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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622
한자 金時千
영어공식명칭 Kim Sicheon
이칭/별칭 시중,송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891년(고종 28) - 김시천 정려 설치
사당|배향지 김시천 효자비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강릉

[정의]

근대 개항기 삼척 지역 효자.

[가계]

김시천(金時千)은 본관이 강릉(江陵)이다. 자는 시중(時中)이며, 호는 송헌(松軒)이다. 생원 김경건(金景鍵)의 후손이다. 김시천의 효자비각에는 ‘효자문(孝子門)’이라고 쓴 편액을 걸어 두었다. 효자비각 안에는 주손(主孫) 김진혁(金振赫)의 요청으로 1891년(고종 28) 11월 김병해(金秉諧)가 쓴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정려기(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旌閭記)』와 1984년 갑자년 5월 9일에 현손(玄孫) 김택진(金澤振)이 쓴 『효자교관강릉김공정문수리기(孝子敎官江陵金公旌門修理記)』가 걸려 있어 김시천의 가계도를 살펴볼 수 있다.

[활동 사항]

김시천은 집안이 가난하였다. 그러나 김시천은 정성을 다하여 부모님을 봉양하였다고 한다. 김시천은 부모상을 당하자 애통해 함이 지나쳐서 삼년상을 피눈물로 마쳤다. 이후 향유(鄕儒)와 사림(士林)들이 옛일을 자세히 조사하고는 그의 효성을 가상히 여기고 포양(褒揚)하기 위하여 관부(官府)에 글을 올림으로써 조정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시천의 효행은 향촌의 유림들이 자세히 조사한 결과 김시천의 효성을 가상히 여기고 이를 칭찬하여 장려하기 위하여 관부에 글을 올림으로써 조정에 알려지게 되었다. 1891년(고종 28)에 특별히 고종이 은전(恩典)을 내려서 김시천을 효자라고 인정하였다. 김시천에게는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의 4품 벼슬이 추증(追贈)되었으며, 특별히 정려(旌閭)하라는 명도 내려졌다. 김병해(金秉諧)가 글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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