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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덕면사무소 습격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94
한자 近德面事務所襲擊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청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1년 11월 30일연표보기 - 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 발생
발생|시작 장소 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 재동 지도보기
성격 항일 운동
관련 인물/단체 황운대|김덕환|심부윤|삼척청년동맹|K회

[정의]

일제강점기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

[개설]

1931년 11월 30일 삼척청년동맹의 핵심 인물인 황운대(黃雲大), 김덕환(金德煥), 심부윤(沈富潤) 등이 근덕면 교가리에서부터 노곡면까지의 도로 개설 공사에 따른 강제 부역과 공사비 징수에 불만이 있는 근덕면민을 동원하여 한밤중에 근덕면사무소를 습격한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일제 통치에 대한 반발심과 함께 도로 개·보수 공사에 따른 부역 및 공사비 부담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경과]

확실한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실상을 알기는 어렵지만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1000여 명이 근덕면 사무소를 습격하였다고 전해진다. 『동아일보』 1931년 12월 2일자 기사에 따르면 “지난 30일 장날을 이용하여 농민 1천여 명이 작당을 하여가지고 근덕면 사무소를 대거 습격”한 데 이어 이튿날인 3일자 기사에는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의 농민들은 동면 당국에 불평을 가지고 지난 30일 장날을 이용하여 농민 1천여 명이 작당을 하여 가지고 근덕면 사무소를 대거 습격”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27년에 조직된 삼척청년동맹의 핵심 인물인 황운대, 김덕환, 심부윤 등이 노동조합 강화를 위하여 1931년 11월 중순경 삼척 정상리(汀上里) 산중에서 비밀결사 K회[삼척 지역의 혁명 농민조합·노동조합 결성을 위하여 이 지역 공산주의자들이 비밀리에 결성한 일종의 지역 전위 정치 조직]의 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다수의 동지를 모으기 위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근덕면노곡면 간 도로 개수 공사 부역에 대한 근덕면민들의 불평불만을 이용한 부역 반대 면민 대회를 개최하여 근덕 면장에게 반대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면민을 동원하여 대규모 시위운동을 전개하며, 그 운동을 통하여 농민조합 조직을 촉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31년 11월 30일 심부윤 등이 근덕면 교가 시장에 면민들을 집합시키고 근덕면 사무소를 습격하는 기습 시위를 일으켰다.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와 『매일신보』의 기사를 바탕으로 그 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당시 신문에 실린 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양이 너무 많고 또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내용이 바뀌지 않는 범위에서 뺄 것은 빼고, 예를 들면 ‘시일→장날, 동소→소동’과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요즘 말로 바꾸었으며, 띄어쓰기를 하였다.]

좀 더 상세하게 작성된 기사는 『동아일보』 1931년 12월 3일자부터이다. 기사에 따르면 동기는 도로 공사 반대와 공사비 납부 문제였으며, 몰려든 군중은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도로공사 반대와 공사비 불납, 면장과 면협 의원 배척 등의 표어 깃발을 들고 시위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동 공사비 불납 동맹, 노동자와 농민 단결과 농민조합 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1931년 12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강원도 경찰부 보안과장이 현지 출장하여 수사를 지휘하였으며, 『조선일보』 지국 기자 서두인(徐斗仁)을 비롯하여 주로 사회 단체 인물과 신문 기자 18명이 검거되었다. 이들을 검거한 것은 근덕면사무소습격사건 계획 또는 지도 의혹이 있기 때문이었다.

1931년 12월 6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강원도 경찰부 고등과에서 오와키[大脇] 과장 차석이 지난 3일 근덕면 현장에 출장하여 현지 청년 동맹 간부 7명을 검거하였으며, 수사를 확대하여 현지 각 단체의 중요 인물들을 예비 검속(檢束)[죄를 지을 염려가 있는 사람을 경찰에서 잠시 가두다]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강릉으로 출장 간 『동아일보』 지국장도 일시 검속되었다가 삼척에서 떠날 것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보도체인 친일 기관지 『매일신보』 1931년 12월 12일자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대책 회의가 도 경찰부 고등계 오와키[大脇] 경부와 삼척군수 임시재(任是宰)의 임석하(臨席下)에 있었고, 청년동맹이 중심이 되어 면내의 무식계급을 선동하여 일으켰으며, 청년 동맹원 20여 인이 삼척경찰서에 검속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매일신보』 1931년 12월 21일자에는 “삼척군 근덕면 소요 사건으로 12월 15일 청년동맹원 12인을 강릉검사국으로 송치하였고 남은 10여 인도 금명간(今明間)[오늘 내일 사이] 송치하리라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을 보도하다가 잠시 침묵하던 『동아일보』가 다시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1931년 12월 24일부터이다. 보도 내용을 보면 “일일이 가택수색을 하여 사건 관계자는 물론 사회 단체 중요 인물들을 예비 총검거하여 취조한 결과 지난 15일에 10명을 비롯하여 16일에 10명, 17일에 8명 전후 28명을 강릉 검사분국에 일건 서류와 함께 송치하였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심부윤, 이봉래(李鳳來), 이상인(李相寅), 김시용(金始鎔), 김수봉(金守奉), 황운대, 서두인(徐斗仁), 최봉길(崔奉吉) 외 20명”이라고 되어 있다.

이제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하 내용은 모두 『동아일보』 기사이다.

1932년 1월 6일자 기사

삼척군근덕면 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강릉 검사국에 송치되었던 농민 30명은 지난 12월 26일 16명이 석방되었는데 그중에 황운대, 서두인 외 3명은 불기소, 나머지 11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즉시 수감되어 있는 14명 중에도 6, 7명은 수일간 석방되리라는데 그 명단은 아래와 같다. 심부윤, 이봉래, 이상인, 김시용, 최근섭(崔根燮), 이인구(李仁九), 김복노(金福魯), 이기소(李起韶), 최재용(崔在鎔), 김수봉(金守奉), 이도균(李道均), 김순만(金順萬), 최재수(崔在守), 임성욱(林性旭)”

1932년 1월 15일자 기사

삼척군근덕면 사무소를 습격한 데모 사건은 강릉 검사국에서 30명 중 5명은 불기소, 11명은 기소유예로 석방되고 14명은 지난 30일에 공판에 회부되었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심부윤[27], 이용기(李龍起)[27], 이봉래(32), 김봉수(金奉守)[19], 이도균[33], 김시용[24], 최진섭(崔振燮)[24], 이상인[26], 최대봉(崔大鳳)[27], 이인구[24], 김수봉(金秀奉)[25], 임성욱[22], 김복노[22], 최재수[26]”

1932년 3월 26일자 기사

삼척군근덕면 사무소를 습격한 데모 사건은 29일에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제1회 공판을 개정할 예정이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심부윤, 이기소(李起韶), 이봉래, 이도균, 김시용, 최근섭, 이상인, 최대봉, 이인구, 김수봉(金秀奉), 김복노, 임성욱, 최재수”

1932년 4월 2일자 기사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도로공사 반대 운동으로 동면사무소를 습격한 농민 데모 사건의 공판은 지난 29일 오전 11시부터 함흥법원 강릉지청법정에서 야마구치[山口] 판사의 주심과 니시미루[西見] 검사의 입회 아래 개정되었다. 판사로부터 피고 14명에 대한 도로 공사 반대 운동과 면사무소 습격 사건에 대한 사실 심문을 마치고 검사의 준열한 논고와 다음과 같은 최고 10개월 최하 6개월의 구형이 있은 후 오후 2시에 폐정하였는데 언도는 31일이라 한다. 심부윤, 이상인 징역 10월, 김시용, 김윤곤(金潤坤) 징역 8월, 이봉래, 김수봉(金秀奉), 임성욱, 김복노, 최대봉, 이인구, 김수봉(金守奉), 이소기(李韶起), 최재수, 이도균 징역 6월”

1932년 4월 7일자 기사

“강원도 삼척군근덕면 사무소를 습격한 사건에 대한 피고 심부윤 외 14명에 대한 폭력 행위 위반 사건의 판결 언도는 지난 31일 오전 10시부터 함흥법원 강릉지청 법정에서 니시미루[西見] 검사 입회 아래 개정하고 가네이[金井] 판사로부터 각기 아래와 같은 언도가 있었다. 심부윤, 이상인 징역 8월, 김시용, 김윤곤, 이봉래, 김수봉(金秀奉), 임성욱, 김복노, 최대봉, 이인구, 김수봉(金守奉), 이소기(李韶起), 최재수, 이도균 징역 6월 2년 집행유예라고 보도하고 검사도 불복 공소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결과]

근덕면 면사무소 습격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검거 처형되고, K회도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1930년대 삼척 지역의 청년 동맹 중심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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