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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 석탄합리화사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1244
이칭/별칭 10·10투쟁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차장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2000년 10월 10일연표보기 - 도계경제살리기 대정부투쟁

[정의]

강원도 삼척시 도계 지역 석탄 산업의 변천사와 도계 경제살리기 대정부 투쟁.

[개설]

도계 지역 석탄 산업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이곳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의 메카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들어 국가 경제의 고속 성장과 청정에너지 요구가 커지면서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이 수립되었다. 이에 따라 도계 경제살리기 대정부 투쟁이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석공도계광업소 감산 및 구조 조정 철회, 석탄안정화지원금 전액 지원, 생존권 보장을 위한 대체 산업 육성 등을 요구하였다.

[역사적 배경]

1. 도계 탄광촌 형성기

도계 지역 탄전의 공개는 조선총독부 식산국의 나카무라 신타로[중촌신태랑(中村新太郞)]가 1914년 강원도 남부 산악지대의 지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척, 영월, 정선, 강릉 등 4개 지역에 탄전이 존재하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1925년 9월부터 1928년까지 4년에 걸쳐 삼척군고사리소달면 지역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1936년부터 삼척 탄광이 본격 개발되었다. 1937년 상덕리의 도계1갱을 시작으로 흥전갱과 점리갱이 개발되고, 곧바로 생산에 들어갔다.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도계갱, 흥전갱, 점리갱 등 흥전소달구역에 개설된 갱도는 23개에 달했다.

2. 도계 탄광촌 성장기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광복이 되었지만 일본 경영진 철수 및 좌우익 이념 대립 등 정치·사회 혼란으로 말미암아 몇 년의 혼란기를 거치고 1950년 국영 기업인 대한석탄공사가 발족되면서 석탄 증산이 본격화된다. 심포탄광·미로탄광 등 크고 작은 민영 탄광도 들어서고, 이때부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6·25 전쟁 기간에도 석탄 생산 활동은 계속되었다. 1916년 1398가구 7527명이던 도계읍 인구는 1952년 2915가구 1만 6199명으로 늘어났다.

1960년대 도계에는 40여 개의 탄광이 난립했고, 1970년대 들어서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와 흥국탄광·삼마탄광·대방탄광 등 규모가 큰 민영 탄광 13개가 안정 운영이 되었다. 도계읍 인구는 1950년과 1960년 사이에 300%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도계 탄광촌은 전성기였다. 광부 모집 경쟁률이 50:1까지 올라갔고, 주민등록상 인구는 4만 9000여 명이라고 하지만 실제 거주자는 6만 명 정도였다.

3. 도계 탄광촌 쇠퇴기

1980년대 후반 들어 국가 경제의 고속 성장과 청정에너지 요구가 커지면서 석탄 산업은 급격한 사양길로 들어선다. 탄광 내부로도 자원 고갈, 탄질 저하, 채탄 여건 악화, 인력난, 인건비 상승 등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1989년 정부는 비경제성 탄광을 폐광시키고 경제성 탄광을 건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한다. 1988년에 전국으로 보면 347개 탄광이 10년 만인 1996년에는 11개로 축소되었다. 도계는 도계광업소, 경동광업소 두 곳만 남고 10개의 탄광이 문을 닫았다. 1979년에 4만 4543명으로 최고치를 보인 도계 지역 인구는 1989년 기점으로 급감하기 시작해서 2003년에 1만 4445명이었다. 학교도 14개에서 9개, 학생 수는 1만 12명에서 2906명으로 각각 감소했다.

[경과]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인한 실직과 지역경제 마비 등 불안감에 반발한 탄광촌 주민들이 대정부 투쟁을 시작하자 정부는 1995년 석탄산업 종합대책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무연탄 전용 발전소인 동해화력을 건설하는 한편 특별법을 만들어서 도계 지역에 황조스키장, 상덕골프장, 약초재배단지 등 사업으로 폐광 지역 경제 활성화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대체 산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는 지리멸렬한 상태였고, 도계광업소 중앙갱 폐쇄 및 구조 조정 등 날이 갈수록 절망의 소식만 날아 왔다.

2000년 10월 10일 마침내 도계읍번영회가 주도하는 ‘도계 경제살리기 대정부 투쟁’이 시작되었다. 도계광업소, 경동광업소는 임시 휴업하고 상가는 모두 철시했다. 도계역광교에서 남녀노소 주민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동 삼척시장, 최연희(崔鉛熙) 국회의원, 박병근 시의회의장을 비롯한 시의원 전원과 이상준·이연우 도의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삼척시장과 시의원, 주민대표 등 100여 명이 삭발하면서 투쟁 의지를 다졌다. 주민들은 석공도계광업소 감산 및 구조 조정 철회, 석탄안정지원금 전액 지원, 생존권 보장을 위한 대체 산업 육성 등을 요구하면서 역 광장 → 석공 정문 → 축협 → 읍사무소 복개장터 → 38국도 → 역 앞까지 7㎞ 거리 시위를 했다. 그리고 오후 4시 20분경 상여를 멘 시위대가 철도에 상여를 내려놓는 순간 순식간에 500여 명이 철로를 점거하면서 시위는 정점에 달해 밤 10시 40분까지 6시간 동안 영동선이 불통됐다. 이 사건으로 도계 지역 주민들이 보여 준 울분과 분노는 중앙 정부와 전국에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주민들은 이날의 시위를 ‘10·10투쟁’이라 부르고 있다.

[결과]

10·10 투쟁을 통해 얻은 직접적인 성과는 4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중앙갱 폐쇄를 막아 감산과 감원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둘째, 탄광지역개발사업비의 확보를 통해 지역의 대체산업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블랙밸리 골프장이 지금 당장은 효과가 미미하더라도, 경제성장 동력의 확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셋째, 지역적 정체성과 향토애를 지닌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대정부 투쟁을 성사시킨 점이다. 이는 지역민에게는 자긍심을 불어넣고, 향후 대정부 협상에 있어서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도계주민만의 역사적 기념일을 통해 화합의 창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의의와 평가]

매년 10·10 투쟁을 기념하는 행사인 ‘블랙다이아몬드축제’를 통해 지역민의 화합을 도모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주민화합은 모순된 외부적 환경 요인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주민의 저력을 키우는 동력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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