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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228
한자 靑銅器時代
영어공식명칭 The Bronze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삼척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청동기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노경리 지도보기
청동기 전기 문화 유적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지도보기
청동기 후기 문화 유적 - 강원도 삼척시 갈천동 지도보기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신석기시대 뒤를 이어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서 사용한 시대.

[개설]

인류는 오랜 기간 사용하여 온 간석기[마제석기(磨製石器)] 대신 구리에다 비소, 주석을 합금해서 만든 청동기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문명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 말기인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의 요녕 지역, 러시아의 아무르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토기[돌대문토기(突帶文土器)]가 앞선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櫛文土器)] 문화와 약 500년 동안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시대로 넘어간다. 이때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1500년경으로,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본격화된다. 고인돌[지석묘(支石墓)]도 이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반도의 토착 사회를 이루게 된다. 이 시기에는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 널무덤[토광묘(土壙墓)],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주구묘(周溝墓) 등 다양한 묘제(墓制)가 사용되었다. 이 시대에 청동기가 생산 도구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금속 재료로 만든 청동기는 소수의 유력자들에게 한정되어 신분을 상징하는 존재로써 무기나 장식품으로 사용되었다. 생활 도구로는 주로 간석기나 목기, 골각기(骨角器)가 이용되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평야 또는 하천과 가까운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서 취락을 이루어 주변 골짜기를 개간해서 농사를 짓고, 주로 네모꼴[방형(方形)]이나 긴네모꼴[장방형(長方形)] 움집을 짓고 살았다. 움집은 신석기시대보다 움이 낮아진 반움집으로, 규모가 더 커졌다. 움집 내부의 바닥에는 돌을 돌리거나 바닥을 약간 파서 화덕을 만들었고, 집이 큰 경우에는 여러 개의 화덕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 시대에 와서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본격 발달함으로써 이전부터 사용하던 간석기는 더욱 다양해졌다. 간석기에는 벌목이나 나무 가공에 사용된 돌도끼[석부(石斧)]·홈자귀[유구석부(有溝石斧)]·돌대패날·돌끌[석착(石鑿)] 등이 있고, 곡식의 이삭을 따는데 사용된 반달돌칼[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돌낫[석겸(石鎌)]도 있으며, 땅을 파거나 밭을 일구는데 사용된 돌보습과 돌괭이 등도 있다. 이 밖에도 곡물 가공에 쓰인 갈판[마곡석(磨穀石)]과 갈돌[석봉(石棒)]이 있다. 또 무기와 사냥 도구로 돌화살촉[석촉(石鏃)]·돌창[석창(石槍)]·돌칼[석도(石刀)]·바퀴날도끼[환상석부(環狀石斧)] 등이 있다.

청동시시대의 토기인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는 이전의 신석기시대와 달리 굵은 모래나 활석 등을 섞은 진흙으로 빚어서 구운 납작한 토기를 말한다. 대개 그릇 표면에 무늬가 없으며 갈색 또는 적갈색을 띠고 있다. 일상용의 민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교체되면서 지역과 시기에 따라 그릇의 형태나 색, 만드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청동기시대의 시작은 민무늬토기 문화의 출현을 기점으로 삼고 있으며, 문화로는 기존의 수렵·어로 채집 문화에서 정착농경 문화로의 전환을 기본 특징으로 설정하고 있다. 대체로 한국 청동기시대 문화는 몇 개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덧띠새김무늬토기 유형, 구멍무늬토기[공렬문토기(孔列文土器)] 유형, 팽이모양토기[각형토기(角形土器)] 유형, 가락동(可樂洞) 유형, 송국리(松菊里) 유형, 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유형 등이다. 그리고 중국요녕(遼寧) 지방에 중심을 둔 비파형동검문화(琵琶形銅劍文化)도 한반도 청동기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유형 가운데 덧띠새김무늬토기 유형과 구멍무늬토기 유형이 가장 이른 시기인 기원전 15세기 이전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서 출현하여 남부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팽이모양토기 유형은 이보다 2~3세기 늦게 서북 지방에서 출현하였다. 그리고 이들보다 늦은 시기에 가락동과 흔암리 등 소지역 유형이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출현하였다. 기원전 6~7세기경에는 송국리 유형이 한반도의 중서부 지방에서 출현하여 영남과 호남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기원전 10세기경에는 중국요녕성요하(遼河)를 중심으로 발전한 비파형동검문화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기원전 4~5세기경에 덧띠토기 문화가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 출현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기차를 고려하여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고 덧띠새김무늬토기·구멍무늬토기·팽이모양토기 유형을 전기 단계, 송국리 유형의 출현부터를 중기, 덧띠토기 문화를 후기로 각각 구분하고 있다.

[삼척 지역의 청동기 문화]

강원 영동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몇몇 청동기시대 유물을 채집하여 소개한 이후 광복 이후에도 간간이 이루어진 유물 채집으로 청동기시대 문화의 존재성이 알려져 왔다. 그 후 1990년에 들어와 강릉 방내리 주거지 유적이 영동 지역 최초로 정식 발굴된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유적이 영동 지역 전역에서 발견되고 조사되었다. 영동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대부분 동해 바다와 가까운 호숫가나 하천가의 야트막한 구릉에 집중해서 입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 유적이 호숫가나 하천가의 낮은 사구지대에 입지하는 것과 다른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영동 지역에서 발굴된 대표 유적으로는 고성 송현리 유적, 고성 사천리 유적, 고성 대대리 유적, 속초 조양동 유적, 양양 포월리 유적, 양양 임호정리 유적, 강릉 방내리 유적, 강릉 교동 유적, 강릉 입암동 유적, 강릉 방동리 유적, 동해 지흥동 유적, 삼척 증산동 유적 등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주거지, 환호(環濠), 고인돌·돌널무덤·널무덤 등 무덤 유적이 확인되었다. 청동도끼를 비롯한 겹아가리토기[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토기[구순각목토기(口脣刻目土器)]·덧띠토기 등 토기류와 돌검[석검(石劍)]·돌화살촉·반달돌칼·돌도끼·바퀴날도끼 등 간석기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조사 성과에 힘입어 영동 지역 청동기시대의 조기·전기·중기·후기 문화의 실체가 점차 밝혀지게 되었으며, 한반도 청동기시대 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삼척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청동기시대 유적·유물이 이따금 조사·보고되어 곳곳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무대로 삶의 터전을 가꾸면서 살았음이 점차 밝혀지게 되었다. 이는 일정한 토착 세력 집단이 거주하였음을 시사(示唆)한다. 지금까지 삼척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적들은 크게 주거지와 유물산포지, 고인돌, 의례[제의]유적으로 구분된다. 고인돌은 원덕읍 노경리에 기반식 고인돌 1기가 분포하고 있다. 생활 유적으로 추정되는 대다수의 유물산포지에서는 민무늬토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간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최근 후기문화 단계에 속하는 갈천동 유적에서 주거지 2기가 최초로 발굴되었고, 덧띠토기 및 돌도끼가 일부 출토되었다. 또 호산리 유적에서는 전기 문화 단계에 속하는 평면 긴네모꼴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고, 골아가리토기·구멍무늬토기 등 민무늬토기를 비롯하여 돌창·돌도끼과 갈돌과 갈판을 한꺼번에 이르는 연석(耉石) 등이 출토되었다. 호산리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동해안 사구지대에서 최초로 확인된 것으로, 영동 지역의 청동기시대 주거 입지 양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의미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성남동 유적에서는 강원도 지역 최초로 제의(祭儀) 또는 의례(儀禮)와 깊이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석유구 2기, 환구 8기, 구상유구 11기, 수혈유구 15기 등이 확인되었다. 또 미완성 돌검, 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굴지구(掘地具)[괭이와 보습] 등 유물이 소량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삼척 지역에서는 많은 수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분포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정식으로 발굴 조사된 유적의 사례가 극소수여서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의 변천 양상과 성격 등 전반을 이해하는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삼척 지역의 주요 하천인 오십천, 마읍천, 추천천, 용화천, 호산천, 가곡천 등 하천변의 낮은 구릉지대에 분포하고 있는 다수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강원영동 지역에서 발견·조사된 유적의 입지 조건과 매우 부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이에 대한 발굴 조사가 본격 이루어지면 청동기시대 조기~후기 단계의 문화 양상과 성격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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