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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사문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456
한자 動安居士文集
영어공식명칭 Dongangeosamunjip
이칭/별칭 동안거사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국립중앙도서관 외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359년(공민왕 8)연표보기 - 동안거사문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성격 문집
저자 이승휴
간행자 이연종
권책 1권 1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19.5㎝ x 15㎝

[정의]

고려시대 문인 이승휴의 문집.

[개설]

『동안거사문집』이승휴의 문집으로, 그의 아들 이연종이 1359년 전후 시기에 간행하였다. 1책으로, 「잡저」 1부와 「행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

이승휴(李承休)[1224~1300]의 셋째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부친의 시문을 수집·정리하여 편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동안거사문집(動安居士文集)』은 고려 후기 문인 이승휴의 문집이다. 이승휴의 셋째 아들 이연종이 부친의 시문을 수집·정리하여 편찬하였다. 그러나 정확한 출판 연도는 알 수 없다. 단 이색(李穡)[1328~1396]이 1359년(공민왕 8)에 쓴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과 1360년(공민왕 9) 5월에 경주에서 『제왕운기』가 중간된 점을 감안하면 『동안거사집』도 이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중간(重刊)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목판본이며 규격은 19.5㎝⨯15㎝이고, 행자는 10행 18자이다. 1939년에 조선고전간행회(朝鮮古典刊行會)에 유일하게 전해 오던 황의돈(黃義敦)[1890~1964] 소장 초간본을 영인하였지만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여러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안거사집』은 조선고전간행회 영인본이다. 그 후 1995년에 중앙대학교김경수(金慶洙)·진성규(秦星圭) 교수가 공동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구성/내용]

『동안거사문집』은 1책으로, 「잡저(雜著)」 1부(部)와 「행록(行錄)」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집 맨 앞에는 이색이 1359년(공민왕 8)에 쓴 서문이 실려 있다. 「잡저」에는 기(記), 서(書), 계(啓), 법어(法語) 등 총 10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편자인 이연종의 부기(附記)에 따르면 부친 이승휴가 평소에 저술한 사륙문(四六文)은 파직 당하여 삼척으로 내려갈 때 이미 모두 산일(散逸)되었다. 이에 따라서 문집에 실려 있는 잡저는 대부분 삼척두타산귀동(龜洞)에 들어가 용안당[간장암]에 은거하던 만년 작품이다.

잡저 가운데 앞부분은 삼척 은둔지에서의 삶과 그에 따른 소회 등을 토로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반부는 타인들과의 교류를 보여 주는 서신류(書信類)로 채워져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이승휴의 행적이나 시문 등을 언급한 후대인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촌거자계문(村居自誡文)’은 향촌에 은둔하면서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고, ‘보광정기(葆光亭記)’는 자연 속에서 만년의 삶을 유유자적하며 즐기고자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 ‘간장사기(看藏寺記)’는 불교에 침잠한 만년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이 밖에 윤보(尹珤)[?~1329]에게 올린 계(啓)는 『제왕운기』 초간본인 진양판본이 유통되도록 주선해 준 데 대한 고마움을 서술하였고, 이산과 정소에게 보낸 서(書)는 『제왕운기』 간행을 도와 준 것과 발문을 써 준 것에 감사하는 글이다. ‘상몽산화상사사법어(上蒙山和尙謝賜法語)’는 몽산화상이 법어를 내려준 것에 감사하는 글이다. ‘단모부(旦暮賦)’는 김방경(金方慶)[1212~1300]과 수창(酬唱)한 작품으로 김방경의 행적을 기리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이승휴의 불교 관련 활동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있다.

한편 「행록」 1·2·3권은 모두 시집이다. 1권에는 19수, 2권에는 23수, 3권에는 16수의 시가 각각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삼척 은둔 이전인 1253년(고종 40) 무렵부터 1273년(원종 14)까지 약 20년 사이에 지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지어진 순서에 따라 배열되었다. 시의 대부분은 이승휴가 경흥도호부 서기나 식목도감의 녹사와 같은 하급 행정실무직을 전전하던 시기의 작품들로, 고단한 현실에 시달리며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해 답답해 하는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승휴의 작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행록」 4권은 ‘빈왕록(賓王錄)’이다. 이승휴가 1273년(원종 14)에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갔다 온 후에 쓴 사행록(使行錄)이다. 윤6월 9일 출발할 때부터 10월 초 개경으로 돌아올 때까지 입원사행(入元使行) 시에 기록한 작품에다 1274년(원종 15) 두 번째 사행의 경위까지 함께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1290년(충렬왕 16)에 이승휴가 정리해 놓은 것을 그 후 아들 이연종『동안거사집』을 펴내면서 「행록」 권4로 편입시켜 간행하였다.

빈왕록’은 서문으로 시작하여 날짜별로 노정, 사행 일정, 견문, 느낌 등을 일기와 시 형식을 빌려 기록하고 후기(後記)를 병서하였다. 특히 서사 내용은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여정의 감회 또는 관반사(館伴使)와의 수창 등은 시 형식을 취하여 일정과 느낌을 조화롭게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얼마 남아 있지 않는 고려시대 문집이라는데 의미가 크며, 이승휴가 살던 시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자료이다. 특히 「행록」 권4에 실려 있는 ‘빈왕록’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행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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