향으로 흘러내린 계류(溪流)와 도계읍 한내리푯대봉[1010m] 및 구부시령 사이의 여러 물길들이 합해진 뒤 동쪽으로 흘러내린 계류가 영동선하고사리역 부근에서 오십천과 합류된다. 이곳을 지난 오십천은 직선상의 하곡(河谷)[하천이 흐르는 골짜기] 내에서 심한 곡류 하도(谷流河道)[경사가 완만하여 물줄기가 구불구불한 하천]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덕항산[1070.7m]과 지각산[1079m]에서 발원한 각종 물길은 신기면 대이리·대기리·고무릉리 등지를 거쳐 신기리에서 오십천과 합류된다. 또 노곡면 상군천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하월산리 부근에서 서쪽 방향으로 흐르는 천기천이 미로면 활기리에서 오십천과 만난다. 이곳부터 오십천 유로의 물굽이가 더욱 높아지며, 미로면을 통과하다가 삼척시 도경동 물방아골 부근에서 동쪽 방향으로 물길을 돌려 관동팔경의 하나이자 보물 제213호인 삼척 죽서루를 거쳐 동해로 유입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오십천죽서루 아래에 와서는 휘돌면서 못이 되고, 또 동쪽으로 흘러 삼척포(三陟浦)를 이루면서 바다에 들어간다. 부에서 물 근원까지 마흔 일곱 번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대충 헤아려서 오십천이라 일컫는다.”라고 기록하였다. 『척주지』에서도 “이 물이 동쪽으로 1백여 리를 흘러 바다로 들어가며, 그 하천이 오십 번을 굽이쳐 흐르기 때문에 이름을 오십천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척주지』에서는 오십천 하류 상황을 “오십천남산(南山) 석애(石崖)를 지나 동북쪽으로 흐르다가 북정산 앞 들판에서부터 봉황대 아래에 이르기까지는 깊은 소(沼)를 이룬다. 이 소를 봉황지(鳳凰池)라고 한다. 여기서 오십천은 꺾인 뒤 남쪽으로 흐르다가 광구·사직을 지나면서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표현하였다. 1962년에 시작해 1970년에 완공된 오십천 수로 변경 공사로 시가지를 휘돌아 흐르던 오십천은 현재 시가지 남부를 직선으로 흐르고 있다.

오십천과 함께 산지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하천은 감입곡류하천이라고 한다. 지반 융기에 의해 평지를 흐르던 곡류 하천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냇바닥[하저(河底), 하천의 밑바닥]을 깊게 판 것이다. 그래서 오십천은 동해 사면이 요곡 융기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곡류하던 하천이 잘록한 부분을 계속해서 침식하면 직선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곡류절단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생겨서 물이 흐르던 과거의 물길을 구하도(舊河道)라 하며, 새로운 물길과 구하도 사이의 낮은 구릉을 곡류핵(曲流核)이라 한다. 감입곡류하천의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오십천의 중·하류 구간에서도 곡류절단이 많이 이루어져서 4개의 구하도와 곡류핵이 분포한다.

동해로 직접 유입하는 여러 하천 가운데 오십천 유역의 하안단구(河岸段丘)[하천 흐름에 따라 계단 모양으로 생겨난 지형]들은 빙기에 형성된 단구와 간빙기에 형성된 단구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하안단구는 한국동해안의 제4기 지형 발달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하안단구는 주로 오십천의 중·하류 지역에 해당되는 삼척시 신기면 안의리부터 하구 구간 사이에 분포한다. 하안단구는 형성된 위치와 원인에 따라 크게 기후단구, 해면변동단구로 구분된다. 이들 모두 빙기와 간빙기의 교차에 의해 형성된 단구이다. 기후단구는 하천 중·상류에 형성되는 하천 지형이며, 해면변동단구는 하류에 발달하는 단구이다. 오십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신기면 대평리부터 도경동에 이르기까지는 기후단구, 미로면 상거노리 부근에서 현재 삼척 시가지에 있는 성남동에서는 특히 해면변동단구가 각각 넓게 분포한다. 이들 단구가 분포하는 곳은 대부분 평탄면을 이루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평탄면 가운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에서는 용식작용으로 형성되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와지 돌리네, 우발라 등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다. 이 일대는 카르스트 지형 특성 상 물이 잘 빠지기 때문에 논농사는 극히 제한되고, 대부분 밭이나 과수원으로 이용된다.

[오십천과 죽서루]

관동팔경의 하나이자 보물 제213호로 지정된 삼척 죽서루오십천의 측방침식으로 형성된 석회암 하식애(河蝕崖)[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겨난 언덕] 위에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죽서루는 객관 서쪽에 있다. 절벽이 천 길이고, 기이한 바위가 총총 섰다. 그 위에 날아갈 듯 한 누를 지었는데 죽서루라 한다. 아래로 오십천에 임했고, 냇물이 휘돌아서 못을 이루었다. 물이 맑아서 햇빛이 밑바닥까지 통하여 헤엄치는 물고기도 낱낱이 헤아릴 수 있어 영동 절경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1422년(세종 4년)에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사눌(柳思訥)[1375~1440]은 ‘천길 푸른 석벽 겹겹으로 둘러 있고, 오십 맑은 냇물이 졸졸 흐른다.’라는 시로 오십천죽서루를 노래하였다. 고려공민왕 때 강릉 안겸사를 지낸 정추(鄭樞)[1333~1382]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구(鄭逑)[1543~1620] 등도 한결같이 오십천죽서루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시를 지었다. 단원김홍도(金弘道)[1745~?]도 죽서루의 모습을 ‘죽서루도’에 남겼다. ‘죽서루도’에는 오십천이 갈지자형으로 크게 감돌아가는 절벽이 눈에 띈다.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강변에 있으며 가장 큰 누정인 죽서루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는 두 가지 이야기로 전하여져 온다. 하나는 죽서루 동쪽에 대나무 밭이 있고 그 대밭 속에 죽장사라는 절이 있어서 죽장사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하여 죽서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죽서루 동쪽에 죽죽선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살던 집이 있어서 이 집의 서쪽에 있다는 뜻에서 죽서루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오십천과 척주동해비]

삼척 오십천은 급경사인 태백산맥 동쪽 사면을 급하게 흐르다가 갑자기 완만해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홍수가 나면 대체로 완만한 지역에 있는 마을은 엄청난 재해를 맞아야만 했다. 조선시대 대학자 미수허목이 삼척부사로 부임할 당시 동해 바다는 지금도 자주 발생하는 너울성 파도에 의한 피해가 극심하였다. 밀물 때는 바닷물이 삼척 시내까지 밀려들어 왔다. 여름철 홍수까지 겹치면 강 하구가 막히고 하천이 넘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동해 바다를 예찬하는 글 「동해송(東海頌)」을 짓고 생선 모양을 형상화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로 옮겨서 비를 세웠다. 그러자 동해안에는 조수로 인한 피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비석을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부른다.

[오십천, 미인폭포, 통리협곡]

오십천의 최상류인 도계읍 심포리에는 높이 약 30m의 미인폭포가 있다. 심포폭포라고도 한다. 미인폭포의 계곡 바닥에는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다양한 크기의 암괴들이 있다. 이들 암괴는 자갈, 모래, 점토 등이 섞여 있는 역암이다. 미인폭포 양쪽 절벽 면에는 지층이 형성될 당시의 퇴적 환경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북쪽은 식생이 전혀 자라지 않고, 붉은색 수직 절벽이 시루떡을 포개어 놓은 듯한 퇴적층을 이룬다. 이 역암층은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자갈 굵기가 고른 역암층과 크고 작은 자갈이 뒤섞여 있는 역암층으로 구분된다. 굵기가 고른 자갈로 이루어진 역암층은 강물이 안정된 상태로 흐르면서 퇴적된 것이다. 이에 비하여 크고 작은 자갈로 이루어진 역암층은 홍수가 일어났을 때 퇴적되어 굳어진 것으로, 이 시기의 기후가 대체로 건조하였음을 알려준다. 자갈 굵기가 고르지 않은 역암층 아래에는 고생대 지층인 조선누층군과 평안누층군이 있다.

현재 협곡을 흐르고 있는 오십천은 과거 단층선 위에 발달한 하천이지만 신생대 제3기인 약 2300만 년 전에 동해의 해저지각이 확장되면서 한반도의 비대칭형 융기에 따른 태백산맥의 급격한 융기에 의하여 오십천의 고도가 높아졌으며, 이에 비하여 침식 기준 면은 대체로 낮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오십천은 하방침식이 증가하고 이와 함께 두부침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당시 강바닥이 더욱 깊게 파이면서 상류 쪽으로 개석(開析)[하천의 침식작용으로 골짜기가 형성되면서 지형이 새롭게 바뀌는 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천이 상류 쪽으로 침식을 진행하다 보면 일종의 경사급변점이 생기게 된다. 이곳으로 떨어지는 물길이 바로 폭포다. 즉 삼척오십천미인폭포는 지반의 융기에 따른 오십천의 하방침식 증가와 함께 고생대 지층에 비해 약한 역암층의 풍화 및 오십천의 차별침식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오십천의 두부침식 전단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1억 년에 가까운 지질 시대를 걸치면서 현재의 경관을 이루고 있는 미인폭포는 한반도의 지사(地史) 및 지형 형성 과정 등을 그대로 간직한 오십천의 예술 작품이 된다. 비록 규모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 비해 매우 작지만 생성 과정이나 지형·지질학상의 특성이 비슷하여 미인폭포가 있는 통리협곡은 ‘한국판 그랜드캐니언’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삼척 오십천 유역과 삼척시민의 삶]

1. 오십천 수로 변경 공사

오십천 하구에 있는 삼척항은 지난날 정라항으로 불렸으며, 강항(江港)[강어구의 항구]이었다. 어선들은 대부분 오십천에 정박해야 하였지만 상류에서 내려온 많은 하천 부유물이 하구에 퇴적되면서 수심이 얕아지자 선박 정박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이 때문에 1934년부터 강원도 2개년 연속 사업으로 오십천 준설 공사가 실시되었다. 이 공사는 단순히 선박 정박뿐만 아니라 오십천의 범람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십천 하류는 곡류에 따르는 범람으로 말미암아 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오십천 하구 부근에서 곡류를 유도하는 곳은 당시 삼척읍 남양리에 위치한 구릉 남산이었고, 이 때문에 남산을 뚫어서 유로를 직선으로 하면 홍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사업이 ‘오십천 수로 변경 공사’이다. 공사는 1962년 1월 29일 낮 12시에 당시 삼척공업고등학교 교정에서 오십천 수로 변경 기공식을 거행하며 시작되었다. 1970년에 완료된 이 공사는 삼척시의 중요 자원인 시멘트의 원료 석회석과 점토를 발굴하고, 농지 면적과 택지를 늘리며, 해마다 반복되던 홍수 피해를 예방하고, 관광지 개발을 한다는 일석사조 효과를 노린 대규모 토목 사업이었다. 이 공사는 삼척읍 남양리에 위치한 구릉인 남산을 뚫어서 길이 380m, 폭 160m의 새 물길을 만드는 대신 남양리를 돌아 흐르는 물길은 매몰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사대광장(沙臺廣場)을 휘돌아 흐르던 오십천남산을 곧장 관통하여서 남양리황산(篁山) 아래로 흐르게 되었다. 남산이 절단됨으로써 동북쪽에 독립된 새로운 남산이 생겨 났으며, 과거의 물길은 현재의 시가지가 되었다.

2. 연어의 고장 오십천

1936년 1월 한 일간지에 실린 삼척 방문기에는 “오십천에서는 1년에 수만 마리의 연어를 비롯하여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어류가 있어 삼척이라는 산업지대에서는 필수 산업이었다. 1년 어획물 30만 6118원 중에서 연어가 15만 원을 점령하고 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오십천은 연어의 고장으로 유명하였다. 해방 이후 당시 수산청은 1966년 11월 초부터 연어 자원 보호를 위하여 오십천에서 연어 인공 부화 방류 사업을 시행하였다. 12월 말까지 인공 부화된 치어는 1967년 7월 말에 방류되었다. 이때 방류된 연어를 다른 연어와 구별하기 위해 겉면에는 ‘1967 ROK’, 후면에는 ‘삼척오십천’이 각각 새겨진 직경 1㎝의 표지판을 부착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삼척시는 어업인 소득 증대와 수산 자원 조성을 위하여 2017년 2월에도 오십천마읍천에 각 75만 마리의 어린 연어가 방류되었다. 삼척시는 1966년 연어 방류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16년까지 총 8100만 마리의 연어를 방류하였다.

3. 축제의 장소 오십천

2002년에 삼척세계동굴엑스포가 오십천 변인 현재의 강원도 강릉시 성남동에서 열렸다. 2003년에 개최된 삼척해변동굴축제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성남동은 ‘엑스포공원’으로 관리되어 오다가 2017년 ‘가람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여기에 ‘삼척기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소공원 조성과 함께 기줄다리기 모형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이곳에는 2016년 9월에 개관한 가람영화관도 있다.

한편 2016년부터 삼척시는 오십천 장미공원에서 매년 장미축제를 실시하고 있다. 삼척 장미공원은 2009년부터 약 18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정상동오십천 둔치에 7만㎡ 규모로 조성되기 시작해 2013년에 완공되었다. 이 공원에서는 겨울에도 ‘겨울 장미빛 거리’ 행사가 실시되고 있으며, 오십천을 따라 가람영화관-시립도서관-장미공원으로 이어지는 오십천 수변 관광지도 조성되어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민에게 많은 애환과 함께 수많은 관광지를 제공하는 한편 삼척시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는 등 삼척시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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