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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377
한자 紅犀帶
영어공식명칭 Hongseodae
이칭/별칭 서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조선
집필자 김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5월 30일연표보기 - 홍서대 강원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홍서대 강원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현 소장처 홍서대 - 삼척시립박물관 지도보기
원소재지 홍서대 - 삼척김씨 재사 경내 보대운한각지도보기
성격 서대
관리자 삼척김씨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민속문화재

[정의]

조선 건국 직후 태조이성계가 삼척 지역을 부(府)로 승격시키면서 하사한 서대.

[개설]

1393년(태조 2) 조선 왕실로부터 하사받은 홍서대는 1753년(영조 29) 삼척부사 이협(李埉)이 관아 구기(舊基)를 수리하다가 서대 및 기책(記冊)을 발견하였다.

암행어사 이현중(李顯重)[1708~1764]이 삼척부에 왔다가 그것을 보고 이 사실의 전말을 임금께 고하였더니 영조가 삼척부에 명하여 서대와 기책을 가지고 올라오라 하였다. 교생(校生) 박태수(朴太守)는 당초 보대(寶帶)를 받고 봉안해 오던 집안의 후손 호장(戶長) 김상구(金尙矩)와 함께 섣달 그믐날에 한양에 당도하였다. 갑술년 설날 아침 영수각(靈水閣) 전배(展拜) 때 왕이 친히 그 서대를 두르시고 전배를 드렸으며, 활기의 묘소와 구기(舊基)의 형편을 듣고 감회가 깊어 하더니 특별히 조지서(造紙署) 별시(別提)를 제수하였다. 또 예조로 하여금 독(櫝)[함]을 만들어 봉안토록 하고, 그 함에 어제 홍서대기를 써서 새기게 하여 다시 내려보내어 봉안케 하였다.

명을 받은 삼척부사 이협은 삼척도호부 관아 뒤에 각을 짓고 봉안해 왔다. 그 후 1794년(정조 18) 부사 윤속이 관아 서편에 옮겨 짓고 단청하였으며, 1837년(헌종 3) 부사 이규헌(李奎憲)이 보대운한각(寶帶雲漢閣)이라는 5자를 서액하여 걸어 놓고 하마비도 세웠다. 1875년에는 당저동보본단 안으로 옮겨 짓고 삼척김씨대종회에서 봉안 관리해 왔으며,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원본은 삼척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754년(영조 30) 조명리(趙明履)[1697~1756]가 홍서대를 보관한 함에 쓴 기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제홍무계유소사삼척서대기

옛날 우리 성조(聖祖)께서 명나라 홍무 계유년(태조 2)[1393]에 삼척 부사에게 하사하신 서대를 이번에 부사 이협이 찾아내 부중(府中)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어사 이현중이 와서 그 사실을 아뢰었다. 이에 본부의 교생으로 하여금 급히 가지고 올라오도록 하였다. 섣달 그믐날에야 비로소 예조(禮曹)에 도착하여 금년 정월 초하루 영수각(靈壽閣)을 참배할 때 몸소 살펴보았다.

아! 내가 항심(恒心)으로 60년을 힘들게 지내오다 보니 금년에 이르러서야 보각(寶閣)을 배알하고는 비로소 서대를 살펴보았다. 금년은 어떤 해인가. 곧 우리 성조께서 나라를 개창한 지 삼 년째 되는 해이고, 또 기사(耆社)에 들어가신 해이다. 지나간 해들을 돌이켜 생각하니 감행(感幸)이 교차하는 중에 특별히 그 대강을 서대 보관 상자 위에다 적었다. 명나라 홍무(洪武) 기원 후 여섯 번째 갑술년(영조 30)[1754] 정월 초하루에 짓다.

가의대부이조참판겸동지경연성균관사 신(臣) 조명리(趙明履)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삼가 쓰다.

[御製 紅犀帶記

御製洪武癸酉所賜三陟犀帶記

昔我聖祖於皇明洪武癸酉所賜三陟府司犀帶今府使李埉得而藏之於府中御史李顯重來奏故令本府校生陪持上來歲除日始到禮曹今元朝靈壽閣展拜時親審噫以予恒心□過六十年到于今年拜於寶閣乃審此帶今年是何年卽我聖祖開創之三年亦入耆社之歲也追惟昔年感幸交中特記其略於藏帶櫃上云爾歲皇明洪武六甲戌元朝識

嘉義大夫吏曹參判兼同知經筵成均館事臣趙明履奉敎謹書]

조선 왕실에서 홍서대를 하사한 사실은 목조대왕 구거유지비(穆祖大王 舊居遺址碑)에도 목조가 전주에서 이곳으로 온 사실과 당시 목조가 살던 집터, 밭, 우물이 유적으로 남아 있어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다. 목조의 비 효공왕후 이씨의 외외향이고 또한 선대의 묘가 안치되었다 하여 군(郡)에서 부(府)로 읍호(邑號)가 승격되었으며, 이와 관련하여 홍서대를 하사하였다는 사실들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을 통하여 조선 왕실에서 홍서대를 하사한 사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형태]

조선시대의 관리가 한복이나 공복을 입을 때 두르던 띠이다. 겉에 물소뿔로 만든 장식이 달려 있어 서대(犀帶)라 한다. 조선시대 법전인 『대전회통』에서는 정1품의 관리가 옷을 입을 때 사용하던 중요한 의장의 하나로 적고 있다.

외형을 살펴보면 한지를 여러 겹 아교로 붙여서 띠를 만들고, 밖에는 물소뿔을 얇게 다듬어서 오려 붙인 후 앞에는 착용할 때 필요한 금속구를 달아 놓았다.

[특징]

홍서대(紅犀帶)는 왕과 문무백관의 관복에 두르던 띠인 각대의 일종이다. 각대의 장식에 사용된 재료가 붉은색의 물소 뿔이기에 홍서대라고 한다.

띠의 종류는 장식의 재료에 따라 옥대, 서대, 비취대, 수정대, 금대, 은대, 각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옥대는 조선시대에 왕과 왕세자, 왕비만 착용하였다. 서대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물소 뿔로 만들었다. 옥대 다음의 띠로, 세자가 공복을 입을 때와 일품의 관원이 관복을 입을 때 착용한 권위 있는 각대였다.

[의의와 평가]

서대는 임금 바로 다음 계급이 사용하던 권위 있는 각대였다. 삼척 김씨 재사(齋舍) 경내 보대운한각에 보관되어 있던 홍서대는 삼척이 목조의 비 효공왕후 이씨의 외외향(外外鄕)이고, 선대묘(先代墓)인 준경묘·영경묘가 소재하는 곳이라 하여 1393년(태조 2) 삼척 지역을 부(府)로 승격시키면서 하사받은 것이기 때문에 조선 왕조 탄생의 정당성 확보와 왕권 안정, 이에 기여한 삼척과의 친연성을 보여 주는 대표 유물로 평가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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