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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중봉리 사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85
한자 三陟中峯里寺址
영어공식명칭 Samcheok Jungbongri Temple Site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지도보기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절터

[정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에 있는 절터.

[개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와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 하장면중봉리 사지가 소개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척의 서쪽 약 7리[실제는 70리] 중봉리 사곡동(寺谷洞)의 밭 가운데에 있다. 초석이 남아 있고, 와편(瓦片)이 산재해 있다. 흔히 단교암지(短橋庵址)라 칭해진다.

이 밖에도 『삼척향토지(三陟鄕土誌)』(1955)와 『진주지(眞珠誌)』(1963)에도 삼척의 사찰을 소개하는 항목 가운데 ‘단교암(斷橋庵)’에서 하장면 중봉리에 있던 암자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가람고(伽藍考)』에는 삼척의 사찰로 ‘중봉암(中峯菴)’을 소개하면서 삼척부의 서쪽 70리 두타산 서쪽 산기슭에 있으며, 25간이라고 하였다. 또한 정조 연간에 만들어진 『범우고(梵宇攷)』에 삼척 지역 사찰로 ‘단교암’이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는 ‘재두타산(在頭陀山)’이라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면 『여지도서』에 등장하는 중봉암이 정조 때에 이르러 단교암으로 바뀌고 『삼척향토지』『진주지』가 편찬된 시기까지 계속해서 단교암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 창건과 관련하여 『삼화사사적(三和寺事蹟)』에는 “택당(澤堂)이식(李植)[1584~1647]이 단교사(斷橋寺)를 만들었는데 단교사가 단교암(斷橋庵)이다.”라고 하였다. 『삼척향토지』『진주지』에 “중봉리에 조선숙종 때 참의(參議) 이자(李慈)[1652~1737]가 창건하였는데 지금은 폐(廢)하였다.”라고 소개하였다.

덧붙여 『삼척군지』(1916) 하장면 중봉리조의 중봉리사지와 관련된 중봉리(中峯里) 기원조에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경성에서 이수고(李守固)가 사곡(寺谷)으로 이주해 와서 절 1칸을 건립한 이후 차차 여러 씨족이 들어와 거주하였다.”, 중봉리 구적명승조에는 “이수고(李守固)가 건립한 사찰은 50년 전에 폐허화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여지도서』가 만들어질 당시 하장면 중봉리에 있던 중봉암이 정조 연간에 단교암으로 바뀌어 명맥을 유지하다가 개항을 전후하여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암자를 창건한 인물로서 택당이식, 참의 이자, 이수고가 등장한다. 참의 이자는 택당이식의 손자로 인근에 있는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에 정착한 인물이다. 호는 수고당(守孤堂)이다. 이에 따라서 단교암의 창건은 택당이식의 집안과 일정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삼화사사적』에도 보인다는 것은 인근에 있는 삼화사(三和寺)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위치]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청옥산과 고적대가 만나는 곳 아래에 있는 옛 절터로, 두타산무릉계곡에서 문간재를 넘어 하장으로 넘어오는 자락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범우고(梵宇攷)』를 비롯하여 앞에서 소개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필자는 지난 2003년 8월 22일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 절골에 있는 절터를 현지 답사하였다. 그 결과 건물지와 축대, 다수의 기와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절터와 관련하여 『삼척군지』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관련 기록들과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절 이름과 관련된 유물이나 확실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하장면중봉리 사지’라 잠정하였다.

[형태]

중봉리 사지청옥산과 고적대 서쪽 방향 아래의 산등성이에 있다. 절터 맞은편에는 망지봉이 있다. 절터 내에는 민묘 2기가 있다. 민묘 바로 위에는 높이 1.8m, 길이 약 70m의 축대가 있다. 민묘 아래쪽으로는 높이 3m, 길이 30m 정도의 축대가 있다. 이 축대 위에서 건물지로 추정되는 초석 등이 발견되었다. 또 그 아래에도 길이 약 70m의 축대가 있었다. 이 축대와 민묘 위 축대 사이 거리는 50m 정도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높이 2m, 길이 70m 정도의 축대가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서 축대는 총 4개가 발견되었고, 사역(寺域)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매우 넓다.

[출토 유물]

축대는 총 4개가 발견되었다. 사역은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매우 넓었으며 이들 축대 사이에서 기와편이 많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기와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폐사지 위에 있는 두 번째 축대 위 건물지에서부터 3번째 축대 사이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현황]

삼척 중봉리 사지는 절터임을 보여 주는 축대와 기와편이 산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삼척 중봉리 사지 관련 기록과 절터를 현지 조사를 한 결과 향후 단교암과의 관련성, 사찰의 창건과 관련하여 택당이식과 이수고 및 참의 이자 조사, 절터 내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에 대한 추가 조사 및 검토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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