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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관동 의병의 삼척 전투. 1896년 4월 삼척에서 벌어진 관동 의병과 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일제의 침략에 따른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발생하였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뒤따른 제도의 변혁과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척사위정(斥邪衛正)의 민족 사상과 국권 수호의 구국 이념을 강령으로 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궐기하자 삼척에서도 창의장(倡義將) 김헌경[1851~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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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남침으로 강원도 삼척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1953년 7월 휴전 성립 때까지 지속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 전쟁은 당시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약속받은 북한에 의해 1950년 6월 25일 38도선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삼척 지역은 7월 1일 북한군에 점령되었다가 9월 30일 수복되었다. 전쟁 발발 직후 미국은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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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산(葛山)과 신남(薪南)을 장호리에서 분리시키면서 갈남리라고 하였다. 조선 인조 때 진씨는 갈산, 엄씨는 신남에 각각 이주하였다. 그후 엄씨 외손인 밀양 박씨, 삼척 김씨 등이 점차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106호 260명, 1962년 206호 1014명,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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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갈전리의 명칭은 예전부터 이 지역에 칡덩굴이 무성하여 칡밭[갈전(葛田)]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조선 명종 때 울진군으로부터 남훈(南訓)이 이주하고 이후 박씨, 안씨, 이씨, 최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20여 호 660명, 1962년 147호 539명, 1982년 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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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에 형성된 영양남씨 세거지. 영양남씨는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훈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 성씨이다. 갈전리(葛田里)는 칡밭이라 하는데, 예부터 칡덩굴이 무성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명종 때 울진군으로부터 남훈(南訓)이 이주하면서 세거지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영양남씨의 시조 남민은 본시 중국당나라 사람 김충(金忠)으로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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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갈천동 지역은 해안에 갈대와 물억새가 무성하여 갈내[蘆川] 혹은 가을천(加乙川)이라 불러오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갈천(葛川)이 되었다. 갈천동은 삼척심씨가 개척하였고 이후 이씨, 신씨 등이 이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1914년 탄막, 율곡, 돈천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져 이루어진 법정리이다. 갈천동은 삼척시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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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개산리는 노곡면에서 고지대에 해당하는 가운데 천씨(千氏) 등이 이주하여 최고(最高) 산지를 개간하였다 하여 개산(開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맨 처음에 천씨(千氏)가 이주하여 개척하였고, 이후 진대성(陣大成)과 장한문(張漢文)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22호 184명, 1962년 22호 145명,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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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16세기 초 로마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종교 개혁으로 알려진 이 운동의 주창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고발하면서 교회의 전통과 권위에 저항하였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Protestants)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가톨릭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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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여운형 중심으로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의 삼척 지역 활동. 건국준비위원회는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인 1944년 8월 조국 광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여운형이 조직한 비밀 단체인 건국동맹을 모체로 1945년 8월 17일 결성되었다. 통치 기구 부재로 발생할 사회 혼란을 방지하는 한편 연합군이 진주할 때까지의 정치 상황 공백을 메우고 건국에 필요한 준비를 하기 위하여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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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건지동은 본래 건지곡(乾芝谷), 건지동(搴芝洞)이라 불렀는데 근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항상 말라서 물이 없었기 때문에 건거(乾渠)라 하였다. 근산의 골짜기를 건지곡(乾池谷)이라 부른 것이 지금의 건지동(乾芝洞)이 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건지동은 진(陣)씨가 이곳을 처음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1453년(단종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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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 건립된 사우. 경행사우는 17세기 때 삼척에 건립된 사우로, 김효원을 봉안하였다가 나중에 서원이 된 뒤 삼척부사 허목을 추봉하였다. 1868년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다. 1631년(인조 9)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효원(金孝元)[1542~159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삼척 교리북정산(北亭山) 밑에 사우(祠宇)인 경행사(景行祠)를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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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가 지속되던 시기의 삼척 지역 역사와 문화. 757년부터 삼척군으로 존재해 오던 삼척 지역은 고려시대에 들어와 995년 척주로 명칭이 개칭되고 읍격이 군에서 주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 삼척현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인 1376년에 다시 삼척군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과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지방 세력의 향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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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허목이 쓴 『척주지』에 따르면 고무릉리는 고물암(古勿庵)이라 하였다. 본래 이곳에 고물암이라는 암자가 있었기 때문에 동명(洞名)이 된 것이고, 이것이 와전되어 심의승의 『삼척군지』에 고무릉으로 기록되었고 현재까지 고무릉리(古武陵里)로 부르고 있다. 조선 숙종 때 경상도에서 우계 이씨, 영조 때 강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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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본래 이 마을에서는 고사리가 많이 났기 때문에 허목의 『척주지』에는 궐리(蕨里)라 하였으나 『여지도서』에는 고사리(古沙里), 1916년 편찬된 『삼척군지』에는 고사리(古士里)라고 하였다. 후에 『삼척군지』에 나타난 고사리(古士里)를 법정리명으로 명명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마을 앞 안산이 험하여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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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고자리는 월산천(月山川)이 북류하여 남쪽에서 땅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에 본래는 들녜골[입고동(入古洞)]이라고 불렀으나 이후 속전되어 고자리(古自里)가 되었다. 조선 선조 때 정인보(鄭仁普)가 북평 쇄운리에서 이주한 이후 최씨, 박씨, 진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75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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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고천리 지역은 두타산 밑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직선으로 뻗어 흐른다 하여 고든내[직천(直川)]라 하였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고내[화천(花川)]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천(古川)으로 명명되었다. 조선 선조 때 근덕면 교곡리에서 김철신(金喆信)이 이주하고 이후 고성안첨사 진우일(陣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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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공전리의 명칭은 이 지역에 공허전(空虛田)[묵은밭]이 많았기 때문에 공전(公田)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숙종 때 배씨, 변씨 등이 이주하고 이후 삼척 김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본래 토산리에 속하였다가 정조 때 분리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7호 79명, 1962년 26호 15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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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있는 정자. 관덕정(觀德亭)은 근덕면 교가리근덕초등학교 바로 뒷산인 관후산 중턱에 있는 근덕면 유일의 정자이다. 1959년 봄에 이 고장 유지 김진우(金振禹) 외 140명이 성금을 모아 건축하였고, 김하용(金夏鎔)의 글과 당시 군수 이상용(李相鎔)의 찬양 글이 있다. 특히 궁촌리영은사에 잠시 은거하고 있던 탄허(呑虛) 스님의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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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관동은 강원도동해안 지역을 가리키며, 예부터 동해 바다, 하얀 모래밭, 울창한 소나무 숲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관동팔경은 이들 뛰어난 경관 속에 있는 누대와 정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여덟 곳을 지칭한다. 관동팔경의 선정 기준은 사람이나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달랐다. 고려 말 안축(安軸)[12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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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동굴 지대에 있는 석회암 동굴. 관음굴 입구의 크기는 폭 4.2m이며, 높이는 3m이다. 주굴의 길이가 1.2㎞이며, 지굴의 길이가 0.4㎞이다. 관음굴(觀音窟) 내부에는 4개의 폭포가 있다. 관음굴은 환선굴과 함께 대이리동굴군[천연기념물 제178호]을 구성하고 있다. 관음굴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大耳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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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이보혁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이보혁(李普赫)[1684~1762]이 선정(善政)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1734년(영조 10)에 세웠다. 이보혁은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이다. 좌의정 이세백(李世白)[1635~1703]의 재증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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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의 선정비. 조선시대 강원도관찰사 한익상이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현재 1980년에 옛 비석의 내용을 그대로 새겨서 만든 비석과 함께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한익상(韓益相)[1767~1846]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서원(西原)[지금의 청주]이다. 초명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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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광동리의 명칭은 이 지역이 넓고 평지마을이라 하여 넓골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광동(廣洞)이라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경종 때 전진량(全眞良), 김한서(金漢瑞), 함상진(咸尙振)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50호 207명, 1962년 121호 739명, 1982년 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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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광태리는 본래 민태불우(敏泰佛宇)가 있어 민태, 빗태 등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광태리(光泰里)가 되었다. 조선 숙종 때 이재정(李載鼎)이 이주하였고, 이후 홍씨·이씨·김씨·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28호 155명, 1962년 50호 296명, 1982년 72호 38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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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교가리는 고구려의 파리현(波利縣)과 통일신라의 해리현(海利縣) 소재지였으며, 교가역(交柯驛) 및 평릉도찰방(平陵道察訪)의 소재지였다. 마을 가운데에 느티나무가 있으며, 이 나뭇가지가 상교(相交)한다 하여 교가리(交柯里)라 하였다. 고려시대 때 김인궤(金仁軌)가 살던 곳이라 하며, 김귀존(金貴存)·이득성(李得成)·이운소(李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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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형성된 세거 성씨.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신라대보공(大輔公)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여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 김추(金錘)가 시조이다. 그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君)에 책봉(冊封)되어 관향(貫鄕)을 삼척(三陟)으로 하였으며, 김추(金錘)는 김알지(金閼智)의 29세손이다. 교가리는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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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있는 쐐기풀목 느릅나무과 느티나무. 삼척 교가리 느티나무는 강원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고, 마을 정자목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나무 주변에서 1일과 6일로 끝나는 날에 오일장이 열리고 있다. 삼척 교가리 느티나무의 수령은 약 1100년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높이가 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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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교곡리는 무릉천(武陵川) 상류에 위치하여 교량 가설이 다소 많아서 다래실, 다리실이라고 불리기도 하다가 한자로 표기하며 교곡리(橋谷里)가 되었다. 이문성(李文聖)이 처음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자손은 다 흩어지고 선조 때 김국주(金國柱), 숙종 때 정임주(鄭任柱) 및 박천봉(朴天奉)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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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행정동으로서의 교동은 법정동인 교동, 갈천동, 증산동, 우지동, 마달동의 업무를 총괄 운영하고 있다. 법정동으로서의 교동은 1986년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할 때 교리, 갈천리, 증산리, 우지리, 마달리의 5개 리가 합쳐지면서 성립되었다. 이들 동리의 이름은 모두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다. 교동이라는 이름은 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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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기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삼척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삼척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을 각각 조선시대 이전, 조선시대, 근대,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육이란 인간이 삶 영위에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전하는 과정이며,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인간의 모든 지식이 전수되고 교육되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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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허목의 『척주지』에는 구사흘(九沙屹)이라 하였다. 마을 앞 도로가 구곡(九曲)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홉 사리’라 부른 데서 구사리(九士里)라 유래되었다. 조선 영조 때 김해김원일이 이주한 뒤로 홍씨, 이씨, 황씨, 최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37호 180명, 1962년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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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조선시대 궁궐을 짓기 위해 보호하고 관리했던 황장목과 황장목을 보호, 관리하기 위해 세운 비석. 19세기 후반에 지은 김종산(金宗山)의 『척주지(陟州誌)』 권 2, 산천조(山川條)에는 삼척 지방의 황장봉산을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도『강원도지(江原道誌)』[1940년] 권 3, 토산(土産), 삼척조(三陟條)에는 ‘교곡산에서 신라시대 황장목을 벌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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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궁촌리는 고려공양왕(恭讓王)이 왕위를 조선태조이성계에게 물려주고 원주(原州), 간성(杆城)을 거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여 궁촌(宮村)이라고 하였다. 조선 선조 때 강릉 최씨, 삼척 김씨, 영천 이씨, 우계 이씨 등이 이주하고 이후 영일 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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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권경손(權慶遜)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자는 순호(順浩)이며, 호는 농은(農隱)이다. 동추(同樞) 권동(權凍)의 후손이다. 권경손은 어머니의 병환을 대신 앓기를 하늘에 빌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꿩이 마당에 들어오고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왔다고 한다. 또 박달나무에 버섯이 나고 뽕나무에 오디가 달리는 기적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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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692-11 관덕정에 있는 조선시대 평릉도의 교가역을 관리한 역대 찰방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평릉도(平陵道)[조선시대 강릉, 삼척, 울진, 평해 지역에 있던 16개 역을 관장하던 역도(驛道)]의 소관 중심역이던 교가역(交柯)[1475년 평릉역에서 이전, 1896년 폐지]의 찰방(察訪)[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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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 1931년 11월 30일 삼척청년동맹의 핵심 인물인 황운대(黃雲大), 김덕환(金德煥), 심부윤(沈富潤) 등이 근덕면 교가리에서부터 노곡면까지의 도로 개설 공사에 따른 강제 부역과 공사비 징수에 불만이 있는 근덕면민을 동원하여 한밤중에 근덕면사무소를 습격한 사건이다. 일제 통치에 대한 반발심과 함께 도로 개·보수 공사에 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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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근산동의 명칭은 마을의 위치가 삼척시에서 남서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근산 밑에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숙종 때 김씨, 박씨, 진씨 등이 이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근산동은 본래 건지동에 속하였는데 1870년 (고종 7)경에 분리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근산동은 삼척시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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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금계리는 마을이 형성될 당시 산 곁의 반석이 많은 곳에 위치하였다 하여 난댁이·난다기 등으로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며 비저(飛楮)·비계(飛鷄)라 하였다가 와전되면서 금계리(金谿里)가 되었다. 삼척 김씨, 전주 이씨, 경주 이씨, 진씨, 홍씨, 박씨, 심씨, 변씨, 안씨, 임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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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금계리에 형성된 세거 성씨. 삼척김씨 김원적(金元迪)이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금계리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마을과 세거 성씨이다. 금계리는 마을의 산 곁에 반석이 많은 곳이라 하여 ‘난댁이’ 혹은 ‘난다기’라 불렸고, 이를 한자로 ‘비저(飛楮)’ 혹은 ‘비계(飛鷄)’라 하다가 지금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400여년 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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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기곡리의 서남단에 갈경산(葛景山)이 있어서 그로 인하여 칠기실[기실(箕實)]로 불리다가 기실(杞實), 기곡(杞谷)으로 변하였다. 조선 중종 때 변씨·고씨·류씨 등이 마을을 만들고 그후 삼척 김씨, 김녕 김씨, 조씨, 이씨, 최씨, 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140호 744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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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오십천 및 마읍천 하구 해안과 농경지 등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오리과 흑기러기속과 기러기속에 속하는 새의 총칭. 기러기는 반구 북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남하해서 강원도 삼척시오십천 및 마읍천 하구 해안과 농경지 등지에서 관찰되는 겨울 철새이다. 오리와 비슷하지만 목이 길고 다리가 짧다. 부리는 검은색이고, 부리 끝에는 주황색 띠가 둘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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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조선 선조, 광해군 때의 삼척 지역 유생으로, 삼척향교의 동무와 서무를 지었다. 본관은 강릉이고, 아버지는 김인지(金仁祉)이다. 그러나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자는 계순(啓純)이며, 1606년(선조 39) 생원시에 합격하여 정온(鄭蘊) 등과 함께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올랐다. 당시 박세신(朴世信)이 삼척향교의 재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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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신. 김경정(金景淨)의 본관은 강릉이며, 참봉 김효뢰(金孝賚)의 증손이다. 가계는 자세하지 않다. 조선 인조 대 문신이다. 음서(蔭敍)로 금부도사(禁府都事)를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에 올랐다. 예학(禮學)에 밝아 1604년(선조 37)에 정대춘(鄭大春), 김성건(金誠鍵) 등과 더불어 삼척 지역에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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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향현. 김계건(金啓鍵)은 장례원(掌隷院) 사평(司評) 김인복(金仁福)의 아들이다. 형은 김기건(金起鍵), 동생은 김득건(金得鍵)이다. 김계건의 초명은 용건(用鍵), 자는 이계(而啓), 호는 호해정(湖海亭)이다. 1660년(현종1)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강원도 관찰사에게 건의하여 삼척향교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건축하였다. 저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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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구정(金九鼎)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738년(영조 14)에 후손인 김효윤(金孝胤)이 효자비각 내의 퇴락한 비석에 대신하여 새로 세운 비석이 있다. 김구정은 1674년(현종 15)에 현종 국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상복을 한결같이 입었다고 한다. 또 모친의 병세가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었는데 모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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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향현. 김구혁(金九爀)[1798~1859]의 본관은 강릉이다. 아버지는 칠암공(七巖公)김종집(金宗鏶), 어머니는 강릉최씨이다. 김구혁의 자는 군직(君直), 호는 구봉(九峯)이다. 당시의 명유(名儒) 최종원(崔鐘遠)에게 글을 배웠다. 18세 되던 해에 강릉김씨 항길댁(恒吉宅)에 양자로 들어갔다. 김구혁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석에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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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의 효자. 김동일(金東一)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화극(華極)이고, 호는 이락재(二樂齋)이다. 조부는 참봉(參奉)을 지낸 김응경(金應慶)이며, 부친은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지낸 김원혁(金源赫)이다. 김동일은 서울에 유학하여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지만 낙향하였다.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의로움을 행하는 것에 모든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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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척 출신 독립운동가. 김동호(金東鎬)[1877~1924]의 본관은 삼척이다. 고조부는 김득선(金得先), 증조부는 김우경(金佑京), 조부는 김재언(金載彦), 아버지는 김시영[족보에 올라간 이름은 홍간(弘侃)]이다. 김동호는 1915년 8월 25일(음 7월 15일) 대구달성공원에서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이 통합하여 비밀, 폭동, 암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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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김병수(金秉洙)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성원(聖源)이다. 군왕(郡王) 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병수는 1858년(철종 9)에 문과 장원 급제 뒤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에서 근무하였고, 성균관(成均館) 사예(司藝)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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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문관이자 교육자. 김병탁(金秉鐸)의 본관은 강릉이다. 자는 유선(由善)이며, 호는 삼봉(三峯)이다. 아버지는 김시학(金時鶴)이다. 김병탁은 1896년(건양 1)에 교궁(校宮)에 돌아와서 운곡(運穀)의 세금을 없어지게 하여 주민을 도와 주었고, 문학을 장려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1902년(광무 6)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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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김복만(金福萬)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양원이며, 호는 송헌(松軒)이다. 김복만은 1724년(경종 4) 무과에 급제하여 참의(參議)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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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복운(金復運)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개명하여 보헌(寶憲)이라 하였으며, 호는 유헌(楡軒)이다. 김복운은 모친상을 당하여 먼 거리에 있는 묘에 찾아가 3년 동안 슬피 울었다. 1875년(고종 12)에 발생한 홍수 때 묘에 구덩이가 파인 괴상한 꿈을 꾸고 난 뒤 어머니 묘를 살펴보니 산사태로 묘가 허물어져 있었다고 한다. 김복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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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호장. 김상구(金尙矩)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치경(致慶)이며, 호는 화사(花史)이다. 실직군왕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상구는 삼척도호부 호장으로 있었다. 1754(영조 30) 삼척부사가 보관하고 있던 태조의 하사품 홍서대(紅犀帶)를 직접 가지고 가서 왕에게 보였더니 왕은 태조의 유품을 오래도록 보관한 공을 기려 특별히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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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출신 의병장. 김상태(金尙台)[1864~1911]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본명은 상호(尙鎬)이다. 자는 경대(景大) 및 경륙(景六)이고, 호는 백우(白愚)이다. 아버지는 김병규(金丙奎)이다. 김상태는 1864년(고종 원년)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에서 태어났다. 장성한 후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하동면은 2019년 10월 20일 명칭이 김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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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석조(金錫祚)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자는 영우(永佑)이다. 아들은 김익수(金翼洙)이며, 며느리는 박씨이다. 김석조는 유복자로, 평소에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를 입에 흘려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김석조는 어머님을 위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단을 쌓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날짐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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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성성(金聖聲)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일명 성국(聖國)으로 불렸다. 부위(府慰) 김근(金瑾)의 후손이다. 김성성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중에 산짐승의 고기를 원하자 엄동설한에 눈을 헤쳐 가며 멧돼지를 잡아서 드렸더니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김성성은 어머니상을 당하여 3년 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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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성표(金星杓)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팔회현(八悔晛)의 조카이다. 김성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지극하여 밖에 나가 생선이나 고기를 보면 품어 가지고 와서 아버지에게 드렸다고 하며, 아버지를 지나칠 정도로 공경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또 김성표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것이 한이 되어 다시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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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 이주한 문신. 김세민(金世敏)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이호(而好)·장육당(藏六堂)이며, 호는 장육(藏六)이다. 문성공김인존(金仁存)의 후손이다. 1652년(효종 3) 증광 진사시에 급제하여 강릉의 위촌(渭村)에서 구미리(九美里) 대평(大坪)에 정착하였다. 1667년(현종 8) 호군(護軍) 최세익(崔世益)과 함께 문묘(文廟)를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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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 있는 김순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김순필 영세불망비(金淳弼永世不忘碑)는 1890년(고종 27) 김순필(金淳弼)을 중심으로 마을 농민 김성간(金成侃), 김중백(金仲伯), 최오길(崔五吉), 이범식(李凡植), 이민조(李敏祚), 이윤정(李潤政), 이창현(李昌鉉), 이희조(李希祚) 등 8명과 더불어서 협력하여 도랑을 치고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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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시천(金時千)은 본관이 강릉(江陵)이다. 자는 시중(時中)이며, 호는 송헌(松軒)이다. 생원 김경건(金景鍵)의 후손이다. 김시천의 효자비각에는 ‘효자문(孝子門)’이라고 쓴 편액을 걸어 두었다. 효자비각 안에는 주손(主孫) 김진혁(金振赫)의 요청으로 1891년(고종 28) 11월 김병해(金秉諧)가 쓴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정려기(孝子贈朝奉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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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신. 김언지(金彦之)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성약(聖若)이다. 승지(承旨) 김시진(金始振)의 아들이다. 김언지(金彦之)는 1684년(숙종 10) 무과에 급제하고 1707년(숙종 33) 중시(重試)에 합격했다. 선전관(宣傳官), 주부(主簿), 판관(判官), 경력(經歷), 첨추(僉樞), 오위장(五衛將), 부호군(副護軍), 내금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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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신. 김영순(金永淳)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사한(士翰)이며, 호는 봉촌(鳳村)이다. 군왕 김위옹(金渭翁)의 후손이다. 김영순은 1856년(철종 7)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순조와 헌종의 국상을 당하였을 때 6년간 복상(服喪)을 하고 애도하였다는 사실이 1854년(철종 5) 어사 강난향(姜蘭香)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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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강원도 삼척 지역 교육가, 문화예술인. 김영준(金榮俊)[1934~1996]의 본관은 김해이며, 부친 해은(海隱)김병수(金炳洙)와 모친 고일봉(高一奉) 사이의 7남 2녀 가운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준은 1934년 강원도 춘성군[현재 춘천시] 동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삼척으로 이주하여 삼척국민학교와 삼척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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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옥권(金玉權)의 아버지는 4년 동안 설사병으로 고생하였다. 김옥권은 사람의 근본은 하늘이라 믿고 신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3년 동안 하늘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겨울철에 흰눈 속에서 청사[푸른 구렁이]를 얻어 마침내 부친의 설사병을 고쳤다. 아버지는 9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 김옥권의 효행은 헌종에게 알려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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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요령(金堯齡)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시중(侍中) 김인궤(金仁軌)의 후손이다. 김요령은 붓을 던지고 활을 잡아 스승을 택하여 자식을 가르치면서 집안의 화목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불쌍한 사람들을 도왔다. 김요령은 아버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3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하여 약을 지어 드리며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은 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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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문신. 김원식(金源式)의 자는 숙명(淑明)이며, 호는 국재(菊齋)이다. 낭장 김광유(金光裕)의 후손이다. 김원식(金源式)은 1879년(고종 16) 진사에 급제하여 음서로 1902년 의관(議官)에 임명되었고,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직을 받았다. 1903년 영경묘(永慶墓)의 정자각(丁字閣)을 고칠 때 감동관(監董官)을 하여 어린 말[아마(兒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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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김원욱(金源彧)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숙도(淑度)이다. 진사 김원식(金源式)의 동생이다. 김원욱은 1891년(고종 28) 향시에 합격하여 1902년(광무 6) 함북관찰부주사(咸北觀察府主事)에 임명되었다가 의관(議官)으로 승진하였다. 나이 74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906년(광무 10)에는 효행이 있어 내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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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군왕으로 책봉된 뒤 삼척군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은 신라대보공(大輔公)김알지(金閼智)[65~?]후예. 실직군왕 김위옹의 위패는 보본단에 모셔져 있으며, 갈야산 중턱에 위치한 실직군왕묘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김위옹의 아버지 김추의 위패는 보본단 내 숭모사에 모셔져 있다. 김추의 외아들 김위옹은 실직군왕으로 책봉된 뒤 삼척군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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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응규(金應奎)는 본관이 삼척(三陟)이며, 자는 문백(文伯)이다. 동추(同樞) 김종겸(金宗謙)의 아들이다. 김응규는 어려서부터 어버이 섬기기에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모셨다. 아버지가 설사병으로 고생할 때 지나칠 정도로 극진히 간호하였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관을 옮기려 할 때 관짝 틈으로 시신 썩은 물이 흘러나오자 관짝 틈을 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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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고려 말 문관. 고려 말 대장군 김윤성(金允成)의 아들이자 문하시중 김인궤(金仁軌)의 동생이다. 삼척김씨 태사공파(太師公派)의 금자광록대부공파(金紫光祿大夫公派) 파조이고, 동생 김의궤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의 파조이다. 김자남(金自男)-김광립(金光立)-김승우(金承祐)-김손(金蓀)-김자주(金自柱)-김중윤(金仲允)-김지제(金志悌)-김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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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때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관료로, 조선 건국 후 삼척으로 낙향한 인물. 생몰년은 미상이며, 본관은 삼척이다. 고려 말 문관으로, 조선이 건국된 후 삼척으로 낙향하였다. 고려 말 대장군 김윤성(金允成)의 아들이며 김의궤(金義軌)의 형이다. 삼척김씨 태사공파(太師公派)의 금자광록대부공파(金紫光祿大夫公派) 파조이고, 동생 김의궤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의 파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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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인백(金仁伯)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감찰공(監察公)파 김자현(金子鉉)의 후손이다. 김인백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 우애가 두터웠다. 양친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김인백은 조선숙종 때 정려문(旌閭門)을 세우고 조세(租稅)와 부역(賦役)을 면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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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의 효자. 김종섭(金宗燮)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언수(彦秀)이며, 호는 이락헌(二樂軒)이다. 김종섭은 아버지의 유훈(遺訓)에 따라 가난한 살림에도 정성으로 할아버지를 섬겼다. 할아버지가 악성 이질(痢疾)로 고생이 심하여 온갖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다. 김종섭은 할아버지가 앓고 있는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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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강원도 삼척 출신 정치인. 김진구(金振九)[1906~1987]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동생은 7선 국회의원인 동곡(東谷)김진만(金振晩)[1918~2006]이다. 김진구는 1906년 강원도 삼척군[현 동해시] 송정동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백곡농장(百谷農場)을 경영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과 동시에 격렬히 다툰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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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진정(金振鼎)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재정(在鼎)이고, 호는 연재(淵齋)이다. 효자 김진종(金振鍾)의 형이다. 김진정은 타고난 성품으로 효(孝)에 지극하였다. 김진정의 아버지가 알 수 없는 깊은 병에 걸려 5개월 동안 약을 달이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환은 낫지 않았고, 김진정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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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진종(金振鍾)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며, 자는 성오(聲五)이다. 효자 김진정(金振鼎)의 동생이다. 김진종은 아버지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순조가 승하하자 단을 모아 멀리 바라보면서 3년 동안 곡을 하였다고 한다. 김진종의 효행은 1892년(고종 29)에 정려문(旌閭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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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김태명(金台命)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삼로(三老)이며, 호는 용장(龍庄)이다. 봉사 김인지(金仁址)의 후손이다. 김태명(金台命)은 구천이세필(李世弼)의 문인으로 처음에는 용암최세필에게 글을 배웠다. 85세 되던 1766년(영조 42)에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고 1767년(영조 43)에 부호군(副護軍) 및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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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김형귀(金炯貴)의 본관은 삼척(三陟)이고, 자는 태숙(太淑)이다. 김형귀는 어머니가 오래 동안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입으로 자기 피를 넣어 드렸다. 그래도 효과가 없자 다시 다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 드리니 싸늘하던 가슴이 따뜻해지며 어머니가 회생하였다고 한다. 또 김형귀는 어버이상을 당하여 너무 서럽게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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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김형택(金亨澤)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원여(元汝)이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효자 신당(信堂)김성표(金星杓)의 아들이며, 김하택(金夏澤)과 사촌이다. 김형택(金亨澤)은 효라는 훌륭한 가풍을 이어 가기 위하여 효행 실천에 몸과 마음을 다하였다. 김형택은 어버이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할 적에 아버지를 지켜 주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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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산간 마을에서 사용하던 나무 그릇. 나무통은 산간 지역에서 나무 속을 파내어 김치를 저장하던 그릇으로, 김치통이라고 하며 김칫독(김치독)이라고도 한다. 교통과 운반이 몹시 불편해서 독이나 항아리를 사 쓸 수 없는 산간 마을에서 사용하던 귀중한 생활 도구 그릇이다. 직경 70~80㎝ 되는 피나무 속을 완전히 파내어 공간을 만들고, 밑에는 통나무를 함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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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시가지를 감돌아 가는 오십천을 직선화하기 위하여 남산을 절단한 공사. 통칭 ‘남산 절단공사’라 부른다.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 강물이 현재의 시가지인 사대를 감돌아 봉황산 아래로 돌아가는 수로의 남산 중허리를 절단, 성남리에서 황산 쪽으로 직선화함으로써 사대 유역에 새로운 주택 부지를 확보한 공사이다. 삼척의 신도시 조성에 기여한 대역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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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내미로리는 미로면의 명칭을 따서 리명(里名)을 취했다.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는 이 지역이 미로리(眉老里)라 기록되었고, 『여지도서』에는 미로면(眉老面)으로 각각 기록되었다. 『1872 지방지도』에는 현재 한자 표기와 같은 미로면(未老面)으로 기록되었다. 인조 때 신계승(辛啓承), 순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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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노경리의 명칭은 원래 노거리(路巨里) 또는 노가리(路街里)로 불렸다. 그러다가 와전되어 노경리(魯耕里)가 되었다. 조선 인조 때 김해 김씨와 삼척 김씨가 이주한 후 우계 이씨, 강릉 김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95호 54명, 1962년 116호 706명, 1982년 127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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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우발리에 있는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 노곡 우발라 지형은 석회암 지형인 카르스트지형이다. 여기서 ‘우발라(uvala)’는 인접하는 몇 개의 ‘돌리네’가 침식의 진행에 따라 연결되어 생기는 커다란 절구 모양의 구멍을 말한다. ‘돌리네(Doline)’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에서 관찰되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움푹 파인 땅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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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노곡리는 본래 장곡(長谷), 노곡(路谷), 길곡(吉谷)이라 불리다가 나중에 노곡(魯谷)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처음 장일대(張一大)가 개척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후손은 떠나가고 광해군 때 진도백(秦道白)이 이주해 왔으나 역시 떠나갔다. 나중에 조종순, 이덕망, 전주 최씨, 남양 홍씨, 강릉 최씨, 삼척 김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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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전개된 농민조합 및 노동조합 결성 운동. 1931년 초 신간회 삼척지회와 삼척청년동맹의 해체론이 제기되면서 삼척 지역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지도할 새로운 기관으로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을 조직하기로 합의하고 활동하고 있던 핵심 인물들이 치안유지법 위반과 주거침입 강도죄 등으로 검거, 처형됨으로써 삼척 지역의 혁명 농민조합과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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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사용되는 농업 관련 어휘나 언어 현상. 강원도 삼척 지역은 평야 지대는 아니지만 논농사와 밭농사를 경작해 왔으며, 이에 따라 농기구도 활용하여 왔다. 삼척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 작물에는 미곡·맥류·잡곡류·두류·서류 등이 있으며, 소채류에는 무·배추·고추·마늘·양배추·당근·시금치·고랭지채소 등이 있다. 과실류에는 사과·배·복숭아·포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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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늑구리는 수택(藪澤)[늪]이 9개가 있었다하여 늡구동이라 하였으나 점차 변하여 늑구리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늪은 1개만 남아 있다. 조선 중종 때 옥선 이씨, 삼척 김씨가 이주했고 그후 김녕 김씨, 강릉 김씨, 영일 정씨도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104호 503명, 1962년 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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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단오 풍속의 특징. 5월 5일은 단오(端午)로, 옛날엔 술의(戌衣)날이라 하여 이날을 명절로 삼아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특히 이날 약쑥을 베어 여기에 차례를 지낸 제주(祭酒)를 뿌려서 그늘에 매달아 두었다가 마르면 1년 내내 약으로 쓰는 풍습이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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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당저동은 두랑산(斗郞山)이 있는 성황당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당밑거리[堂底街]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계동(月桂洞)과 옥서동(玉瑞洞)을 합하여 현재의 당저동(塘底洞)이 되었다. 당저동은 원래 실직씨가 살던 곳이라 하였는데 그 후 심(沈)씨, 김(金)씨, 이(李)씨, 정(鄭)씨 등 여러 성씨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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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기리는 성황당(城隍堂)의 크기가 다른 마을보다 컸던 이유로 대기(大基), 또는 한터라고 하였다. 아울러 이 지역의 점구터(店舊基)를 대장터(大場基)라고 한데서 대기리(大基里)가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여지도서』에도 대기리(大基里)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효종 때 밀양 박씨가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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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조직된 반공 청년운동 단체. 대동청년단은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池靑天)[1888~1957]이 모든 청년운동 단체를 통합하여 더욱 강력한 반공 단체를 결성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대동청년단은 대동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조선총동맹, 국민회청년단, 대한독립청년단, 서북청년회 등이 모여서 결성된 통합 청년운동 단체인 대한청년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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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이리는 대이리 서쪽에 대석굴이 있었기 때문에 본래 대굴(大窟), 한굴 등으로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대이리(大耳里)로 바뀌었다. 조선 인조 때 경주 이씨가 이주하여 토지를 개간하며 농업과 교육에 종사했다고 했다. 이후 안동 김씨, 전주 이씨 등이 이주했다. 호구수는 1916년 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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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대전리라는 명칭은 이 지역이 인근 마을보다 조금 더 넓은 지역이라 하여 큰밭·한밭 등으로 부른 데서 유래하며, 한자로 표기되면서 대전(大田)이 되었다. 본래 김씨가 처음 개척한 마을이었다. 이후 조선인조 때 송해경(宋海景)과 김효근(金孝謹)이 이주해 온 후 정씨, 이씨, 한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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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평리는 명칭의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예전부터 대평(大坪), 큰드루라 불러왔다. 전국에 다수 분포하는 대평리라는 지명이 비교적 넓은 평지가 있는 경우에 유래된 것으로 보아 맥락으로 유추할 수 있다. 조선 세조 때 손씨, 이씨, 양씨 등이 개척하였다고 하나 이후 그 후손들은 각 처로 이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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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강원도 삼척 지역의 국민운동단체.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이 모여 구성한 국민 운동 추진 단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삼척군지부는 먼저 발족된 삼척우국동지회를 모체로 해서 1946년 4월 13일 김동석(金東錫), 김중열(金重烈) 등이 중심이 되어 발족되었다. 초대회장은 김동석, 부회장은 김진구(金振九)와 김기덕(金基悳)이었다. 김동석은 9대까지 계속해서 회장에 선출되는 등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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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동굴 지대에 속해 있는 석회암 동굴. 덕밭세굴은 동굴 입구의 크기가 장경 3m, 단경 1.9m이며, 통로가 수직으로 발달한 수직 석회암 동굴이다. 덕밭세굴은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에 속한 굴로 1966년 6월 15일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었다. 덕밭세굴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다. 대이리는 본래 강원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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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덕산리의 명칭은 덕봉산(德峯山) 아래 위치한 입지로 인하여 유래되었다. 전주 이씨가 처음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후 이씨, 김씨, 최씨, 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19호 670명, 1962년 229호 1233명, 1982년 243호 1198명, 1995년 260호 79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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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도경동 지역은 이웃의 다른 마을보다 지세(地勢)[땅의 모양]가 높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본래 돈경(敦境), 도든지경, 된경 등으로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무바우를 합하여 도경(桃京)이라 하였다. 달곡, 궁검곡, 다악곡, 천곡, 혈암동 등은 등봉동에 소속되었으나 1905년에 통합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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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도계리는 세 갈랫길의 분기점에 있어서 본래 길가말[道邊村]이라 불렸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도계리(道溪里)가 되었다. 조선 중중 때 김녕 김씨, 강릉 함씨, 강릉 이씨 등이 이주했고 이후 이씨, 김씨, 최씨, 안씨, 정씨, 박씨, 홍씨, 서씨 등이 이주했다. 호구수는1916년 82호 327명, 1962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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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리에 있는 원주교구 소속 가톨릭 천주교회. 도계성당은 1965년 12월 10일 북평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초대 신부로 오브리언[신]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현재는 2016년 7월 29일 부임한 김영진바르나바 신부가 재임하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 신앙을 실천하는 종교 활동 외에도 삼척 지역 문화 및 환경 등과 관련된 사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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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동막리의 중앙에는 마읍천이 흐르며, 물길[수도(水道)] 동쪽을 막아 논을 개간하였다 하여 동막(東幕)이라 하였다. 조선 세종 때 밀양 박씨, 의성 이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274호 1272명, 1962년 385호 2523명, 1982년 454호 2174명, 1995년 4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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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 이름과 관련된 방언. 지역에 서식하는 생물의 다양성과 그 동물의 특징을 통하여 언어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삼척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에는 갯지렁이, 게, 곤충 및 수서곤충, 연체동물, 어류, 양서류 및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이 있다. 특히 조류는 바다와 해안, 습지, 논경지, 야산, 심산이나 고산 등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리고 포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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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일원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 강원도 삼척시는 백두대간의 가파른 동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울창한 원시림과 함께 이 숲에서 흘러나오는 오십천, 마읍천, 가곡천은 동해안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또 동해 연안을 끼고 있는 해양자원과 산림자원 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우수한 자연 생태계가 보존되고 있는 지역이다. 삼척시의 동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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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동산리 지역은 본래 등산(嶝山)이라 하였으며, 속전되어 동산리(東山里)가 되었다. 영경묘(永慶墓)의 동쪽에 있다는 이유로 동산(東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인조 때 밀양 박씨가 이주하고 난 후 이씨, 김씨, 석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41호 240명, 1962년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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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정상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1944년 5월 1일에 설립된 예장 통합 소속의 장로교회이다. 1997년 조사 당시 교인수는 112명이었다. 처음에는 1944년 5월 삼척읍 정상리에서 정라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고 전해온다. 정라라는 교회 이름은 이 교회가 설립된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윗동네인 정상리와 아랫동네인 정하리를 합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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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복두산(福頭山)에서 기인하여 복동아리[도화리(桃花里)]로 부르다가 점차 와전되어 동활리(東活里)가 되었다. 조선 숙종 때 북평읍으로부터 김찬영(金贊永), 평창군으로부터 이형룡(李亨龍) 등이 이주한 이후 전씨, 이씨, 박씨, 최씨 등의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64호 39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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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둔달리는 마을의 입지가 산비탈에 있어서 본래 둔들박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둔달(屯達)이 되었다. 조선 광해군 때 김군택(金君澤)이 들어온 이후 문중달(文仲達) 등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31호 244명, 1962년 24호 152명, 1982년 14호 9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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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조선시대 군인들이 경작하던 토지, 즉 둔전(屯田)을 이곳에 설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선조 때 이씨가 처음 개척한 이후 김씨, 이씨, 송씨, 안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45호 267명, 1962년 35호 255명, 1982년 41호 241명, 1995년 28호 11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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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등봉동은 예전에 등봉골이라 불렸던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어문동(於文洞)과 신리(新里)를 병합하여 등봉리가 되었고, 후에 등봉동(登鳳洞)으로 개칭되었다. 처음 심(沈)씨가 이주한 후로 중종 때 김산우가 광해군 때 최도린이 숙종 때 정수명 등이 이주해 들어왔다고 한다. 강원도 삼척시 등봉동은 삼척시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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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마교리는 곡내동(谷內洞) 입구에 암석이 있어 그 밑으로 판교(板橋)를 만들어 어렵게 왕래하다가 암석을 없애고 길을 넓혀 우마(牛馬)도 다닐 수 있게 되면서 마교(馬橋)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병자호란 후 경기도 양주군으로부터 해주 오씨가 이주한 이후 경주 김씨 등이 이주했다. 호구수는 1916년 48호 2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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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달동 지역의 서쪽에 움푹 꺼져 들어간 못[池]이 있어 본래 ‘못 아래 마을’이라 하여 ‘못알’이라 부르다가 점차 와전되며 마달[麻月], 머달, 마달(麻達) 등으로 변했다. 삼[麻]을 많이 재배하여 마달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달동은 조선태종 때 장원각(張元恪)이 처음 들어와 마을을 개척했고, 중종 때 전춘경(全春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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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차리는 본래 마차나무가 있었다하여 마차평(麻差坪)이라 불렸고 후에 마차리(馬次里)가 되었다. 본래 손씨가 개척한 마을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 조선숙종 때 정선 전씨가 이주했고 이후 안동 김씨, 임씨, 박씨, 김씨 등 각 성이 이주했다. 호구수는 1759년(영조 35) 40호 158명, 1916년 68호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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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평동 지역은 말곡면 명칭의 근원지로 본래 나무들이 무성했다고 한다. 오십천변의 홍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관에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을 금지시킨 곳이라 하여 말인들[禁山坪]이라 하였던 것이 와전되어 마평(馬坪)이 되었다. 마평동은 조선선조 때 전주 이씨, 광해군 때 양주군으로부터 채매준 등이 이주했고 정조 때 노달용,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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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매원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평(院坪)과 매리방(梅里坊)을 초곡리로부터 분리시키면서 매원리(梅院里)가 되었다. 원평은 본래 원드루라 하여 조선시대 여행자의 숙소인 제궁원(濟宮院)이 있던 곳으로, 원평(院坪)이라 하였다. 매리방은 말이방이라 하여 공양왕이 궁촌리에 와 있을 때 마방(馬房)을 설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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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무건리는 본래 물건네[水渡]라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무건(武建, 武巾)이 되었다. 조선 인조 때 평해 황씨, 경주 김씨, 삼척 김씨, 수원 백씨 등이 이주하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46호 300여 명, 1962년 48호 344명, 1982년 21호 130명, 1990년 16호 7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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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오십천 유역에 위치하는 무사리는 원래 이곳에 큰 소(沼)가 하나 있어서 물소[수소(水沼)]라고 불리다가 와전되어 무사(武士)로 일컫게 되었다. 조선 명종 때 정일주(鄭日周), 선조 때 등봉리로부터 최열(崔栵) 등이 이주하고 이후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25호 134명,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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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 활동의 특징 및 이러한 활동과 관련된 단체와 현황. 삼척 지역 문화의 저력은 실직국의 고도(古都)에서 출발하여 고려시대에는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제왕운기』 집필지로 일찌기 널리 알려진 문화의 땅이다. 조선시대에는 부사로 있던 허목이 삼척 사서인 『척주지』를 쓰면서 목민관으로서 많은 문화 활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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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박대혁(朴大赫)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귀호(龜湖)이다. 가의대부(嘉義大夫) 박범(朴䒮)의 후예이다. 박대혁의 부친은 늙어서 악성 종기로 고생하였다. 그때 박대혁은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내고 여러 번 하늘에 빌었지만 아버지의 병환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의원의 말로는 잉어의 담(膽)을 먹으면 낫는다고 하였다.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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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박동민(朴東敏)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는 군도(君道)이며, 호는 지은(池隱)이다. 참봉(參奉) 박곤(朴鵾)의 후손이다. 박동민은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정성껏 약을 달여 드렸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3년 동안 고기와 생선을 먹지 않았으며, 상주의 행실을 바로 지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유동의(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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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효자. 박득복(朴得福)은 개상웅(改尙雄) 세마(洗馬) 원손(元孫)의 후예이다. 박득복은 아버지가 다리에 난 악성 종기로 고생이 심해서 의원을 찾아가니 의원은 “구렁이 담(膽)이 약”이라고 하였다. 박득복은 동생 박이복(朴以福)과 함께 울며 간절하게 부친의 병환이 낳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랬더니 엄동설한 겨울철에 눈 속에서 구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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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열녀. 박소사(朴召史)는 최명륜(崔鳴倫)의 처이다 박소사는 나이 15세에 부친을 여의고 최명륜에게 시집와 삼척 월천리에서 살았다. 결혼 생활 5년 만에 남편과 헤어져 자식없이 살았지만 원망하지 않았으며, 시부모가 돌아가시자 홀로 장례를 치렀다. 길쌈을 하며 조상 제사를 받들 위토도 사 놓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남편의 죽음을 당하여 정성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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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의 효행자. 박완헌(朴完憲)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인서(仁瑞)이다. 의암박걸남(朴杰男)의 후손이다. 박완헌(朴完憲)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섬겼다. 어머니가 머리에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자 박완헌은 사향을 구하여서 어머니의 악성 종기를 고쳤다. 박완헌은 그 후 어머니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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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삼척박씨의 시조. 박원경은 고려 말 홍건적 침입 시 공을 세워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되었고, 삼척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셋째 아들 박언신(朴彦信)의 후손이다. 삼척박씨 시조 박원경(朴元慶)은 고려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권지교서정자(權知敎書正字), 개성부윤(開城府尹), 사농시사(司農侍事)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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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발이리는 본래 거리촌(巨里村)이라 부르다가 거리말[件里洞]이 되었다가 다시 와전되어 벌이골, 발리(鉢里, 發里)가 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경주 이씨가 대대로 살던 곳이라 발리(發李)라 했다고도 한다. 조선 선조 때 경주 김씨, 인조 때 풍천 임씨와 경주 이씨, 순조 때 안동 김씨 등이 이주하며 마을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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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배병호(裵秉鎬)의 자는 선익(善益), 호는 도남(桃南)이다. 참의(參議) 배순진(裵淳晋)의 증손이다. 배병호는 아버지의 병으로 앓아 누워 있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 드렸다. 배병호는 아버지상과 어머니상을 당하여 전후 6년 동안을 고기나 생선이 없는 소식(素食)을 하였다고 한다. 배병호는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 단을 모아서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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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번천리라는 명칭은 이 지역의 들판이 조금 넓다 하여 벌안[벌내(伐內)], 버당안이라 하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번천(飜川, 番川)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순조 때 최장덕(崔長德) 및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46호 149명, 1962년 40호 246명, 1982년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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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봉황산에 있는 벼락바위의 지명 유래담. 1997년에 『삼척시지』에서 채록·정리하였다.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봉황산(鳳凰山)에 호대사(虎大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인근에 동대지(東臺池)라는 연못이 있어 호대사의 승려들은 이곳에서 공양을 위해 쌀을 씻곤 하였다. 쌀을 씻을 때면 연못의 잉어들이 쌀뜨물을 먹기 위해 몰려와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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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오저리에 있는 수령 1000년의 은행나무와 관련된 설화.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오저리에는 수령 1000년에 둘레 6.5m, 높이 25m의 큰 은행나무가 있다. 이 동리의 수호신으로, 마을로부터 보호를 받는 나무이다. 신비스러운 것은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에 운다고 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먼 옛날 은행나무 아래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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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있는 정자. 봉황정(鳳凰亭)은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황산 충혼탑 아래에 있다. 1968년 6월에 삼척 출신 유생(儒生) 87명이 뜻을 함께하여 세운 정자이다. 봉황정은 봉황산(鳳凰山)을 바라보고 오십천을 굽어보며 삼척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경관이 매우 좋다. 또 황산 정상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자유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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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부남리는 본래 불안골, 부란골[부란곡(富蘭谷)]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남리(府南里)가 되었다. 조선 숙종 때 이득좌(李得佐)와 손(孫)씨, 이후 우한필(禹漢弼)·최병희(崔炳熙)·신씨·박씨·안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77호 349명, 1962년 105호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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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교.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다르마(Dharma)]이라고 하기 때문에 불법(佛法)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佛道)라고 일컫기도 한다. 불교의 내용은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진리를 깨침으로써 붓다(Buddha)[불타(佛陀)[깨우친 사람]]가 된 뒤 입적할 때까지 거의 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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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 서식하는, 매목 수리과에 속하는 중소형 맹금류의 여름 철새. 몸길이가 약 33㎝인 작은 새매의 일종으로, 삼척시 전역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이다. 천연기념물 제323-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등은 어두운 회색을 띠고, 배는 흰색이다. 가슴과 옆구리는 분홍빛을 띤다. 참나무·밤나무·오리나무 등 활엽수에 번식하고, 간혹 소나무에도 둥지를 튼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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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사곡리는 본래 ‘산골짜기가 구불구불하다’ 하여 곱은골 또는 곱은실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삽곡(揷谷)이 되었다가 이 삽곡이 와전되어 사곡(沙谷)이 되었다. 사곡리는 안씨·문씨·장씨 등 세 성이 처음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하지만 후손은 없어지고 나중에 평창 이씨, 삼척 김씨, 밀양 박씨, 김해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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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에 위치하는 사금산 구역 안으로는 드나들지 말 것을 알리는 푯말 또는 표지. 금표는 조선시대 왕이나 왕족의 사냥을 비롯하여 군사훈련·산림보호 등의 목적으로 신성 지역·유배지·지정된 산·산삼 자생지 등과 같은 일정한 구역이나 건물 안으로 드나들지 말 것을 알리기 위해 세운 표지이다. 일종의 금지나 경고를 알리는 푯말이다. 대개 금지구역의 입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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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사둔리 지역은 미로천(未老川) 하구에 있어서 모래가 많이 쌓이는 곳이라 하여 사둔(沙屯)이라 했는데 와전되어 사둔(士屯)이 되었다. 조선 중종 때 최순룡(崔淳龍), 인조 때 심택준(沈澤俊), 순조 때 이극황(李極凰)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58호 319명, 1962년 78호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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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 있는 사우. 사우(祠宇)는 선조 또는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한 해에 수차례 제향을 행하는 사당을 말한다. 강원도 삼척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사우는 다음과 같다. 소동사(召東祠)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 1길에 있다. 1824년(순조 24)에 홍면섭(洪勉燮), 이우석(李禹錫)을 비롯한 사림이 익성공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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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사직동은 원래 실직곡국(悉直谷國)의 터전으로 실직(悉直)의 방언이 와전되어 사직(史直)이라 한다. 실직곡은 ‘실즉곡, 실적곡, 시젹골, 시덕골’ 등의 옛말로 사직동 지역 노인들 사이에 불리며, 시젹골은 현재 사직리에서 유판치(有坂峙)를 넘어 조비리로 흘러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조선 중종 때 김우영(金宇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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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산기리는 본래 셰이골[三谷] 또는 서역(書易)이라고 불렀으나 조선정종 때부터 산기리(山基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 중종 때 안동 권씨가 개척한 마을이라고 하나 흔적을 찾을 수는 없고 광해군 때 김해 김씨 이후 밀양 박씨, 파평 윤씨, 삼척 김씨, 남양 홍씨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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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일대에서 서식하는 소과에 속한 포유동물. 한국 야생 지대에서 살고 있는 유일한 유제목(有蹄目) 소과 동물이다. 형태 특징은 얼굴 부위에 분비샘이 없다는 것이다. 겨울털은 회황색을 띠고, 등쪽의 정중선은 암색이며, 모피는 뭉친털상[방모상(尨毛狀)]이다. 목은 짧고 다리는 굵으며, 끝이 뾰족한 발은 작다. 주둥이로부터 후두부까지 대부분 흑색을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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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산양리는 본래 상양(尙陽)으로 불리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산양이 되고, 다시 와전되어 유천·살양·살래 등으로 불렸다. 1996년 산양리(山陽里)로 개칭하였다. 조선 숙종 때 경기도 양주에서 안성 이씨가 이주한 후 여흥 민씨, 해주 최씨, 초계 주씨, 삼척 김씨, 동래 정씨, 경주 이씨 등이 이주하며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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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에 있는 정자. 산양정은 1986년 9월 13일 삼척 출신이자 애향가인 민공(民空)민백기(閔百基)가 세운 정자이다. 산양정(山陽亭)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기곡리가곡천 강변 50m 절벽 위에 위치한다. 산양정에서 아래로 깊은 소(沼)를 굽어보는 경관은 일품이다. 산양정은 33㎡(10평) 남짓한 마룻바닥에 튼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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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삼거리 지역은 세 갈래의 길이 갈라지는 곳이라 하여 본래 세거리, 삼거리라 했다. 방언에 따라 삼가리(三街里)라고도 하였다. 이후 와전되어 삼거리(三巨里)가 되었다. 조선 중종 때 양천만(梁天萬)과 주시립(朱始立)이 이주하여 집안 간에 서로 혼인하였고, 인조 때 하거노리로부터 박씨가 이주하였다. 호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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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삼국시대·남북국시대 역사. 102년 실직국의 항복으로 삼척 지역을 차지한 사로국(斯盧國)[신라(新羅)]은 초기에 간접 지배를 하였지만 4세기 이후에는 직접 지배를 하였다. 그러나 삼척 지역은 5세기 후반에 들어와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 후 신라는 6세기 초에 삼척 지역을 되찾은 뒤 505년에 실직주를 설치하였다가 556년 무렵 실직군으로 개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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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천태종 소속 불교 사찰. 1982년 3월 25일에 창건되었다. 대한불교천태종의 초대 종정 상월원각대조사가 자신의 속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모신 집이 사찰로 거듭난 것이다. 삼산사가 속한 대한불교천태종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교단이다. 2018년 현재 종정은 김도용 대종사이다. 역대 종정은 초대 상월원각대조사, 2대 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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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불교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말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장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신라 말에 통효국사(通曉國師)범일(梵日)[810~889]이 창건하고 나서 죽장사(竹藏寺)라 불렀다. 고려 시대에는 관음사로 절 이름이 바뀌었다.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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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에 있는 숲. 삼척 갈전리 당숲은 수령 400년 이상 된 느릅나무와 졸참나무, 엄나무, 전나무 등 기타 수목이 군락을 이루면서 마을 당숲으로서의 역사성을 띠고 있다.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에 있는 느릅나무는 수령이 4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20.5m, 둘레 3.7m에 이른다. 마을의 서낭당과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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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산형화목 두릅나무과의 낙엽교목. 삼척 궁촌리 음나무는 천연기념물 36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단오 때는 큰굿을 올리는 마을의 서낭당 신목이다. 삼척 궁촌리 음나무는 높이 20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5.2m, 밑동 둘레 6.5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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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냉방의 유래담. 강원도 삼척시는 예나 지금이나 해양성 기후지대여서 겨울에는 그리 춥지 않고 여름은 그리 덥지 않은 사람 살기 좋은 지역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삼척시의 겨울을 대단히 추운 곳으로 알고 있다. ‘강원도 안 가도 삼척’ 또는 ‘삼척냉방’이라는 몹시 춥다는 속담이 생겨난 이유는 왜일까? 몹시 찬 방을 ‘삼척냉방’ 같다고 말한다. 삼척냉방(三陟冷房)이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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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석회암 동굴지대.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산117번지에 있는 석회암 동굴 지대로 1966년 6월 15일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 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굴은 ‘환선굴(幻仙窟)’, ‘관음굴(觀音窟)’, ‘사다리바위바람굴’, ‘양터목세굴’, ‘덕밭세굴’, ‘큰재세굴’ 6곳이 있다.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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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리에 있는 느릅나무과 느티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느티나무 변종으로서 흔하지 않아 우리나라 특산으로 알려져 있다. 행복·평안·번영을 기원하는 서낭당 신목으로, 천연기념물 제95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느티나무 변종으로, 이름처럼 느티나무보다 잎이 더 길고 좁은 점으로 구분되지만 많은 학자가 이러한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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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분포하고 있는 석회암 암쇄토 토양. 삼척 석회암 지대 테라로사는 석회암 기원의 암쇄토[테라로사]로, 석회암이 풍화 작용을 받은 토양을 말한다. 삼척 석회암 지대 테라로사(terra rossa)는 석회암의 풍화 작용으로 생긴 적갈색 토양. 탄산 칼슘이 물에 녹아 나온 후, 철·알루미늄의 수산화물 따위가 남아서 생긴 점토질 토양을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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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있는 산간 지역 전통 가옥과 민속 유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는 화전민 민속촌으로 한국인의 시원이요 옛날 이야기의 무대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선인들의 요람지, 태고의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너와집과 물레방아 등 10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우리나라 산간 마을의 가옥과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너와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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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시공간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요목별로 기록한 읍지. 읍지는 특정 지역의 시공간과 관련된 제반 사항, 다시 말하여서 어떤 지역의 인간 및 자연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 현상 및 역사 문물 전반 사항을 요목별로 기록한 지리지이다. 이러한 읍지는 조선시대에 전국지리지나 도지(道誌) 편찬을 위한 기초 자료로 작성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 작성된 읍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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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백병산에 위치하는 오십천의 발원지. 삼척 오십천은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에서 북북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며 강원도 삼척시 마평동에서 동쪽으로 꺾여 삼척시 오분동동해로 유입된다. 삼척오십천의 길이는 48.8㎞이고 유역면적 294㎢이다. 오십천이라는 명칭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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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죽서루의 이름은 누(樓) 동쪽에 죽림(竹林)이 있고 그 죽림 속에 죽장사가 있다 하여 죽서루라 하였고, 또 다른 설로는 누 동편에 죽죽선녀(竹竹仙女)의 유희소가 있었다 하여 죽서루라 불렀다고 전해 오는 정자 건물이다. 관동팔경(關東八景)의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인 죽서루(竹西樓)는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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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 있는 천은사의 유래담. 758년(신라 경덕왕 17) 창건된 천은사는 두타삼선(頭陀三仙)과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천은사는 용 또는 돌배를 타고 인도에서 온 3명의 승려, 두타삼선(頭陀三仙)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758년(신라 경덕왕17)에 창건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절이다. 세 승려는 두타산의 네 모퉁이에 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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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석회암 동굴. 삼척 초당굴(三陟草堂窟)은 소한굴(蘇漢窟)과 초당굴(草堂窟)로 나누어져 있다. 삼척 초당굴(三陟草堂窟)은 전체적으로 수직과 수평의 기복이 반복되는 다층구조의 수직동굴이 발달한 석회암 동굴이다. 삼척 초당굴은 소한굴(蘇漢窟)과 초당굴(草堂窟)을 합쳐 초당동굴(草堂洞窟)이라 한다. 초당굴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금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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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수도 경주와 강원도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 삼국시대 신라의 수도인 경주와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는 육로와 해로가 있었다. 육로의 경우 경주, 안강, 흥해, 영덕, 울진을 거쳐 삼척에 이르는 경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 후 교통로의 재정비로 5통(通)·5문역(門驛)이 설치된 이후에는 간문역과 북해통이 경주와 삼척 지역을 잇는 교통로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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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때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지방 제도 개혁 때 실직군을 삼척군으로 개명하였다. 또 고려 말인 1377년에 삼척현에서 삼척군으로 승격하였다. 신라 경덕왕이 757년(경덕왕 16) 실직군(悉直郡)에서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한 것은 당시 지방 제도를 개혁하면서 주(州)·군(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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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강원도 삼척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단위. 1895년 지방 관제 개혁 때 삼척도호부를 삼척군으로 개명하고, 지방관으로 군수를 파견하였다. 조선시대 삼척 지역은 1413년(태종 13) 삼척부(三陟府)에서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로 읍격이 강등되고 도호부사(都護府使)가 파견되었다. 이후 삼척도호부는 조선 말까지 별다른 개편 없이 지속되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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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삼척 지역 우익 세력의 삼척극장 습격사건.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삼척 지역에서도 찬반을 둘러싸고 좌·우익 세력 간 갈등과 대립이 격해져 갔다. 그 와중에 1946년 3월 15일 삼척읍 내 삼척극장에서 개최된 좌익계 단체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삼척 지역 대회장에 우익 세력이 습격함으로써 아수라장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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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삼척 지역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지도하기 위하여 조직된 비합법 지역 전위 조직. 삼척 지역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의 ‘준비 기관’으로 결성된 삼척노농공작위원회는 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출소한 심부윤이 1933년 7월 24일 변소봉, 정석대, 박래빈, 이상인 등 조직 활동가들과 함께 삼척시 오분동 해안에 모여 결성하였다. 삼척청년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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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에 위치한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는 높이 20.0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1.8m, 밑동 둘레 10.7m이다. 가지는 동서 22.0m, 남북 23.0m 정도 뻗는다. 나무 나이는 약 1500년으로 추정된다. 어미나무 뿌리에서 새끼나무가 돋아나 어미나무를 감싸고 자라는 거목으로, 새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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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척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한 만세 운동. 삼척보통학교 5회 졸업생인 김순하가 독립선언문을 몰래 가지고 와서 재학생 김달하에게 전달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사건이다. 일제의 가혹한 식민 통치에 대한 불만과 고종 황제의 독살설에 대한 울분 및 민족자결주의에 따른 영향에서 발생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삼척보통학교[지금의 삼척초등학교]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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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의 동해안 남단에 위치한 시. 삼척시는 강원도 최남단에 위치한 산업·문화·관광 중심 도시이다. 동쪽은 동해, 북쪽은 동해시, 서쪽은 정선군과 태백시, 남쪽은 경상북도 울진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삼척시의 총면적은 1186,6㎢이고, 해안선은 81.4㎞이다. 총면적 가운데 논 56.8㎢, 밭 15.5㎢, 임야 1045㎢, 대지 7.5㎢, 도로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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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종합 지리지. 삼척 지역에 관한 역사와 문화, 자연과 지리, 정치와 경제, 사회와 예술 등을 망라하여 다룬 종합 지리지이다. 김정경(金鼎卿)의 『삼척향토지』, 최만희(崔晩熙)의 『진주지』, 김일기의 『삼척군지』가 편찬된 이후 현대 종합 지리지의 필요에 의하여 편찬하였다. 삼척 관련 종합 지리지 성격의 자료로서 총 1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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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안의리에 있는 장미과 명자나무속의 모과나무. 삼척 안의리 모과나무는 크기는 높이 14.00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05m이다. 가지는 동서 9.80m와 남북 9.90m 뻗어 있다. 나무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주민들에 따르면 200년 전 당시와 현재의 모과나무 크기는 변함이 없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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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에 파견되어 속오군 조련을 담당한 무신 당상관. 조선 후기에 지방군의 운영을 효율화하기 위하여 시행된 영장(營將) 제도는 1627년(인조 5) ‘영장절목(營將節目)’ 반포와 함께 무신 당상관을 전임(專任) 영장으로 파견하여 속오군(束伍軍) 조련(操鍊)을 담당하게 하였다. 1637년(인조 15) 전임 영장제가 혁파된 뒤에는 수령이 영장을 겸임하는 겸영장(兼營將) 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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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단체.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전개하던 우익계 인사들이 이미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던 좌익 계열의 건국준비위원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1946년 1월에 삼척우국동지회를 발족시켰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인한 통치 조직 부재로 혼란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삼척 지역도 미군이 군정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좌익과 우익 간 충돌이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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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속하는 석회암 동굴. 삼척 저승굴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하고사리 서방 약 2㎞ 지점인 저승골건천(乾川)변에 위치하고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척 저승굴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하고사리 서방 약 2㎞ 지점인 저승골건천(乾川)변에 위치하고 있다. 고사리는 본래부터 도계읍, 즉 소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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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삼척중앙교회는 신앙생활을 실천하고 지역 복음화 및 선교와 지역의 구제 봉사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48년 1월 교회가 창립되어 1953년 초대 김선환 목사가 부임하였다. 1971년 6월에 남양리 44번지에 예배당을 준공하였다. 기독교 신앙생활을 통해 성도들 간 친교와 교제를 주된 사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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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청년 운동 단체. 삼척청년동맹(三陟靑年同盟)은 1927년 10월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의 결성을 위한 청년 운동 단체로 조직되었다. 1931년 5월 삼척청년동맹을 해소하였다고는 하지만 같은 해 11월 30일 발생한 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을 삼척청년동맹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삼척군에서 조직된 청년 운동 단체 삼척청년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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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 지역에 설치한 국립 교육기관. 조선시대 향교는 통치 이념인 유교를 민간에 보급시키고 유교 교양을 갖춘 인재 양성 관학이었다. 이러한 향교는 제향 기능과 교육 기능을 겸비하여 전학후묘 구조를 갖추었다.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선현 봉사 공간이고, 명륜당과 동재·서재는 교육 공간이다. 이처럼 향교는 순수한 유학을 교육하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서 무상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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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교동에 있는 삼척향교에서 행해지는 제례. 석전대제는 석전제(釋奠祭), 석채(釋菜), 상정(上丁),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대개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거행한다. 성균관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묘는 향교 내에 설치되어 있는 대성전(大成殿)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가리키며, 이곳에서 석전을 거행한다. 대성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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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에 둔 지방 행정 구역 단위. 1018년의 지방 제도 개편 때 삼척 지역은 척에서 삼척으로 읍명이 환원되고, 읍격도 주에서 현으로 강등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개혁이 이루어진 지방 제도는 얼마 가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이에 따라 현종대에 들어와서 지방 제도는 다시 개편되었다. 현종은 1018년(현종 9)에 75도안무사(道安撫使)를 폐지하고 4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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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속하는 석회암 동굴. 삼척 활기굴(三陟活耆窟)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삼척 활기굴은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었다. 삼척 활기굴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위치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활기리는 본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지역으로 고려 때 목조 황고비가 살던 곳이자 ‘황터’라 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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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에는 오십천을 건너는 곳이 위, 아래 두 곳이 있다. 위쪽에 있는 곳을 속어로 ‘웃그는 나들이’, 아래쪽에 있는 곳을 ‘아래 그는 나들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거노리(巨老里)가 되었다. 그 가운데 ‘위에 있는 거노리’라 하여 상거노리(上巨老里)라 하였다. 조선 선조 때 강릉 회산에서 심함수(沈咸壽)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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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지난날 상군천리와 하군천리를 통칭하여 구무내, 구멍내[공천(孔川)]라 불렀다. 구무내란 말은 옛날 마을 진입로 남북의 산이 서로 이어져 있었고, 수로가 산에 구멍을 뚫고 나온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구무내가 와전되어 군천(軍川)이 되었다. 조선 선조 때 김춘일(金春日)이 이주한 이후 최씨, 박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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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상덕리는 상소달(上所達)이라 불렸던 곳인데 마을로 흐르는 하천이 심하게 파인 곳이 있어 이 하천을 ‘떠지기 거랑’이라 이름한 데서 마을의 이름을 덕징이[德曾里] 또는 덕전(德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14년 원덕전(元德田)의 위쪽을 상덕리라 하면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숙종 때 경주 이씨, 강릉 최씨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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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마읍(馬邑), 마라읍(馬羅邑), 말읍(末邑), 마읍(麻邑) 등으로 불리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마읍리, 중마읍리, 하마읍리로 분할되었다. 예전에는 마을[촌(村)]을 ‘말’이라 불렀으며, 이 마을의 답평(畓坪)은 옛날 미역늪이라는 큰 늪이 있던 곳이어서 말아래늪[촌하예(村下汭)]이라 부르던 것이 문자화하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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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맹방(孟芳) 또는 매향방(埋香芳)으로 불리었다. 맹방이란 맹씨의 방린(芳隣)이란 말이 있지만 불확실하고, 1309년(고려 충선왕 원년) 용화회주 미륵의 하강을 기원하기 위하여 향나무 250그루를 맹방정(孟芳汀)에 파묻었다는 기록이 고성 사선봉 매향비문(高城四仙峯埋香碑文)에 있어 이 마을이 고려시대부터 맹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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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여삼리(閭三里)로부터 계류(溪流)가 흘러들어 온다 하여 본래 바드내[수천(受川)], 바깥내[외천(外川)], 바위내[암천(岩川)], 건내[건천(乾川)], 양바리재[양반치(陽返峙)] 등으로 불리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반천(班川)이라 하였다. 최씨(崔氏)가 처음 개설했다고 알려져 있는 가운데 숙종 때 안동 김씨,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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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상사전리와 하사전리 지역은 본래 새밭[초전(草田)]으로 부르다가 사밭[사전(士田)]으로 속전된 것이다. 나중에 상사전리(上士田里)와 하사전리(下士田里)로 분리되었다. 조선 인조 때 정일준(鄭一俊), 영조 때 김종옥(金宗玉)과 박영도(朴永道), 고종 때 최정심(崔正心) 등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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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는 이 지역을 올산(屼山)이라 하였고 『여지도서』에는 오을산(五乙山)이라 기록하였다. 본래 물이 모여 합하는 곳이라는 뜻의 물어부러미와 길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의 길어부러미에서 어부러미가 와전되어 올산(屼山), 오을산(五乙山)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이후 월산(月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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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상정리와 하정리는 본래 통칭하여 소골[소곡(沼谷)]이라고 불렀다. 이는 이 지역이 오십천 유역에 위치하여 골짜기가 협소하고 물이 깊었기 때문이다. 점차 위·아래 지역을 구분하여 웃소골[상소(上沼)]과 아래소골[하소(下沼)]로 부르다가 한자로 와전되어 각각 상정(上鼎), 하정(下鼎)이 되었다. 일설에는 쇠솥[철정(鐵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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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원래 미로면 천기(川基)와 같은 지명으로 불리어 오다가 천기리의 위쪽에 있다 하여 상천기리(上川基里)라 부르게 되었다. 천기(川基)란 이 지역이 오십천(五十川)과 반천(班川)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가운데 오십천을 외천(外川), 반천을 내천(內川)이라 각각 이르면서 내천 변두리에 자리한 마을이어서 내터[내기(內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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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일대에 서식하는 매목 수리과 텃새. 새매는 천연기념물 제32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몸집이 작아 매사냥에 많이 사용되는 수리과의 새이다. 수컷은 등이 석판회색이며, 윗목에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배는 흰색이고, 전면에 아름다운 적갈색 가로무늬가 있다. 암컷은 등이 갈색이고, 배는 흰색에다 아름다운 암갈색의 가로무늬가 있다. 오래 전부터 새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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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출신 효자. 서정로(徐廷魯)는 어머니의 종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뜨거운 쑥을 자기 팔에 붙인 다음 어머니의 팔에 대어 가며 어머니를 치료하였다. 서정로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자는 문도(文道)이며, 호는 의암(衣菴)이다. 서정로는 개항기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웃바우골 의암촌(衣岩村)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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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하리는 본래 소달동(所達洞)으로 불렀는데 서하리 마을 주산(主山)인 솔미산[솔미봉]을 따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달동이라는 명칭은 신기면의 옛 명칭인 소달면(所達面)의 유래이기도 하다. 이후 설하리(雪下里)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서하리(西下里)가 되었다. 조선 명종 때 김수구(金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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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있는 해망산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해변에 우뚝 솟은 산이 해망산이다. 고려시대에 부용이라는 선녀가 놀다 갔다 하여 부용산이라고도 한다. 동쪽은 바다에 접하고 서쪽 남쪽은 강물과 바닷물이 맞닿는 개울로 부용호라고 불리던 호수가 있었다. 1394년(태조 2)의 기록에 따르면 ‘송곡(松谷)은 옥원(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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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나 함경도 등 강설량이 많은 지역의 주민들이 겨울철에 신발 밑에다 덧대어 신고 다닌 설화. 살피라고도 하며, 눈 위에서 신고 다니는 설화(雪靴)이다. 강원도나 함경도 등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주민들이 겨울철에 신발 밑에다 이것을 덧대어 신고 다녔다. 눈이 많이 와서 쌓인 눈이 깊거나 비탈진 곳에서도 발이 빠진다거나 미끄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10년쯤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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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전설·민담 세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는 설화는 꾸며낸 이야기로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삼척 지역의 설화도 신화·전설·민담 세 갈래가 존재한다. 삼척 지역 설화의 전승 양상에서 여느 지방이 그러하듯이 지역성이 강한 것은 인물 전설뿐이고 신화와 민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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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성남동은 본래 노암(盧岩), 갈암(葛岩), 가암(柯岩) 등으로 불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 강과 앵끝을 합하여 성남리(城南里)로 개칭하였다. 삼척읍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 숙종 때 하동정씨, 연일정씨, 삼척김씨 등이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후 읍상동에서 살던 정상영 등이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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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성북동은 삼척읍성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라 성북동(城北洞)으로 불렀다. 원주민은 고증이 어렵고 1910년 경에 심(沈)씨, 김(金)씨, 우(禹)씨 등이 이주해 와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말곡면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부내면에 편입되었다. 강원도 삼척시 성북동은 동쪽은 당저동, 남쪽은 성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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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일대에서 번식하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 민가 주변의 야산·공원·산림·사찰 등지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가끔 목격이 되는 올빼미과의 여름 철새였지만 지금은 텃새이다. 몸통 전체로는 엷은 회갈색이지만 검은색, 갈색, 엷은 적갈색, 흰색 등 무늬가 복잡하게 섞여 있다. 크게 회색형과 적색형이 있다. 민간에서는 이 소쩍새의 울음소리로 그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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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일대에서 서식하는 족제비과에 속한 포유동물. 수달은 먹이사슬을 균형 있게 조절해 주는 핵심 종으로서 그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으며, 해당 지역 수질 환경의 건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수환경의 지표종이기도 하다. 수달은 보통 몸길이 63~75㎝, 꼬리길이 41~55㎝로 몸매는 족제비와 비슷하지만 훨씬 크다. 몸은 수중생활을 하기에 알맞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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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일대에서 서식하는 올빼미목 올빼미과에 속하는 텃새. 수리부엉이는 크고 주황색인 눈이 특징인 올빼미목 올빼미과에 속하는 텃새이다. 산림의 암벽, 암벽 절개지, 바위산 등지에서 서식한다. 몸통은 전반에 걸쳐 황갈색 바탕이며, 날개에는 진한 밤색 비늘무늬가 있다. 목과 가슴에는 세로로 밤색 줄무늬가 있다. 눈은 주황빛 노란색이며, 발가락은 갈색 털로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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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의 동쪽에 있는 바위 아래[암하(岩下)]에 시장을 설치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시암(市岩)[장바위]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숙암(宿岩)이 되었다. 조선 숙종 때 변씨, 순조 때 임씨가 이주한 후 정씨·박씨·함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85호 336명, 1962년 40호 246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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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 서식하는 식물 관련 방언. 식물의 다양성과 특성은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다. 삼척시에 자생하는 식물에는 관속식물, 고등균류[버섯] 등이 있다. 이 지역에 나는 관속식물은 39과 293속 500종 8변종 4품종으로, 총 512종류로 보고되었다. 청옥산과 두타산에는 신갈나무, 당단풍, 피나무, 철쭉, 메역순나무, 개올나무, 쇠물푸레, 대사초, 단풍취,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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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분포하는 식물들. 강원도 삼척시 일대의 산지에는 대부분 갈참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우점하고 있다. 그 외 소나무, 느티나무, 생강나무, 서어나무 등이 분포한다. 도로를 따라서 왕벚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계곡을 따라 갯버들·칡·돼지풀·갈퀴덩굴·다래·느릅나무·산수국·개암나무 등, 석회암 절개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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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사람들이 먹는 일이나 먹는 음식에 관한 생활과 풍습. 삼척 지역의 식생활 이해에는 삼척의 산, 들, 바다 생태를 우선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자연지리 생태 환경은 식재료 공급의 터전이었다. 수요자의 문화 선택과 적응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록 오늘날과 같이 전국 유통망이 형성되면서 식재료의 수요와 공급이 무한히 확대된 듯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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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삼척 지역의 구 유림과 신 유림 간 갈등. 향전(鄕戰)은 기존에 향촌을 지배해 오던 재지사족(在地士族)[조선시대 향촌사회에 머물러 있던 지식계층]과 사회·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한 신흥 세력 간에 향권 장악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립을 말한다. 신 유림 측에서는 유림(儒林) 명단에 함께 올려서 차별이 없도록 해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구 유림 측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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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항일 단체 신간회의 삼척 지역 지회. 신간회 삼척지회는 항일 민족 운동 단체인 신간회의 삼척 지역 지회로 1928년 3월에 조직되었다. 3·1 운동 이후 사회주의 사상 유입으로 독립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으로 갈라지면서 민족 운동 전선에 갈등이 생기게 되자 단일화된 민족 운동이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민족유일당 운동(民族唯一黨 運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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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리는 여산 송씨가 새로 개척한 터전이라 하여 신기(新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여산 송씨, 김씨 등이 이주했고 이후 경주 김씨, 제주 고씨, 영월 엄씨, 성주 이씨 등이 이주했다. 호구수는 1916년 68호 399명, 1962년 100호 550명, 1982년 117호 660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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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신리와 구사리 사이에 큰소붓치재와 작은소붓치재가 있어서 본래 소붓치라 하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부쇳골[火鐵洞]이 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 화재가 자주 나면서 부쇳골의 한자식 표기에 들어있는 화(火)자 때문이라 여겨 신리(新里)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이씨와 박씨가 개척을 시작하며 형성되었고 이후 경주 최씨 등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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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에서 은거한 문관. 신보은(辛輔殷)의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호는 백주(白洲)이다. 문정공신당계(辛唐系)의 후손이다. 신보은은 1484년(성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와 창녕부사를 지냈다. 연산군 당시 무오사화로 말미암아 벼슬에서 물러나와 삼척의 죽동(竹洞)에 내려와 살면서 개간하여 농사에 전념하였다. 늙어서는 누대(樓臺)에 오르는 등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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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심씨의 시조가 된 고려 말의 문신. 초명은 한(漢)이고, 호는 신재(信齋)이다. 고려공민왕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왕이 이를 만류하다가 동로(東老)[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낙향한 후에는 후학 양성과 풍월로 세월을 보냈다. 왕은 그를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였다. 문림랑(文林郞)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 심적충(沈迪冲)의 현손이고,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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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심포리 지역에는 미인폭포가 있고 산수가 깊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깊은개[深浦]라고 부르다가 심포리가 되었다. 조선 광해군 때 남양 홍씨가 안동에서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근덕면 맹방리에서 이주했다는 설도 있다. 호구수는 1916년 64호 305명, 1962년 947호 4,158명, 1982년 390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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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지역에서 전승되는 설화. 옛날 지금의 삼척시 근덕면 지은리인 양평초등학교 부근 마을에, 권덕보라는 순박한 농부와 부인 안 씨가 농사를 지으면서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 40이 넘도록 슬하에 혈육이 없었다. 자식을 갖고 싶었던 부인 안 씨는 집에서 800m 떨어진 비룡산 계곡의 폭포에서 기도를 드렸다. 명주 꾸리 하나가 들어가는 깊은 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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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안계보(安啓普)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가선대부(嘉善大夫) 안석범(安錫範)의 손자이다. 안계보는 아버지의 병환을 1년이 넘도록 간호하면서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치료하는 의원의 말에 따르면 대황초(大黃草)가 아버지 병에 특효약이라고 하였다. 엄동설한의 한겨울이어서 대황초를 구하기에는 제철이 아니었다. 대황초를 구할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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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안교국(安敎國)[1860~1926]의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우범(禹範)이다. 안양묵(安養墨)의 아들이다 안교국은 1897년부터 1906년까지 상의원(尙衣院) 주사(主事)를 지내다 벼슬을 그만두고 삼척 하장면 추동리에 은거하면서 평생동안 효제에 힘썼다. 부모를 위하는 효심이 지극하여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폈고, 부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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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무사 김인우(金麟雨)를 울릉도에 파견한 일. 김인우는 본관이 삼척으로 삼척 사람이다. 그는 처음 고려 말에 삼척군 지군사(知郡事) 남은(南誾)[1354~1398] 휘하의 군사였다가 군공을 세워 안인포(安仁浦) 만호와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가 되었다. 그 후 조선태종·세종대에 안무사로서 울릉도에 갔다 왔다. 허목(許穆)[1595~1682]은 『척주지』에서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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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의리는 대평리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내지곡(內之谷)이라 하는데 한자를 음으로 읽을 때 안의곡(安義谷, 安衣谷)이라 부르더니 안의리(安衣里)가 되었다. 조선 중종 때 강릉에서 심광수(沈光壽)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고 이후 각 성씨가 이주했다. 호구수는 1759년(영조 35) 35호 173명,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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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있는 정자. 오십천 강줄기를 바로잡으려고 남산 절단 공사를 하면서 절단된 나머지 산을 공원화하기로 하였으며, 1984년 삼척시 삼척읍이 공원화 기념으로 공원을 조성하면서 정자를 지었다. 양덕정(養德亭)은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남산 위에 있다. 양덕정은 1984년에 조성된 이래 삼척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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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동굴 지대에 있는 석회암 동굴. 양터목세굴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산117번지에 있는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三陟大耳里洞窟地帶)[천연기념물 제178호]에 속해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양터목세굴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다. 대이리는 본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지역으로 1989년 4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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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양현석(梁玄錫)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자는 내범(乃範)이며, 호는 은천(隱川)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양재선(梁在瑄)의 조카이다. 양현석은 뛰어난 효자로, 밖에서 맛좋은 음식을 보면 품어 가지고 와서 어버이에게 드렸다고 한다. 어버이가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하였을 때 어버이의 병에 멧돼지 피가 특효약이라는 말을 듣고 산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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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 따르면 본래 이 지역은 울탄(鬱呑)이라 하여 지금의 판문리와 합친 마을을 울탄내외촌(鬱呑內外村)이라 하였다. 이후 어리목[치목(稚木)] 또는 어리나무골[어리목동(於里木洞)]이라고 부르다가 어리(於里)가 되었다. 조선 숙종 때 함세립(咸世立), 권동(權凍)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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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사용되는 어업 관련 어휘나 언어 현상. 강원도 삼척 지역은 동해와 접해 있기 때문에 어종이나 어획 도구 등에 관한 어휘에서 특징이 나타난다. 삼척 지역의 어업 방언들은 삼척 방언의 어휘 특징인 이중모음의 단모음화 현상, ‘ㅣ’ 첨가 현상, ‘ㅎ’ 구개음화, 움라우트 현상 등이 반영되어 여러 가지 특징을 보인다. 간물길: 간물(바닷물)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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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을 대상으로 왕이 직접 지은 시. 어제시(御製詩)는 왕이 직접 지은 시로, 자신의 통치 신념과 국가 및 백성을 향한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조선의 왕 가운데 숙종은 삼척의 죽서루를 주제로 직접 시를 짓기도 하였다. 숙종 외에도 정조는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어명을 받고 그린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금강산 일대 4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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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여삼리는 본래 웅덩이처럼 소형 분지 4개가 있었기 때문에 넷심이라 하였는데 옛 이름은 여심(驪尋)이라 불렀다. 이 여심이 와전되면서 여삼(閭三)이 되었다. 조선 광해군 때 미로면으로부터 밀양 박씨와 영조 때 김원이(金源伊)가 이주한 이후 안씨, 서씨, 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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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지역에 있는 카르스트지형. 여삼리 돌리네 지형은 크고 작은 돌리네가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대를 이루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지역은 ‘넷심’이라 불리는 웅덩이처럼 움폭한 지형을 보이는 소형분지가 4곳이 있다. 이곳의 옛이름은 여심(汝深)이라 불렀다. 지금은 여삼리(閭三里)가 되었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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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 따르면 본래 이 지역은 역탄(易呑)이라 했고, 이후 조선숙종 때 면창고(面倉庫) 소재지로 둔전리와 같이 군인 경작지인 둔전(屯田)을 두었기 때문에 역둔(易屯)이라 하였다. 조선 성종 때 김혁(金赫), 중종 때 정씨, 숙종 때 김봉래(金鳳來)·이용성(李龍聲)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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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역사시대 전반에 대한 개관.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각 처에 정치제가 출현할 때 삼척 지역에는 실직국(悉直國)이 존재하였다. 이 실직국은 한반도 중부 동해안 일대에서 해상권을 장악하고 교역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실직국이 102년(파사이사금 23)에 신라[사로국]에 항복함으로써 삼척 지역은 신라의 북쪽 변경지대가 되었다. 이후 5세기에 들어와 고구려의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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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자원동에 있는 연산군의 딸 복억의 태실묘. 강원도 삼척시 자원동 태봉산에 있는 연산군 왕녀 복억(福億)[1499~?]의 태장을 묻은 묘이다. 예전에 이곳에 태실이 있었다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현장 조사를 통하여 태실묘(胎室墓)와 묘비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연산군의 재위 기간은 1494~1506년이며,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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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권섭이 지은 기행가사. 「영삼별곡」은 저자 권섭이 영월에서 출발하여 삼척에 이르기까지 명승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느낀 감상과 함께 산수를 보고 얻은 감동을 담은 기행가사다. 『옥소고(玉所稿)』에 수록된 작품으로, 마지막 구절 2구를 제외하면 134구로 구성되어 있다. (생략) 십 리 깊고 긴 골짜기에 절벽은 좋거니와 계단길 험한 곳에 양편의 두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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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 영은사(靈隱寺)의 창건 시기는 891년(진성여왕 5)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범일국사(梵日國師)가 궁방산(宮房山) 밑 마전평(麻田坪)에 절을 창건하고 궁방사(宮房寺)라 한 것이 이 절의 최초 창건이다. 『척주지(陟州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궁방사 밑에 쌍석 돌독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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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목리는 옻나무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옻나무골[漆木洞]이라 부르다가 점차 와전되어 오목리(梧木里)가 되었다. 조선 선조 때 경기도 용인으로부터 김계룡(金戒龍)이 이주하고 이후 탕곡리로부터 진현태(秦賢泰), 임상선(林尙先)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44호 253명, 1962년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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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오분동 지역은 본래 오불진[吳火津]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분리(吳紛里)가 되었다. 서(徐)씨의 개척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이(李), 김(金)씨 등 각 성이 이주하였다. 강원도 삼척시 오분동은 동쪽은 동해, 서쪽은 적노동, 남쪽은 근덕면, 북쪽은 오십천 하구를 사이에 두고 정상동과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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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오사동은 본래 다섯 집이 살고 있었다고 하여 오살이[五居]라 하였는데 한자표기 과정에서 오사리(五士里)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학설에 따르면 선비 다섯 명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오사리(五士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오사동은 조선선조 때 영일정씨, 삼척김씨 등이 이주했다고 전한다. 강원도 삼척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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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저리는 본래 큰터[大基]라 불렀는데 옻나무골[漆木洞] 아래에 위치한다고 하여 옻및치[漆木底]라 하다가 점차 와전되며 오저리(梧底里)가 되었다. 조선 선조 때 가곡리로부터 김천공(金天公), 천복(天福) 등이 이주하고 이후 근덕면 맹방리로부터 심남생(沈南生), 민순호(閔舜鎬), 홍면섭(洪勉燮) 등이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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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옥원리는 조선시대 옥원역(沃原驛) 소재지로, 오원(五原)이라고도 하였다. 1894년 역(驛)과 객사(客舍)이던 옥원관이 폐지되고 옥원리라 하였다. 조선 중종 때 우계 이씨가 이주한 이후 사직에서 최호대·김백학·이광국, 철종 때 맹방리에서 청송 심씨 등이 각각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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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전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올빼미과 올빼미속 텃새. 올빼미는 주로 등줄쥐를 주식으로 하는 한국 특산 아종으로, 삼척 전역의 숲이나 노거수 밑둥의 파인 구멍에 서식하는 맹금류 텃새이다. 올빼미 몸길이는 38㎝ 정도이다. 둥근 머리에 귀털[이우(耳羽)]가 없고, 몸통 전체가 몹시 얼룩진 세로무늬가 있는 황갈색이다. 배는 담색이며, 많은 세로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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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 용소굴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용소굴은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소굴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무건리에 있다. 무건리는 『진주지(眞珠誌)』에 따르면 예전에 무건촌(武建村)이라 하였다. 이는 오십천 ‘물건네’[수도(水渡)]가 와전되어 ‘물건너말’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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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 서북쪽에 용추(龍湫)라고 하는 하천이 있어서 용소동(龍沼洞), 용숫골로 불리다가 용연(龍淵)이 되었다. 조선 숙종 때 함창필(咸昌弼), 권삼추(權蔘秋) 등이 이주한 후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58호 377명, 1962년 48호 309명, 1982년 27호 185명,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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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용화리는 북쪽 해안에 용굴(龍窟)이 있어 용해(龍海)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용화(龍化)가 되었다. 조선 인조 때 홍춘빈(洪春彬)과 이귀돌(李貴乭)이 이주한 후 삼척 김씨, 경주 최씨, 우계 이씨, 평해 황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본래 원덕읍에 속하였다가 1987년 1월 1일 근덕면에 이속되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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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우발리는 산간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본래 집피니, 집푸니[심리(深里)]로 불리다가 이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우발(宇發)이 되었다. 진성 이씨의 개척지였다. 정조 때 강릉 김씨, 헌종 때 청송 심씨 등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28호 160명, 1962년 18호 11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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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우지동은 본래 명계, 울계라 불렀는데 와전되어 울겔[禹池] 등으로 부르다가 우지(禹之)가 되었다. 우지동은 읍내로 통하는 큰길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웃길, 웃질, 윗길 등의 방언이 점차 와전되며 우지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우지동은 조선중종 때 변씨가 이주해 왔고, 숙종 때 박세창이 이주해 왔으며 이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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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 공비가 유격대 활동 거점 구축을 목적으로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한 사건. 1968년 10월 30일부터 경상북도 울진과 강원도 삼척 지역에 침투한 무장 공비 소탕을 위해 울진을 비롯한 봉화와 강원도 삼척·명주·정선 등 지역에서 실시된 ‘대간첩 작전’이 종료되는 12월 말까지 57일 동안 북한 무장 공비 소탕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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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원당동은 조선시대 삼척부의 사직단(社稷壇)이 있던 곳이라 원단(圓壇)이라 불렀는데 원댕이, 원디이 등으로 와전되어 불렸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 당시 가내골과 땅골을 합하여 원당(元堂)이라 했다. 강원도 삼척시 원당동은 1986년 1월 1일자로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되면서 원당, 건지, 근산, 자지, 평전, 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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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월천리는 본래 월라리(月羅里)라 불리다가 나중에 마을 동쪽의 월봉(月峯)과 가곡천(柯谷川) 하구에 위치한 입지 때문에 월천이라 하였다. 조선 인종 때 해주 오씨와 김해 김씨가 이주하고 이후 남양 홍씨, 밀양 박씨, 강릉 김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88호 453명, 1962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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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허목길 13-9[정상동 82]에 있는 조선시대 삼척포진의 역대 영장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삼척포진(三陟浦鎭)의 역대 영장(營將)[조선시대 중앙의 총융청(摠戎廳)·수어청(守禦廳)·진무영 등과 각 도의 감영(監營)·병영(兵營)에 소속되어 지방 군대를 관할, 통솔하기 위하여 설치한 진영(鎭營)의 정3품 당상직 장관(將官)]들의 선정(善政)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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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정상동 육향산 맨 위에 있는 정자. 육향정(六香亭)은 강원도 삼척시 정상동육향산(六香山) 맨 위에 있다. 육향정은 여섯 기둥에 육각으로 지은 아담하고 날씬한 정자 건물이다. 육향정이 위치해 있는 육향산은 해발 30m밖에 안 되는 야트막한 동산이다. 옛날엔 이 산을 죽관도(竹串島)라 불렀다. 지금은 육지에 붙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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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읍상동은 삼척읍 당시,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읍상동(邑上洞)이라 했다. 강원도 삼척시 읍상동은 조선시대에 장관청 등 관청이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군청, 경찰서, 등기소, 우체국 등의 관청과 정기시장이 있던 곳이며 1980년대까지 버스정류장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난 여관과 식당이 많았다. 읍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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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읍중동은 본래 부내리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삼척읍의 중앙에 위치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읍중동(邑中洞)이 되었다. 조선시대 읍성 동남쪽 성 밑에 자리잡은 마을로써 속칭 중앙통이라 불렀다. 중앙통과 당저동 쪽으로 이어진 거리를 대학로라 명명하였다. 읍중동은 동쪽으로 남양동, 남쪽은 읍상동, 서쪽은 성내동,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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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사람들이 예부터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한 나라의 고유 의상은 그 나라의 문화를 상징하며, 의생활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그 시대의 사회·경제·정치 여건 변화를 반영한다. 의생활 관련 기록은 상류사회 의상에 국한되어 있고, 역사에서 주체를 형성해 온 서민 대중의 복식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의생활은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고 죽음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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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열녀.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이구연(李九淵)의 처이다. 삼척김씨는 나이 스물에 남편이 죽자 자식이 없는 것이 지극히 한이 되어 남편을 뒤좇아서 죽으려고 여러 날 밥도 먹지 않지 않자 시부모가 보고 매우 슬퍼하며 회심이 컸다. 식사 때는 남편 묘에 올라 피눈물을 흘리니 그로 인해 잔디가 말라 죽었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대신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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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이민하(李敏夏)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진사(進士) 이계(李桂)의 후손이다. 이민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어머니를 섬겼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어머니의 병환은 낫지 않았다. 이민하는 어머니의 병이 하루 속히 낫도록 해 달라며 간절히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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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현재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장군이자 정치인. 일명 태종(苔宗)으로, 내물마립간의 4대손이다.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대까지 활약한 대표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내물왕의 4대손이다. 이사부는 512년(지증왕 13) 현재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신라 영역으로 편입시킨 장수로, 6세기 신라의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사부는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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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이상호(李尙虎)의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자는 문숙(文淑), 호는 소재(素齋)이다. 이동익(李東益)의 아들이다. 이상호는 10세 때 아버지 이동익이 사망하자 단 것을 먹지 않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15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이상호는 아버지 묘를 이장하여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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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현재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이승휴의 자는 휴휴(休休)이고,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경산부(京山府) 가리현(加利縣) 사람으로, 가리이씨 시조이다. 1287년에 삼척 삼화사 용안당에서 『제왕운기』와 『내전록』을 저술하였다. 가리이씨(加利李氏)의 시조이며, 가계는 자세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은 이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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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의 본관은 전주이며, 이양무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평창이씨로, 상장군 이강제(李康齊)의 딸이다. 비는 천우위장사(千牛衛長史) 이숙(李肅)의 딸 공효왕후(恭孝王后 )[추존]이다. 1394년(태조 3) 태조가 4대조를 추존할 때 덕을 베풀고 의로 행했다 하여 목조로 추존하였다. 조선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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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가리(加利)이며, 고려말 문신이다. 사헌규정을 거쳐 공민왕 때 밀직사겸감찰대부를 지냈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아들이자 이임종(李林宗)의 동생이다. 1314년(충숙왕 1)에 사신(史臣)이 되어 호군(護軍) 윤석(尹碩)[?~1348]과 승려 계송(戒松)이 왕에게 여자를 들이는 등 아첨으로 총애를 받아 왕도를 잃었다고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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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삼척 출신 무신. 이인호(李寅顥)의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호는 만성(晩醒)이다. 고조부는 이원혁(李原赫), 증조부는 이장엽(李章曄)[1770~?], 조부는 이명위(李命瑋), 아버지는 증가선대부 한성부좌윤을 지낸 이병조(李秉祚)이다. 황해도 해주 조니포(助泥浦) 만호(萬戶)와 수사(水使)를 지낸 이계철(李啓喆)의 조카이다. 이인호는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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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가리이다. 고려 말 문신으로, 과거 급제 후 언부산랑을 지냈다.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아들이자 이연종(李衍宗)의 형이다. 생몰년 미상이며, 본관은 가리(加利)이다. 부친은 가리이씨 시조인 동안거사(動安居士)이승휴이다. 이승휴의 맏아들로, 과거에 급제한 후 벼슬이 언부산랑(讞部散郞)에 이르렀다. 관직 생활이 반듯하여 『주례(周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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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이천리는 본래 마흔천리(麻欣川里)라고 불리다가 1914년 마천(麻川)과 수리(壽理) 양 마을의 이름을 따서 이천리(理川里)가 되었다. 마천은 오천(梧川)·가천(駕川)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수리는 이씨(李氏)들이 들어와 번성하여 수리(樹李)라 하다가 나중에 수리(壽理)가 되었다. 조선 중종 때 우계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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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사용되는 인체 관련 어휘와 언어 현상. 강원도 삼척 지역의 방언은 음성이 거칠고 크다. 그 이유는 해안선에 접하고 있어 거센 파도 소리의 영향을 받거나 광산 지대가 발달하여 기계 소리와 갱 내 여러 잡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체와 관련된 어휘에서는 다른 방언들과 마찬가지로 음운 사이에 ‘비읍(ㅂ)’ 음 또는 ‘기역(ㄱ)’ 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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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척 지역 효자. 임순록(林淳錄)의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임순록은 아버지가 병에 걸려서 여러 가지 약을 써도 낫지 않자 단을 세우고 하늘에 열심히 빌고 빌었다. 어느 하룻밤 꿈에 신이 나타나서 시체 썩은 물을 먹이면 낫는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과연 아버지의 병이 낳았다고 한다. 1926년 10월 효자비를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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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임원리의 명칭은 조선시대 여행자 숙소인 만년원(萬年院)의 소재지로서 임원리(臨院里)라고 일컫는 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장유현이 울진에서 이주하고 나중에 정씨, 조씨, 이씨, 김씨, 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73호 897명, 1962년 448호 2475명,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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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삼척 지역 주민들의 항일 운동. 일제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지역 주민들이 임야를 측량하기 위하여 파견된 총독부 촉탁 혼마 규스케를 집단 구타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다. 일제 통치에 대한 반발심과 토지 조사에 이어서 실시된 임야 조사에 대한 불만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곧바로 식민지 정책에 착수하였다. 이를 위한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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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자원동은 자원과 평전을 묶어 진평(陳坪)이라 불러왔으나 자원동의 토질이 자적색(紫赤色)인 이유로 자지전(紫芝田) 또는 자지리(紫芝里)로 부르기도 하였다. 1987년 1월 1일에 자원동(紫園洞)으로 개칭하였다. 자원동은 조선 초기에 관청을 짓기 위해 성내리에 살고 있던 진(陳)씨 일가가 이주하여 정착했기 때문에 진평(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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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장전리라는 명칭은 이 지역이 산골짜기가 길어 장전(長田)이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숙종 때 정선 전씨가 이주하고 이후 안씨, 함씨, 김씨, 남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60호 320명, 1962년 65호 363명, 1982년 59호 346명, 1995년 58호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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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장호리는 지역의 형세가 장오리[웅압(雄鴨)]와 흡사하여 예부터 장울리(藏鬱里), 장오리(藏吾里, 藏五里) 등으로 불리다가 장호리(莊湖里)가 되었다. 조선 숙종 때 박용위와 김선웅이 이주하였고, 이후 이도천 및 다양한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원래 원덕읍에 속하였다가 1987년 1월 1일 근덕면에 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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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현재 적노동 지역은 본래 무리실[無老谷], 즉 노인이 없는 마을이라 했는데 후에 노인들이 좀 쌓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적노리(積老里)가 되었다고 한다. 『삼척군지』에 따르면 변(邊)씨, 최(崔)씨의 개척지로 알려졌으며 이후 조선광해군 때 김(金)씨, 박(朴)씨 등의 성씨가 이주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척시지명지』에는 삼척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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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허목의 『척주지』에는 이 지역을 견두리(堅豆里)라 하였고 마노(瑪瑙)가 생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이 지역은 길가에 파방모롱이[破防隅]가 있어 변두(邊頭) 혹은 견두(堅頭)가 되었다가 전두리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삼척 김씨가 이주하고 후에 경주 김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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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열녀. 전주이씨(全州李氏)는 풍기진씨(豊基秦氏)진현기(秦現基)의 처이다. 아들은 진득상(秦得商)이다. 전주이씨는 남편 진현기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곰에게 물렸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상처가 매우 깊었다. 아들 진득상과 더불어 남편의 상처에 생긴 벌레와 고름을 입으로 뱉어내고, 머리카락을 잘라서 약과 바꾸어 치료하였다. 옷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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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전체준(全體俊)의 본관은 정선이고, 호는 송헌(松軒)이다. 가선대부 전팔경의 후손이다. 아들은 전시연이다. 전체준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섬겼는데 부친이 병으로 한 달이 넘도록 고생하셨다. 그래서 의원에게 보였더니 사슴의 간이 부친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라고 진단해 주었다. 전체준은 부친의 병이 낳기를 하늘에 기도한 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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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에는 오래 전 토기점(土器店)이 있었기 때문에 점리(店里)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 현종 때 울진 장씨가 이주한 뒤로 다양한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72호 360명, 1962년 197호 1,066명, 1982년 160호 889명, 1990년 116호 552명, 1995년 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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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삼척 출신 문신이자 효자. 정두형은 여러 관직을 거친 후 7도의 도사를 여러 해 동안 역임하고 1570년에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강릉부사를 자원하여 지냈다. 정두형의 효행을 기리려 정문이 세워졌다.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고려 중기 문신으로서 내시, 예부시랑, 추밀원지주사를 지낸 형양공(滎陽公)정습명(鄭襲明)[?~1151]의 후손이자 정몽주(鄭夢周)[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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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에 전승되는 설화. 옛날,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동래정씨 집안에 절세미인인 정랑(鄭娘)이 살았다. 집 앞을 지나가던 도승이 정랑의 관상을 보더니, 정랑에게 장가드는 총각은 첫날밤에 죽는다고 했다. 도승의 말대로 정랑과 혼인하는 총각들은 모두 첫날밤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 정랑은 결혼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채 살게 되었는데,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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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정상동은 본래 ‘무래’라 부르던 지역으로 한자로 ‘정라(汀羅)’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말목들, 봉황촌, 무태, 진영을 합하고 정라진 위쪽에 있다하여 정상리(汀上里)라 하였다. 정상동과 정하동을 포함하는 행정동의 명칭은 정라동이다. 정상동은 봉황촌, 유지리, 육향산 주변, 감나무골, 벼락골, 영진안 등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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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의 정월대보름 풍속. 농경 사회에서 정월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한다. 새해 첫 보름달을 이루는 정월대보름은 명절 가운데 가장 많은 의례, 행사, 놀이가 전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특히 삼척은 정월대보름 풍속을 축제로 승화시켜서 매년 개최하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달은 생명의 윤회로 보기 때문에 신라의 가위[가배(嘉俳)] 기록 이래로 보름달 비중이 큰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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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정하동은 정상동과 함께 ‘정라(汀羅)’라고 하였지만 고자진(古自津)이 있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무태, 벽넘 등을 합하여 정라진 아래쪽에 있다하여 정하리(汀下里)라 하였다. 정상동과 정하동을 포함하는 행정동의 명칭은 정라동이다. 정하동은 조선세조 때 강릉김씨, 인조 때 영양천씨, 밀양박씨 등이 이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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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조비동은 본래 명성곡(明星谷)으로 불러오다 1759년 사비리(沙飛里)로 개명되었고 그 후 조비리(鳥飛里)가 되었다. 조선 연산군 때 박(朴)씨, 김(金)씨가 개척하였다고 하며, 선조 때 김일생(金一生), 숙종 때 진(陣)씨, 김(金)씨가 이주해왔다. 강원도 삼척시 조비동은 서쪽에 성굴산, 북쪽에 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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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강원도 삼척 지역의 역사. 태조 이성계는 1393년(태조 2)에 삼척이 목조이안사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삼척군에서 삼척부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1413년(태종 13)에 삼척도호부로 읍격이 강등되었다. 삼척도호부 산하에는 당초 5개의 리가 있었지만 1630년(인조 8)경에 4개를 신설하여 9개의 리가 되었다. 그 후 숙종 연간에 리를 면으로 개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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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척도호부 산하 행정 구역. 처음 삼척도호부 산하에는 부내·노곡·장생·미로·북평 등 5개 리가 있었다. 그러나 1630년경 매곡·덕번·소달·박곡 등 4개 리를 신설하여 총 9개 리가 되었다. 그 후 숙종 연간에 리를 면으로 개칭하는 한편 장생을 상장과 하장, 덕번을 근덕과 원덕, 북평을 도상과 도하로 각각 분리·신설하여 총 12개 면이 되었다. 면리제는 조선시대 국가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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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인간의 삶 및 죽음과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궁극의 관심뿐만 아니라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이해의 틀을 제공하기도 하면서 고통을 설명해 주는 해석 틀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종교 개념에서는 종교를 창시한 교조(敎祖), 교리(敎理), 의례(儀禮), 교단(敎團), 신도 공동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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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산간 지역에서 사용하던 운반 도구. 주루막은 강원 산간 지역 일대에서 사용하던 배낭의 한 가지이다. 곡물을 나르는 용기로 사용하기도 하고 산에 오를 때 낫 같은 도구나 점심거리를 넣어서 메고 다니기도 했다. 삼척 신리 마을의 가정에는 한두 개씩 있었다고 한다. 주루막을 만들 때 원래 모양은 사각형으로 엮은 것이었지만 주머니처럼 조였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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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주지리는 마을이 산 위에 있기 때문에 본래 산등마루[산등(山嶝)]라 불렀는데 이것이 산배지(山背地) 및 배지(背旨)로 변하고, 다시 ‘배’가 ‘배 주(舟)’로 변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주지리(舟旨里)가 되었다. 조선 숙종 때 밀양 박씨 및 심씨와 송씨가 이주하고, 이후 한양 조씨 등이 이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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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성남동에 있는 정자. 강원도 삼척시 성남동 삼척문화예술회관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죽서정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된 6각형 정자이며, 지붕은 기와로 이었다. 죽서정(竹西亭)에서 북쪽으로 쳐다보면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竹西樓)와 함께 죽서교(竹西橋)가 있고, 이 다리 밑을 유유히 흐르는 오십천의 물결을 내려다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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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안축이 삼척시를 대상으로 지은 시. 중국에서 유입된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명승인 소상강 여덟 지역의 경승을 시와 그림으로 향유하면서 고고하고 세속에서 벗어난 문화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당시의 고려 문인들은 소상팔경을 시재로 하여 겨루는 도구로 받아들이고,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작품에 등장하는 것들을 생활 속 경물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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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마읍(馬邑), 마라읍(馬羅邑), 말읍(末邑), 마읍(麻邑) 등으로 불리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마읍리(上麻邑里), 중마읍리(中麻邑里), 하마읍리(下麻邑里)로 분할되었다. 예전에는 마을[촌(村)]을 ‘말’이라 불렀는데 이 마을의 답평(畓坪)은 옛날 미역늪이라는 큰 늪이 있던 곳으로, 말아래늪[촌하예(村下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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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의 중앙에 망주봉(望柱峯)이 있어서 본래 주봉동(柱峯洞)이라 불렀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중봉(中峯)이 되었다. 조선 숙종 때 이재가 경기도 지평에서 이곳 사곡에 이주한 후 남씨, 이씨, 함씨, 안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144호 652명, 1962년 78호 457명, 1982년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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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증산동 지역은 주변 산세가 시루[甑]를 닮았다 하여 실뫼, 실미 등으로 부르다가 한자표기 과정에서 증산(甑山)이 되었다. 일부 지역주민들은 아직도 시루뫼, 실뫼, 실미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증산동은 김덕원(金德元)이 마을을 개척하고 이후 연일정씨, 강릉김씨 등이 이주하였다고 전한다. 강원도 삼척시 증산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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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지윤주(池胤周)의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자는 상윤(相胤)이며, 호는 동은(東隱)이다. 망의군(忘義君)지용기(池湧奇)[?~1392]의 후손이다. 지윤주는 아버지가 병환에 시달리자 북두칠성을 향해 빌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지윤주의 간절함에 감동한 나머지 신이 산삼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지윤주는 신이 알려 준 곳으로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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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문신. 진관(陳瓘)의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자는 영중(瑩中, 瑩仲)이며, 호는 동강(東岡)이다. 함경도사 진가유(陳嘉猷)의 아들이다. 조부는 진숭백(陳崇伯), 증조부는 진광(陳曠)이다. 형은 진수(陳璲)이다. 1534년(중종 29) 갑오 식년시에서 생원(生員)에 급제하고, 1543년(중종 38) 계묘 식년시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호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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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 삼척군으로 봉해진 충신. 진군명(秦君命)의 선조는 풍기(豊基) 사람이다. 진군명은 고려시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진중기(秦中起)의 손자이다. 진군명은 고려시대 충신으로, 무관직을 지냈다. 진군명은 ‘판병부사(判兵部事)’의 벼슬을 지냈다. 판병부사와 같은 말은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로, 고려시대에 둔 ‘상서병부(尙書兵部)’의 으뜸 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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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의 열녀 삼척김씨(三陟金氏)[?~1844]는 통정대부 김기복(金起福)의 딸이며, 진덕귀(陣德貴)[?~1844]의 처이다. 삼척김씨는 삼척 천곡리(泉谷里)에서 살았다. 나이 18세에 진덕귀에게 시집갔지만 집안이 가난하고 시부모가 연로하여 부부가 칡뿌리를 캐고 도토리를 주어다가 부모를 공양하였다. 1844년(헌종 10)에 남편이 죽으니 예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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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 삼척 지역 삼척포진성의 동문루. 삼척시 정상동 육향산(六香山) 아래에는 석성(石城)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동해를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이다. 이 진영(鎭營)의 성(城) 동문루(東門樓)를 진동루(鎭東樓), 안해루(晏海樓), 세병루(洗兵樓)라고도 불렀다. 삼척포진성은 원래 삼척시 오분동 뒷산 해변의 험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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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군으로 책봉받은 문신. 진의(陳懿)의 본관은 여양(驪陽)이며, 시조 진경(陳鏡)으로부터 16세이다. 부친은 진상헌(陳尙軒)이며, 아들은 진영(陳瑛)이다. 시조 진경은 고려시대에 시중(侍中), 태보(太保) 등의 벼슬을 역임했지만 선계(先系)는 자세하지 않다. 진경의 16세손인 진의는 충렬왕 때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졌으며, 조선조에 의주병마사(義州兵馬使)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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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진자사(陳子俟)의 본관은 여양(驪陽)이지만 그의 가계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고려 충렬왕 때 문신으로 본관은 여양이다. 1281년(충렬왕 7) 정월에 안집사(安集使) 병부시랑(兵部侍郎)으로 삼척에 왔을 때 큰 눈이 내려 가지 못하고 열흘 동안 묵으면서 죽서루(竹西樓)에 올라 고조(古調)를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민족 대서사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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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문신. 진학(秦鶴)의 본래 성은 안동김씨이지만 진씨(秦氏)를 사성(賜姓)하였다. 그러나 가계가 자세하지 않다. 진학은 고려충목왕 때의 문신이며, 본성은 안동김씨이다. 안동 태생으로, 충목왕 때 급제한 뒤 시중(侍中)을 지냈다. 충렬왕 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원 황제의 미움을 사서 진학을 죽이라는 명을 충렬왕이 받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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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차구리는 본래 범굴바위[虎窟岩]가 와전되어 차구리라 불리다가 차구리(次口里)로 표기하게 되었다. 조선 광해군 때 경주 이씨, 영조 때 전주 이씨, 풍천 임씨, 안동 김씨, 수원 백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32호 190명, 1962년 35호 223명, 1982년 23호 16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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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산간에서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한 철창(鐵槍). 겨울철에 산에서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던 철창[또는 쇠창]이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썰매를 타고 다니면서 창을 던져 산짐승을 잡았다. 여기서 썰매라고 하는 것은 소년들이 앉아서 지치는 썰매가 아니라 오늘날의 스키와 유사한 것이다. 썰매 크기는 일정치 않지만 길이 50㎝ 정도도 있고 보통은 1m 정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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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 산간 마을의 생활 용구. 채독은 싸리로 만든 식량 저장용 독을 말한다. 독이나 항아리 같은 질그릇이 귀한 산간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도구의 하나였다. 채독은 싸리를 이용하여 항아리처럼 배가 부르게, 바닥은 네모지게 엮어 만들었다. 쇠똥을 바른 뒤 진흙을 덧바르기도 하고, 처음부터 보릿겨와 진흙을 버무려서 바르기도 한다. 비만 맞지 않으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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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삼척 지역에 둔 지방 행정 구역 단위. 995년(성종 14) 지방제도 개편으로 삼척군은 읍격(邑格)이 군(郡)에서 주(州)로 승격되고 읍명(邑名)을 척(陟)으로 하는 척주(陟州)로 개칭되었으며, 주로의 승격에 따라 지방관으로 단련사가 파견되었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자 940년(태조 23) 통일 전쟁를 치르면서 수시로 단행된 군(郡)·현(縣) 개편을 종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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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원래 노곡면 천기(川基)와 같은 지명으로 불러오다가 상천기리와 하천기리로 분리하여 상천기리는 노곡면에 속하고 하천기리는 천기리로 개칭하여 미로면에 속하게 되었다. 천기(川基)란 이 지역이 오십천(五十川)과 반천(班川)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십천을 외천(外川), 반천을 내천(內川)이라 하여 내천 변두리에 자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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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월정사의 말사. 천은사(天恩寺)는 758년(신라 경덕왕 17) 인도에서 온 3명의 승려인 두타삼선(頭陀三仙)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두타산의 네 모퉁이에 절을 지었다. 동쪽은 청련(淸蓮)을 가지고 와서 지상사(池上寺)를 짓고, 남쪽은 금련(金蓮)을 가지고 와서 영은사(靈隱寺)를 짓고,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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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강원도 삼척 지역에 보급된 그리스도 교파의 하나. 천주교의 공식 명칭은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 또는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이다. 천주교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이전에 중국에서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에 의하여 가톨릭의 신앙 대상인 하느님(God)이 천주(天主)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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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교동 갈천리에 있는 청고재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북소리를 듣고 묘를 써 청고재라 불리게 된 이야기. 청고재는 강원도 삼척시 교동 갈천리에 있는 나지막한 고개이다. 이 고개 밑에 강릉김씨 재사가 있고, 재사 뒤편에 조선시대 선조 때 진사를 지낸 김세민의 묘가 있다. 청고재의 명칭은 이 묘를 쓴 뒤에 생겨났다. 하루는 비가 쏟아져 강물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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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여가 및 운동 능력을 기르기 위하여 실시하는 제반 활동. 삼척 지역 체육 활동 발자취는 고대부터 찾을 수 있다. 고대부터 삼척 지역에서는 민속행사의 하나로 지역마다 체육 관련 활동을 해 왔다. 예를 들면 예부터 전래되어 온 씨름, 줄다리기, 그네 등이다. 특히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척 기줄다리기는 정월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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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체육 단체. 강원도 삼척시에는 대한체육회, 강원도체육회, 삼척군체육회, 삼척시체육회가 있어 왔다. 각종 체육 단체는 1962년부터 시장·군수가 체육회장을 맡게 되면서 크게 향상되었다. 현재는 각 체육 단체의 회장이나 운영을 민간에서 맡아 주도하고 있으며, 삼척시는 체육 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삼척시 체육 단체는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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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소재한 각종 체육 시설. 2016년 현재 초·중·고·대학 등 학교 기관을 제외한 삼척시 관내의 체육 시설은 공공체육시설로 육상경기장 3곳, 축구장 1곳, 야구장 1곳, 테니스장 6곳, 간이운동장[동네체육시설] 30곳, 구기체육관 2곳, 생활체육관 2곳, 수영장 2곳, 국궁장 2곳이 있다. 신고 등록 체육 시설로는 수영장 2곳, 체육도장 16곳, 골프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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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사일(沙日) 또는 사곡(沙谷), 문암(門岩), 원평(院坪), 매리방(梅里芳), 희동(希洞), 개삼평(開三坪) 등의 자연마을을 통칭하여 초곡(草谷)이라 하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일과 문암 2개 자연마을을 합쳐 초곡리라 하였다. 조선 인조 때 이동춘(李東春), 숙종 때 염태봉(廉太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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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 효자. 최련(崔漣)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경호(景浩)이며, 호는 유정(楡亭)이다. 강릉군(江陵君) 고려 후기 무신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이다. 부친은 홍문관 수찬(修撰)을 지낸 최한보(崔漢輔)이다. 모친은 영양남씨로, 생원 남신석(南紳錫)의 딸이다. 최련은 9살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홀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했지만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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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최봉래(崔鳳來)는 어려서부터 어버이의 뜻에 순종하였다. 아버지의 병이 깊어서 4년 동안 약을 달여 드리면서 정성껏 간호하며 잠시도 게으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생선회를 먹고 싶어하자 얼음을 깨고 그물을 쳤지만 겨울철이었기 때문에 밤을 새워도 고기는 한 마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낙담한 최봉래가 얼음 위에서 슬피 울고 있자니 물고기가 얼음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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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무신. 최붕동(崔鵬東)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운거(雲擧)이며, 호는 병산(屛山)이다. 강릉최씨 시조 대경공최흔봉(崔欣奉)의 23세손이며, 생원 최숙남(崔叔男)의 증손이다. 사직파 파조인 21세 첨정공최응서[무과 급제]의 손자이고, 22세 전라수사 최운경[무과 급제]의 아들이다. 최붕동은 무과에 급제하여 월송만호(月松萬戶)를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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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문관이자 교육자. 최세필(崔世弼)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초명은 세량(世亮), 자는 군보(君輔), 호는 용암(龍岩)이다. 최진유(崔鎭維)의 아들이며, 동지중추부사 최진남(崔鎭南)[1626~?]의 조카이다. 최세필은 조선숙종 때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이 되었지만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지평(持平)에 증직되었다. 170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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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문관. 최수(崔修)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영숙(永叔)이며, 호는 구정(歐亭)이다. 고려 말 전법판서 밀직부사를 지내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여러 차례 병조판서로 불렀으나 불응하고 은둔한 최유의(崔有漪)의 아들이다. 최수(崔修)는 1425년(세종 7)에 음관(蔭官)으로 고산현감(高山縣監)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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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최용채(崔龍采)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개명하여 영채(永采)라고 하였다. 자는 성언(成彦)이다. 생원(生員) 최도봉(崔道鳳)의 후손이다. 최용채는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늙은 부모에게 있는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부모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정성껏 받들어 모시었다. 그러다가 부모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마다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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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관. 최운서(崔雲緖)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대사간(大司諫) 최수(崔修)의 조카이다. 최운서는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을 거쳐 1445년(세종 27)에는 무릉도안무사(茂陵島按撫使)가 되었고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1457년(세조 3)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화를 입을 때 예천(禮泉)으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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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최원각(崔元角)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탁립(卓立)이고, 호는 산저(汕渚)이다. 지사(知事) 최극강(崔克康)의 아들이자 첨추(僉樞) 최원흘(崔元屹)의 동생이다. 최원각은 1610년(광해군 2) 무과에 급제하여 봉사(奉事)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강화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는 일과 폐모론(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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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무관. 최원흘(崔元屹)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탁연(卓然)이다. 전주계 강릉최씨 시조인 삼한통합익찬개국공신 대경공(大卿公)최흔봉(崔欣奉)의 23세손이다. 계원(桂原)최응수(崔應壽)의 손자, 지사(知事) 최극강(崔克康)의 아들이다.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하여 둘 다 봉사(奉事)를 지낸 최원각과 최원준(崔元峻)의 형이다. 최원흘(崔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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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삼척 지역에서 은거한 문신. 최유의(崔有漪)의 본관은 강릉이며, 강릉최씨 최흔봉계(崔欣奉系) 평장사 최입지(崔立之)의 손자이다. 최입지-최안소(崔安沼)-최유의로 이어진다. 최유의는 고려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경상도 안렴사(按廉使)를 거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벼슬을 그만두고 현재의 삼척 근덕 맹방촌에 내려와 살았다. 공양왕이 왕위를 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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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인. 최유혁(崔有赫)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형원(亨遠), 호는 퇴암(退菴)이다. 아버지는 최창인(崔昌仁)이다. 최유혁은 송시열(宋時烈)[1607~1689] 현손인 문간공(文簡公)송덕상(宋德相)[?~1783]의 문인으로, 정조 때 천거되어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좨주(祭酒)에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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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최응달(崔應達)의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개명하여 병달(炳達)이라 하였다. 자는 사집(士執)이며, 호는 석봉(石峯)이다. 최두참(崔斗參)의 아들이다. 최응달의 부모는 병환이 매우 깊어서 백방으로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최응달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렸더니 수 년 동안을 더 연명하였다고 한다. 최응달이 부모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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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지역에 은거한 무관. 최응수(崔應壽)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수지(壽之), 호는 취금정(翠錦亭)이다. 삼한통합익찬개국공신 대경공(大卿公)최흔봉(崔欣奉)의 21세손이며, 계원파 파조 평장사(平章事)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이다. 최응수는 1533년(중종 28)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5년(중종 30) 별시무과에 급제한 뒤 좌부장(左部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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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관. 최제남(崔悌男)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치공(治恭)이며, 호는 동계(桐溪)이다. 영흥교수(永興敎授) 최수량(崔守良)의 아들이다. 최제남은 1609년(광해군 1) 증광진사(增廣進士)에 합격하여 서산훈도(瑞山訓導)를 지냈다. 1619년(광해군 11)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전적(典籍)을 거쳐 안변교수(安邊敎授)로 갔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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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 최종원(崔鍾遠)의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민원(敏元)이며, 호는 창애헌(滄艾軒)이다. 대사간 최수(崔修)의 후손이다. 최종원은 1782년(정조 6) 참의 이택징(李澤徵)[1715~1782]이 화를 당하였을 때 친척 관계 때문에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강릉 간매동(看梅洞)에서 봉정(鳳亭)[현 강원도 동해시 단봉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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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에는 본래 가래나무[추목(楸木)]가 많아 가래동, 추라동(楸羅洞)이라 부르다가 추동(楸洞)이 되었다. 조선 인조 때 변씨가 개척하고 이후 김씨, 안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84호 476명, 1962년 103호 637명, 1982년 65호 382명, 1995년 44호 17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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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오십천·마읍천 하구에서 겨울에 관찰되는 오리과 새. 큰고니는 해안가 갯벌이나 호수, 저수지 등지에서 살고 있는 기러기목 오리과의 겨울 철새이다. 큰고니의 몸 빛깔은 암수가 같은 순백색이고, 눈앞에는 황색의 피부가 드러나 있다. 부리는 노란색이며, 부리 끝에서 콧구멍의 뒤쪽까지와 아래 부리는 검은색이다. 눈조리개는 짙은 갈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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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삼림 지대에서 서식하는 올빼미목 올빼미과 맹금류. 큰소쩍새는 천연기념물 제324-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새다. 몸길이 21.5~25.5㎝로, 숲 속의 노거수 밑동의 파인 굴에 둥지를 틀고 번식하는 올빼미목 올빼미과 텃새로, 흔하지 않은 겨울철새다. 큰소쩍새는 대체로 소쩍새와 비슷하지만 뒷목을 가로지르는 2줄의 줄무늬가 있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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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동굴지대에 속해 있는 석회암 동굴. 큰재세굴은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에 속해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큰재세굴은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에 속해 있는 동굴로 1966년 6월 15일 천연기념물 제 178호로 지정되었다. 큰재세굴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는 본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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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탕곡리는 절골[寺谷]에 있던 사찰의 승려들이 가곡천에 상·중·하의 목욕탕을 설치한 연고로 탕곡리(湯谷里)가 되었다. 행주 기씨(幸州奇氏)의 개설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조선인조 때 진기만(秦己萬), 김원환(金源環), 현종 때 정석윤(鄭錫允)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79호 470명,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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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삼척보통학교학생들의 동맹 휴학. 태평양회의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을 지지하는 삼척보통학교학생들의 동맹 휴학 운동이다. 1921년 7월 10일경 미국 대통령 워런 하딩이 군축 문제와 극동 문제를 주제로 하는 태평양회의 개최를 발표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 운동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하여 한국 문제도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외교 활동을 펴기로 하고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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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본래 토산(土山)이라 불리다가 서쪽의 작은 산봉우리 모양이 토끼를 닮았다 하여 옥토망월(玉兎望月), 즉 토산(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숙종 때 심씨와 김씨가 이주하고 이후 영조 때 안씨 등의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57호 273명, 1962년 58호 309명,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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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삼척 지역의 열부. 파평염씨(坡平廉氏)는 김두순(金斗淳)의 처이다. 파평염씨는 당시 강원도 삼척군 매화면 길곡리(吉谷里)에 살았다. 남편의 병환이 깊어서 목숨을 대신할 것을 빌었지만 끝내 남편은 사망하였다. 함께 따라 죽으려다가 어린아이가 있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아이가 크기를 기다렸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자 파평염씨는 남편의 제삿날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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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 따르면 판문리는 울탄(鬱呑)이라 하여 어리(於里)와 함께 울탄내외촌(鬱呑內外村)으로 불렀다. 이후 울탄[울머금, 울뭄]이 변하여 늘문[於門] 또는 널문[板門]으로 부르다가 널문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판문(板門)이 되었다. 조선 숙종 때 이씨가 이주하고 이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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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법정동. 평전동(平田洞)은 자원동과 같이 진평(陳平)의 일부로 전야(田野)[밭과 들]가 매우 넓기 때문에 평밭(坪田)이라 불러오던 것이 한자가 변하여 평전(平田)이 되었다. 평전동은 자원동과 마찬가지로 진(陳)씨가 마을을 개척하였고 서쪽 수암골[水岩谷]에는 진씨의 터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김의욱, 심씨, 이씨 등의 성씨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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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곡리는 본래 빙골[氷洞]이라 부르다가 점차 와전되어 풍곡리(豊谷里)가 되었다. 황씨의 개척지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순조 때 김명두(金明斗), 박준형(朴準亨) 등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151호 980명, 1962년 472호 2,467명, 1982년 639호 2,739명,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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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에는 오십천을 건너는 곳이 위, 아래 두 곳이 있다. 위쪽에 있는 곳을 속어로 ‘웃 그는 나들이’, 아래쪽에 있는 곳을 ‘아래 그는 나들이’라 하다가 이것이 와전되어 거노리(巨老里)가 되었다. 그 가운데 ‘아래에 있는 거노리’라 하여 하거노리(下巨老里)라 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정태호(鄭泰浩), 숙종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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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상군천리와 하군천리를 통칭하여 구무내, 구멍내[공천(孔川)]라 불렀다. 구무내란 말은 옛날에 마을 진입로 남북의 산이 서로 이어져서 수로(水路)가 산에 구멍을 뚫고 나온 것에서 유래하였다. 구무내가 와전되어 군천(軍川)이 되었다. 조선 선조 때 안공헌(安公獻)이 이주하고 이후 삼척 김씨, 정선 전씨,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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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마읍(馬邑), 마라읍(馬羅邑), 말읍(末邑), 마읍(麻邑) 등으로 불리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마읍리(上麻邑里), 중마읍리(中麻邑里), 하마읍리(下麻邑里)로 분할되었다. 예전에는 마을[촌(村)]을 ‘말’이라 불렀는데 이 마을의 답평(畓坪)은 옛날 미역늪이라는 큰 늪이 있던 곳으로, 말아래늪[촌하예(村下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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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 본래 맹방(孟芳) 혹은 매향방(埋香芳)이라 불렸다. 맹방이란 맹씨의 방린(芳隣)이란 말이 있지만 불확실하다. 1309년(고려 충선왕 원년) 용화회주 미륵의 하강을 기원하기 위하여 향나무 250그루를 맹방정(孟芳汀)에 파묻었다는 기록이 고성 사선봉 매향비문(高城四仙峯埋香碑文)에 있어 이 마을이 고려시대부터 맹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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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여삼리(閭三里)로부터 계류(溪流)가 흘러들어 온다 하여 본래 바드내[수천(受川)], 바깥내[외천(外川)], 바위내[암천(岩川)], 건내[건천(乾川)], 양바리재[양반치(陽返峙)] 등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반천(班川)이라 하였다. 조선 숙종 때 심지활(沈之活)이 이주하고 이후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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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상사전리와 하사전리 지역은 본래 새밭[초전(草田)]으로 부르다가 사밭[사전(士田)]으로 속전되었으며, 나중에 상사전리(上士田里)와 하사전리(下士田里)로 분리되었다. 조선 인조 때 안중남(安仲男)이 이주하고 이후 최선경(崔仙景) 등 각 성씨가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 수는 1916년 30호 177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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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노곡면에 있는 법정리.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는 이 지역을 올산(屼山)이라 하였고, 『여지도서』에는 오을산(五乙山)이라 기록하였다. 본래 물이 모여 합하는 곳이라는 뜻의 물어부러미와 길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의 길어부러미에서 어부러미가 와전되어 올산(屼山), 오을산(五乙山)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이후 월산(月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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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상정리와 하정리는 본래 통칭하여 소골[소곡(沼谷)]이라 불렀다. 이는 이 지역이 오십천 유역에 위치하여 골짜기가 협소하고 물이 깊었기 때문이다. 점차 위·아래 지역을 구분하여 웃소골[상소(上沼)]와 아래소골[하소(下沼)]로 부르다가 한자로 와전되어 상정(上鼎), 하정(下鼎)이 되었다. 일설에는 쇠솥[철정(鐵鼎)]을 제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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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한내리는 본래 출천곡(出泉谷)으로 햇물나기골[新水生谷]이라 불렸다. 이후 속전되며 한내[寒泉·汗出·汗乃]가 되었다. 조선 영조 때 경주 김씨, 경주 신씨가 이주했고 이후 경주 이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21호 101명, 1962년 19호 164명, 1982년 4호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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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정선군과의 경계에 용소(龍沼)가 있어 한소[대소(大沼)]라 일러 왔다.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는 한이수(汗伊藪)라 기록하기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한소리(汗沼里)가 되었다. 일설에는 한수리(寒水里)라고도 한다. 조선 태종 때 김취원(金就元)이 이주하고 이후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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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을 납치한 해룡을 위협하기 위하여 부른 신라가요. 강원도 삼척 지역이 배경인「해가」는 신라가요의 하나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노래 배경과 함께 전해진다. 구호구호출수로(龜乎龜乎出水路)[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약인부녀죄하극(掠人婦女罪何極)[남의 부녀 앗아간 죄 얼마나 큰가] 여약패역불출헌(汝若悖逆不出獻)[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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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있던 강론소. 원래 해운정이 있던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연봉의 자리에는 고려시대 문신으로 남양홍씨삼척 입향시조(入鄕始祖) 홍준(洪濬)이 처소를 정하고 교육을 펼친 교수당이 있던 곳이기에 남양홍씨 문중에서 해운정이 있던 자리에 해운정 복원 대신 교수당을 복원하였다. 홍준의 교수당은 1388년(고려 우왕 14)에 지었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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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덕왕 때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는 노옹의 이야기가 담긴 4구체 향가. 「헌화가(獻花歌)」는 신라시대 성덕왕 때의 향가 가운데 하나로, 제33대 신라 왕인 성덕왕 때 어느 노옹이 부른 향가이다.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에 수록되어 전해지며, 공간 배경이 현재의 강원도 삼척시로 추정된다. 자포암호변희(紫布岩乎邊希)[붉은 바위 끝에(제4구 꽃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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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에 위치한 사직동 성당 관할 공소. 공소란 사제가 항상 거주하지는 않는 성당을 말한다. 공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박해 때 관헌의 눈을 피해 산속에 숨어들어 이루어진 교우촌을 말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는 1950~1960년대에 골롬반 신부들이 들어오면서 편의상 성당에서 먼 거리에 있는 곳에 공소를 세우는 경우가 있었다. 호산공소는 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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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 호산리는 본래 부신당(夫神堂)으로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호(芙湖)와 재산(才山) 두 자연마을을 합하여 호산리(湖山里)가 되었다. 부호는 고려시대 선녀 부용(芙蓉)이 해망산에서 내려와 놀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재산은 죽현(竹峴) 밑에 있었으므로 죽산(竹山) 또는 재산(才山)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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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계하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부친은 홍중겸이다. 홍계하(洪啓夏)는 학행(學行)이 탁월하여 관동의 부자(夫子)라고 불리었다. 홍계하는 부모를 위하는 정성 또한 지극하였다고 한다. 시묘살이를 하는 3년 동안에는 죽을 먹으며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모친이 병을 얻자 홍계하는 기도를 하였으며, 지극함이 미쳐 호랑이가 물어다 준 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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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의사. 홍긍섭(洪兢燮)[1830~?]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상지(相之)이며, 호는 만성(晩醒)이다. 치암홍진민(洪鎭民)의 조카이다. 홍긍섭(洪兢燮)은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김병길(金秉佶), 홍병정(洪秉政), 김헌경, 최우집(崔禹集) 등과 더불어 지역에 격문을 돌렸다. 1902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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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출신 관료. 홍석표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서 강원도와 전라북도 등에서 공직 생활을 하였으며, 도정 개혁과 도민 생활 향상에 공을 세워 훈장을 받았다. 홍석표(洪晳杓)[1931~1993]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홍석표는 1931년에 삼척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경기도 성남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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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홍온(洪溫)[1683~1756]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화숙(和叔)이다. 동추부사 홍우성(洪禹成)의 아들이다. 동추(同樞)의 벼슬을 받고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인조 때 허견(許堅)[?~1680]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송재(松齋)홍응부(洪應溥)의 손자이다. 홍온은 1742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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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출신 문신. 홍인조(洪寅祚)[1724~1798]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현민(顯民)이며, 호는 송현(松峴)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송재(松齋)홍응부(洪應溥)의 증손이다. 조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홍우성(洪禹成)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홍온(洪溫)이다. 홍인조(洪寅祚)는 1793년(정조 17)에 관동공령과(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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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인협(洪仁協)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치공(穉恭)이며, 호는 귀봉(龜峯) 또는 수분와(守分窩)이다. 해운(海運)홍계하(洪啓夏)[1714~1784]의 아들이며, 종손(從孫)은 홍진국(洪鎭國)이다. 홍인협의 어머니는 홍인협이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사망하여 할머니가 홍인협을 길렀다. 할머니마저 사망하자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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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출신 문관. 홍재주(洪在疇)[1838~?]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중근(重謹)이며, 호는 호은(湖隱)이다. 구미재홍건기(洪建基)의 증손이다. 홍재주는 1898년(광무 2) 중추원 의관에 임명되었고, 1902년(광무 6) 나이 65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를 받았으며, 1904년 통신사주사(通信司主事)에 임명되었다. 구미촌(九美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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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삼척 지역에서 은거한 문신. 고려 말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남양홍씨는 두 성씨가 있다. 고구려 때 당나라 학사 은열(殷悅)을 시조로 하는 당홍계(唐洪系)와 고려 중기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토홍계(土洪系)이다. 홍준은 토홍계의 11세손이다. 아버지는 홍귀연(洪貴演)이고, 아들은 홍극겸(洪克謙)이다. 고려 말 이색(李穡)[1328~1396]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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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삼척 지역 효자. 홍진국(洪鎭國)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의숙(儀叔)이며, 호는 백원(栢園)이다. 도은(陶隱)홍구목(洪九睦)의 아들이다. 홍진국은 젊어서 정인후(鄭仁逅), 황종길(黃鍾吉)에게 학문을 배웠다. 홍진국은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설사병으로 여러 달 고생하니 복분자를 구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미 복분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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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삼척 출신 문인. 홍택섭(洪宅燮)은 구암(龜巖)홍지섭(洪志燮)의 문인으로, 동학농민운동에 반대하여 의거하였다. 통정대부와 비승을 지냈다. 홍택섭(洪宅燮)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치형(穉衡)이며, 호는 암헌(巖軒)이다. 참봉 홍벽(洪壁)의 후손이다. 홍택섭은 예의요해(禮義要解), 권학해설(勸學解說), 서당학규(書堂學規)를 지은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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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삼척 출신 무신. 홍확은 조선선조 때 삼척 출신 무신이다. 알성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습독, 울진포 만호, 창주첨사, 창성부사 등의 관직을 지냈다. 삼척 남양리에 삼락정을 지었다. 홍확(洪確)[1543~1621?]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강수(剛叟)이며, 호는 영소당(永嘯堂)이다.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홍연복(洪衍福), 아버지는 전 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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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불씨 보존용으로 사용하던 화로의 일종. 상부는 작은 솥을 걸 수 있을 정도로 파여 있으며, 전면은 아궁이 입처럼 뚫어져 있다. 상부와 하부는 서로 막혀 있다. 화투라고도 하며, 불씨 보존 용구이다. 부뚜막 옆에 진흙으로 만들어 놓은 일종의 화로로, 상부의 파인 곳에는 관솔불을 피우거나 뜬숯[장작을 때고 난 뒤나 참숯을 꺼서 만든 숯]을 모아 두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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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석회암 개방 동굴. 환선굴(幻仙窟)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회암 개방 동굴이다. 환선굴은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에 속하는 석회암 동굴로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환선굴(幻仙窟)이 있는 강원도 신기면 대이리는 본래 도계읍 지역이었다. 1989년 4월 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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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 일대에서 자생하고 있는 할미꽃. 강원도 삼척시 대이리에는 환선굴과 대금굴 등 대이리동굴지대가 있다. 석회암 지대인 환선굴 부근에 세계 희귀종인 환선할미꽃이 자라고 있다. 주변 환경은 계곡을 흐르는 강의 물이 맑고, 울창한 원시림으로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내내 많은 사람이 동굴 구경을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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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법정리. 이 지역은 고려 때 목조 황고비(皇考妣)가 살던 곳이었다. 본래 황터[황기(皇基)]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활기[궁기(弓基)], 활계(闊鷄) 등으로 와전되었다. 『여지도서』에는 활지(活只)로 기록되었고, 나중에 이중하(李重夏)[1846~1917]가 활기(活耆)라 하였다. 조선 숙종 때 진선업(陣善業)이 이주하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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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전역에 서식하는 매목 매과 텃새. 주로 도시나 시골 마을 근처에 살며, 도시의 건물에서도 번식한다. 먹이를 찾으려고 공중을 빙빙 돌다가 한순간 정지비행을 하는 습성이 있는 매목 매과 텃새로, 도심에 적응한 맹금류이다. 수컷의 등은 진한 갈색 바탕에 옅은 갈색의 반점이 있다. 황갈색의 배에는 커다란 검은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머리는 회색이다. 꼬리는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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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황조리의 명칭은 지역 가운데 황소혈(黃巢穴)이라는 유명한 묘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황새[黃鳥]라 부른 것이 황조리가 되었다. 황조리는 최초 고천삼(高千三)이 개척한 마을로 후에 김녕 김씨, 진주 강씨 등이 이주하며 형성되었다. 호구수는 1916년 52호 239명, 1962년 62호 420명, 1982년 44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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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경동에 있던 정자. 강원도 삼척시 도경동 오십천 바위섬 위에 있었다고 전한다. 조선 성종 때 형조참판을 지낸 강릉 사람 최응현(崔應賢)[1428~1507]이 벼슬을 그만두고 이곳 오십천 길목 바위섬에다 정자를 지어 놓고 산수 경관을 관상하던 곳이 척주팔경의 하나인 회강정(廻江亭)이다. 강물이 휘돌아 흐르는 곳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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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법정리. 허목의 『척주지』에는 이 지역을 삼물탄(三勿呑)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삼전(三田), 초전(草田) 등 자연마을의 전(田)자와 응암(鷹岩)의 응(鷹)자가 흥(興)자로 와전된 것이 합쳐져 흥전(興田)이 되었다. 조선 숙종 때 밀양 박씨 이후 삼척 김씨, 영일 정씨, 파평 윤씨, 남양 홍씨 등이 이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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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시 마달동에 있는 방송 중계 시설. KBS삼척지국은 난청지역(難聽地域) 문제를 해소하고 방송권역의 확대를 통하여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설치하였다. 1962년 5월 15일 삼척시 남양동황산(篁山)에 한국방송공사 삼척중계소가 출력 1㎾, 주파수 1120㎑, 호출부호 HLCI로 개소하였다. 이 후 1975년 11월 15일 삼척TVR개소,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