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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91
한자 穆祖李安社舊居遺址-齋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고려,조선
집필자 배재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9년(고종 36) - 준경묘 영경묘 재실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7월 12일연표보기 - 구거유지 및 재실 사적 제524호 지정
소재지 목조 이안사 구거유지와 재실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92 지도보기|활기리 98지도보기
성격 주거유적
지정 면적 6필지 6만 5154㎢
소유자 문화재청
관리자 삼척시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목조 이안사가 살던 집터 흔적과 준경묘·영경묘 재실.

[개설]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일대에는 고려고종 때 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주하여 산 목조이안사의 집터와 토지·우물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목조의 부모 묘인 준경묘영경묘의 제향을 위하여 건립된 재실이 있다.

[목조의 삼척 이주]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조이자 전주 지방의 유력한 토착 세력이던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와 이안사의 부친 이양무(李陽茂)[?~1231]는 대체로 고려 때인 1236년(고종 23) 가을 무렵에 자신들의 본관을 떠나 삼척으로 이주하였다. 아마 목조는 1236년 겨울 또는 이듬해인 1237년(고종 24) 봄에 삼척에 도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추종 세력 170여 호도 동행하였다. 당시 이안사 일행이 삼척에 이주하여 터전을 잡고 정착한 곳은 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일대이다. 목조가 삼척에 정착한 것은 삼척 지방의 토풍(土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목조 구거유지]

허목(許穆)[1595~1682]의 『척주지』에는 목조가 삼척에 와서 터전을 잡은 활기리에는 그가 살던 집터가 있다고 하였다. 또 이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목조의 집터와 토지를 일컬어 택기택전(宅基宅田)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또한 허목은 1662년(현종 3)에 쓴 「노동이묘기(蘆東二墓記)」에서 목조의 옛 집터에는 지금도 담장과 주춧돌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마을 노인들이 목조의 집터와 토지에 관한 이야기를 대대로 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활기리 일대에는 목조가 살던 집터와 그가 경작하던 토지, 길어 먹던 우물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백우금관(百牛金棺) 전설도 전해 오고 있다. 이에 1899년(조선 고종 36)에 목조의 부모 묘를 준경묘(濬慶墓)영경묘(永慶墓)로 추봉하고 묘역을 정비할 때 활기동에 ‘목조대왕(穆祖大王) 구거유지비(舊居遺址碑)’를 세웠다. 이 비석의 기문(記文)은 고종이 직접 짓고 장례원경 조병필(趙秉弼)[1835~1908]이 글씨를 썼다.

비석 규모는 187.0[139.0]㎝⨯46.7㎝⨯24.2㎝이다. 뚜껑돌[개석(蓋石)]은 팔작지붕 형태이며, 비받침대[비좌(碑座)]는 사각형[방형(方形)]으로 역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놓여 있다. 비석은 맞배지붕 형태의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현재 이 비는 강원도 기념물 4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문에는 목조가 전주에서 삼척으로 이주한 사실, 당시 목조가 살던 집터와 밭, 담장·주춧돌·우물 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또 삼척이 목조의 외향이고 선대의 묘가 있다고 하여 삼척을 군(郡)에서 부(府)로 승격시키고 홍서대(紅犀帶)를 하사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준경(濬慶)·영경(永慶) 양묘(兩墓) 재실]

1899년에 목조의 부모 묘를 준경묘·영경묘로 추봉하고 묘역을 정비할 때 활기리에 ‘목조대왕 구거유지비’와 함께 양묘 재실을 건립하였다. 현재의 재실은 기와집[와가(瓦家)]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이다. 공간 구성은 오른쪽에 향대청(香大廳)이 있고 가운데에 중심 시설인 재실이 있으며, 왼쪽에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이들 모두 본채와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간 형태는 튼 ㅁ자형의 중정 형태를 이룬다. 행각(行閣)에 담장을 연결하여 내·외부 공간을 담장으로 막아 안팎을 구분하고 있다. 재실의 후면과 측면은 화려한 화계(花階)로 장식하지 않고 단정하고 소박한 양식의 1단 화계로 조성하였다.

재실 내부에는 1899년 10월에 가선대부 장례원소경(掌禮院少卿) 이중하(李重夏)[1846~1917]가 쓴 「준경영경양묘재실창건기(濬慶永慶兩墓齋室創建記)」가 걸려 있다. 현재 재실은 매년 4월 20일 전주이씨 문중에서 양묘에 제례를 지낼 때 제수를 준비하고 종친들이 모여 회합을 가지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92, 98에 위치하고 있다.

[현황]

현재 목조가 살던 집터를 표시하는 ‘목조대왕구거유지비’가 있고, 이곳에 준경묘·영경묘·재실이 있다. 재실에서는 매년 4월 20일에 전주이씨 문중에서 제례를 올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목조대왕 구거유지는 조선 왕조 태동의 발상지로서의 역사성이 있다. 또 재실은 남한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조선 왕실 선대의 유일한 능묘인 준경묘영경묘에 제례를 올리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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