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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700052
한자 衣生活
영어공식명칭 Clothing Habits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삼척시
집필자 안광선

[정의]

강원도 삼척 지역 사람들이 예부터 착용해 온 의복이나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개설]

한 나라의 고유 의상은 그 나라의 문화를 상징하며, 의생활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그 시대의 사회·경제·정치 여건 변화를 반영한다. 의생활 관련 기록은 상류사회 의상에 국한되어 있고, 역사에서 주체를 형성해 온 서민 대중의 복식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의생활은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인간의 한 평생과 함께한다. 이러한 인간의 순환 과정과 함께 복식 변화를 볼 수 있다. 옛날 남자의 일상 의복은 갓, 저고리, 바지, 마고자, 두루마기로 이루어진 복장이 주류였다. 소매는 넓고 둥근 곡선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 구한말에 들어와 실용과 위생을 위하여 소매가 좁아지고, 단발령이 단행된 이후 수입 기성복이 들어옴에 따라 오늘날과 같은 복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평소에는 봄·가을에 모시옷인 진솔옷을 입는다. 일년동안 추석, 단오 등 명절 때는 남녀 노소 누구나 때때옷을 명절복을 입었다. ‘빔’이라고 하는 때때옷은 남자 아이의 경우 색동저고리, 풍채바지, 까치두루마기를 입었다. 여자 아이는 색동저고리·다홍치마에다 머리에 금박 제비부리당기를 들여 주고, 노리개를 채우며, 굴레나 조바위를 씌웠다. 백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듯 민중의 대다수가 항상 흰옷을 입어 왔다. 그러나 왕실, 귀족, 양반 계급은 관복으로서 오색찬란한 비단을 입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인들에 의해 들어온 서양식 복식은 마치 일본인 복식으로 알고 강력히 저항하였지만 근현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노인들이 즐겨 입은 갓, 망건, 조바위[추운 날 여자들의 귀와 뺨을 덮는 모자의 일종], 남바위[추운 날 이마를 비롯해 목과 등까지 덮을 수 있는 모자의 하나] 등도 이제는 거리에서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전통 복식을 철저하게 퇴장시킨 것은 한국전쟁이다. 6·25 전쟁은 일상 복식의 변화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복식 연구와 자료마저 모두 불태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삼척을 비롯한 영동 지역의 의생활]

삼척을 비롯한 영동 지역은 산간과 바다, 농사 지대를 포함하고 있어 의생활도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농촌과 산촌 지역 서민들은 겨울에는 바지·저고리, 여름에는 잠방이·등걸이를 입었다. 긴 고의적삼은 광목으로 만들었다. 머리에는 삿갓을 비롯하여 밀짚모자, 보리짚모자, 맥고자, 도롱이 등을 쓰고 농사일을 했다. 어민들의 고기잡이 옷은 특이하다. 상의는 광목에 솜을 넣은 반 오버코트식 솜옷을 겉에 입었다. 속저고리는 ‘요대저고리’, 겉저고리를 ‘큰저고리’라 하여 7부로 만들어 입었다. 바지는 조각을 모아 만들었고, 속에는 솜을 넣은 ‘두텁바지’를 입었다. 신발은 ‘초북신’이라고 하여 짚신 모양의 쇠가죽으로 덮고, 발목 부위에는 개가죽으로 덮었다.

근래 들어 와 의식 때나 명절에 노인층에서 저고리, 치마, 도포, 속곳 등 전통 복식을 입었고 일반인들은 거의 기성복 내지 맞춤옷을 입었다. 여자들은 현대식 통치마를 입었다. 남자들은 저고리 대신 남방셔츠나 점퍼류를 입었고, 여성들은 블라우스나 스웨터를 입었다. 색동저고리, 호장 저고리, 반호장 저고리 등은 명절에나 가끔 볼 수 있는 특수복이 되었다. 구한말 특색 있는 삼척 지역의 제복으로 ‘백상’이 있었다. 이것은 장옷과 비슷하면서 넓고 긴 도련, 수구(袖口)에 흑선(黑線)을 두른 옷이다. 그러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전통 복식 관념이 예(禮)로 이어지면서 일상 곳곳에서 전통 복식을 차려 입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일생 의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의례복 혼례나 제례 등에 예를 갖추기 위하여 입는 옷으로 아기의 돌에 입는 돌복, 성년이 되어 관례 때 입는 관례복, 혼례 행사 때 입는 혼례복, 회갑 때 입는 회갑연복,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입는 상복,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제례복 등이 있다. 상복은 전국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옷이 귀한 시절에는 상두꾼까지도 긴 광목으로 옷을 지어 입혔고, 수건·버선·신까지도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영동 지역에서는 수의로 베[마(麻)]를 썼다. 부모의 수의를 장만할 때는 윤달 가운데 길일을 택하여 팔자 좋은 장수 노인들을 모셔서 바느질을 하였다. 솔기 중간에 실매듭을 짓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는데 이는 저승에 갈 때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가시게 염원하는 뜻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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