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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512
한자 李安社
영어공식명칭 Lee Ansa
이칭/별칭 목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흥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혼인 시기/일시 1253년(고종 40) - 이안사 삼척에서 덕원부 의주로 이주
활동 시기/일시 1254년(고종 41) - 이안사 원나라 영역 오동[알동(斡東)]에서 원의 관직 수행 시작
몰년 시기/일시 1274년(원종 15)연표보기 - 이안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394년(태조 3)연표보기 - 이안사 목조로 추존됨
묘소|단소 덕릉 -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릉리
성격 왕족
성별
본관 전주

[정의]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

[개설]

이안사의 본관은 전주이며, 이양무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상장군 이강제(李康齊)의 딸이다. 비 평창이씨는 천우위장사(千牛衛長史) 이숙(李肅)의 딸 효공왕후(孝恭王后 )[추존]이다. 1394년(태조 3) 태조가 4대조를 추존할 때 덕을 베풀고 의로 행했다 하여 목조로 추존하였다.

[가계]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고조부 이안사(李安社)는 이인(李隣)의 손자이며, 이인은 고려시대이던 1170년(의종 24)에 무신란을 주도한 이의방(李義方)[?~1174]의 동생이다. 이양무(李陽茂)-목조(穆祖)이안사-익조(翼祖)이행리(李行里)-도조(度祖)이춘(李椿)-환조(桓祖)이자춘(李子春)-태조 이성계로 이어진다.

[활동 사항]

이성계의 가계가 역사에서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은 1170년 경부터이다. 이때 무신란을 주도한 이의방의 동생 이인이 이색(李穡)[1328~1396]의 이자춘 신도비(李子春神道碑)에 나오는 이성계의 6대조로 보이기 때문에 전주이씨 일족은 안 돼도 무신란 직전부터 무반직에 있은 것으로 보인다. 그 뒤 1174년(명종 4) 이의방이 피살되자 이인은 낙향했으며, 손자 이안사에 이르러 역사 인물로 부각되었다.

전주 지역의 토호인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게 된 것은 관기를 둘러싸고 지주(知州)[지전주사(知全州事)] 및 산성별감(山城別監)의 비위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이를 피하여 가솔과 토착인 170여 호를 거느리고 삼척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삼척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돼 이곳에 부임한 안렴사(按廉使)가 공교롭게도 전주에서 다투던 산성별감이었다. 이에 따라 1253년(고종 40)에 다시 일행을 거느리고 해로를 통해 덕원부(德源府), 즉 의주(宜州)로 옮겼다. 이때 휘하에는 전주에서부터 따라 온 170여 호뿐만 아니라 삼척과 덕원에서도 따르는 사람이 많아 큰 족단을 이루었다.

고려 정부는 이안사를 회유하기 위하여 의주병마로 임명하고 고원(高原)을 지키게 하였다. 당시 의주에서 북쪽으로 100여 리 되는 쌍성(雙城)[지금의 영흥(永興)]에 원나라 침략군 장수 산길(散吉)이 주둔하고 있었다. 1254년 산길은 고원에서 점차 세력이 확장되고 있는 이안사를 견제하기 위하여 회유와 함께 의주에서 개원로남경(南京)의 오동[알동(斡東)]으로 옮기게 하고 오천호소(五千戶所)의 수천호(首千戶)로서 다루가치[달루화적(達魯花赤)]를 겸하게 하였다. 이안사는 고려의 관직을 버리고 투항해서 원나라의 관직을 받은 셈이 되었다.

1258년 동북면으로 침입하는 몽고군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던 동북면병마사 신집평(愼執平)[?~1258]이 무리한 입도작전(入島作戰)을 감행하여 주민의 반감을 사서 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에 용진현(龍津縣) 사람 조휘(趙暉)와 정주(定州) 사람 탁청(卓靑)이 신집평을 살해한 뒤 몽고에 투항하였다. 몽고는 화주(和州)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았다. 이안사는 쌍성에서 고려를 배반한 조휘·탁청과 같은 무리가 되어 20여 년 동안 오동에 거주하면서 여진족까지 다스리다가 세력 기반을 아들 이행리(李行里)에게 넘겼다.

능호는 덕릉(德陵)으로, 처음에는 경흥성(慶興城) 남쪽에 있었지만 1410년(태종 10) 함흥 서북쪽으로 옮겼다.

[묘소]

1410년 이안사의 무덤을 함경도 함흥 서북쪽 가평사[현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릉리]로 옮겨 표석을 세우고 덕릉(德陵)이라 했다. 부인 효비는 존호를 효공(孝恭)이라 하였고, 무덤은 덕릉과 같은 언덕으로 옮겨 안릉(安陵)이라 했다. 이안사의 부친 되는 이양무 장군의 묘[준경묘]와 모친의 묘[영경묘]는 삼척시 미로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1392년 7월 28일 태조이성계에 의해 목왕(穆王)에 추봉되었다가 1411년 4월 22일 태종에 의해 목조(穆祖)인문성목대왕(仁文聖穆大王)에 재추봉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26 내용 수정 이안사 모친 평창이씨 삭제, 도조 이선래를 이춘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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